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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찐주언니 Mar 05. 2024

캐나다 학교엔 양호실이 없다.

엄마는 상시 대기조

오후 12시 30분. 두 시간 후면 아이들을 데리러 나갈 준비를 해야 할 시간이다. 남은 두 시간 동안 영어공부를 해야겠다 생각하고 책을 펴서 한 문장을 막 읽었는데 전화벨이 울린다. 학교 데스크에서 걸려온 전화다. "Hello!" 하고 말하면서 제발 '엄마! 난데~' 하면서 아이가 할 얘기가 있어서 전화한 것이길 바랐다. 하지만 상대방은 영어로 쏼라쏼라.. 지금 너의 아들 이든이가 아프다고 하는데 기침도 좀 하고 열도 약간 있고, 집에 가기를 원하니 데리고 갈래? 하는 말이었다. 오늘아침까지만 해도 말짱하게 학교를 간 아이가 갑자기 감기? 보나 마나 뻔한 상황이었지만 일단은 20분 안에 가겠다고 말한 뒤 한숨과 함께 공부하던 책을 덮고 바로 아이를 데리러 학교로 갔다. 학교에 도착해서 아이를 데리러 왔다고 하니 우리 집 둘째가 마스크를 쓰고 콜록콜록하면서 책가방을 메고 걸어 나왔다. 


약간의 미열이 있긴 했지만 집에 갈 정도는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기침을 콜록콜록하고 있었지만 감기라기보단 잔기침정도의 수준이었다.


'그리 심해보이진 않는데 너는 오늘 집에 일찍 갈 작정이구나.' 생각하며 일단 아이를 차에 태웠다. 집에 도착해서 열을 재보니 37.4도. 약간의 미열이 있어 타이레놀을 먹였다. 약을 먹은 아이는 곧장 자기 방으로 올라가더니 너무도 조용했다. 뭘 하나 방문을 열어보니 얼마 전 내가 내 준 수학 숙제를 풀고 있는 게 아닌가. 이건 뭐 기특하다고 해야 하나.. 집에 일찍 들어온 게 눈치가 보여 뭐라도 하는 거라고 해야 하나.. 

그러더니 "엄마.. 나 할 일 다 했는데 이제 게임해도 돼요? 나 이제 좀 나아진것 같아요."

'이제 겨우 집에 온 지 한 시간이 지났는데 게임..? 그러니까 너는 지금 약간의 미열을 동반한 아픔을 핑계로 집에 일찍 들어앉아서 약 한 스푼 먹고 괜찮아졌다며 게임을 하겠다고 하는 거구나..?' 하는 생각이 머릿속을 스쳤다. 할 말이 많았지만 지금 또 나머지 아이 둘을 데리러 나가야겠기에 "일단 하고 있어. 딱 한 시간이야. 너 시간 꼭 지켜!"하고 나는 나머지 둘 아이들 픽업하러 또다시 학교를 다녀왔다.


아이 둘을 태우고 다시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내 머릿속은 온통 둘째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 차 있었다. 아무리 생각을 하고 또 해봐도 기가차고, 화가 났다. '이번이 처음이 아닌데 이번에 한번 더 넘어 가.. 말아.. 얘는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집에 가겠다고 한 거지?' 

'그래. 이번엔 짚고 넘어가자.'


집에 들어오니 게임 한 시간이 끝났는지 티브이를 보고 있는 둘째.

"너 일루 와 봐. 야.. 너 이러려고 집에 일찍 왔어? 엄마가 아무리 생각을 해봐도 말이지.. 너 진짜 너무한 거 아니야? 네가 아프다고 연락을 해서 집에 가야겠다고 했을 정도면 아파서 침대에 누워있어야 하는 거 아니냔 말이야. 타이레놀 한번 먹고 30분도 안돼서 병이 나았다는 게 말이 돼? 겨우 그 정도 가지고 집에 왔어? 게임하고 싶어서 겸사겸사 집에 가겠다고 한건 아니고? 앞으로 엄마한테 전화하지 마. 그 정도는 그냥 참아. 진짜 열이 펄펄 나서 수업을 들을 수 없을 정도로 식은땀이 나고 온몸이 벌벌 떨리는 정도 거나 지금 당장 쓰러질 것 같은 상황이 아니면 엄마한테 전화하지 마. 배가 아프면 화장실을 가고 네가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다 했는데도 도저히 배가 아파서 죽을 것 같을 때 엄마한테 전화해. 엄마는 뭐 항시 대기조야? 차 타자마자 상태 좋아지는 게 그게 아픈 거냐고. 참아. 그 정도는 누구나 다 참을 수 있어."

모진 말인 것 같았지만 이 정도는 모질어도 된다고 생각했다. 이 정도로 아이를 집으로 돌려보내는 선생님에게도 화가 났다. 하루이틀 일도 아닌데 말이다.




캐나다 학교에는 양호실이 없다. 그래서 아이들이 아프면 선생님한테 말을 하고 선생님이 집에 가야겠느냐 물었을 때 아이가 집에 가겠다고 하면 담임은 오피스에 전달하고 오피스에서는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서 아이를 데리러 오라고 한다. 상황이 어느 정도인지 모르는 엄마는 전화를 받고 음.. 내가 보니 걔는 조퇴 안 해도 돼. 학교 끝나면 데리러 갈게. 할 수 없는 상황이다. 무조건 알았어.. 지금 갈게.. 한다. 이 일이 가능하려면 워킹맘의 경우엔 일을 하다 말고 아이를 픽업하러 가야 하는 상황이 되는 것이다. 그 말은 곧 집에 상시 대기조가 누구 하나 있어야 한다는 것이기도 하다.


아이가 진짜로 아픈 상황이라면 부모 중 누구라도 학교로 달려가는 게 맞지만 아이들은 종종 별 일 아닌 일에 집에 가겠다고 한다. 우리 집 아이도 예외는 아니다. 겸사겸사 쪼금 아픈 걸 핑계로 집에 일찍 들어앉아 결국 티브이를 보거나 게임을 하거나.. 엄마 속을 뒤집는 일뿐이다. 한국이었다면 양호실에 가서 약하나 타먹고 침대에 30분 누웠다 일어나면 충분히 끝날 일이지만 캐나다 학교엔 상주하고 있는 간호사 선생님이 없어 아이가 원하면 언제든 집으로 돌려보낸다. 아이가 셋인 나의 경우엔 학교에서 걸려온 전화 한 통에 나의 일상은 갑자기 먹통이 되고 학교를 왔다 갔다 하는데 시간을 허비한다. 


캐나다 학교에도 양호실이 있었으면 좋겠다. 아이들은 아플 때 양호실에서 간단한 약이라도 바로 타먹을 수 있어 좋고 몸이 힘들면 잠시 누워서 쉴 수 있는 베드도 있고, 전문가의 진단에 따라 병원을 가게 할 수도, 집에 가서 휴식을 취하게 할 수도, 혹은 오늘과 같은 꾀병환자를 잡아낼 수도 있을 테니 말이다. 


학교에 양호실이 없다는 것이 오늘따라 참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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