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찐주언니 May 17. 2024

아이를 키운다면 한국보단 캐나다

캐나다에서 아이들을 키우는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나는 태어나서 대학 졸업까지 순수하게 한국에서 공부하고 졸업한 토종 한국인이다. 이제는 거의 마흔을 바라보는 나이에 남아있는 흐릿해져 버린 기억들을 더듬어 본다면, 나는 유치원 때부터 행복하지 않았다. 정확히는 유치원이 끝나면 방과 후 활동으로 하는 영어수업시간이 싫었던 기억이 난다. 이제 겨우 ABC정도 아는 내가 미국인 선생님 앞에서 영어를 따라 하고, 노래하는 그 분위기 자체가 답답하고 싫었던 기억.

초등학생이 되어서는 1학년때부터 매일같이 보던 받아쓰기. 

3학년때부터는 여름방학 내내 몇 권씩 풀어와야 했던 문제집들. 그리고 쪽지시험.

학교가 끝나면 피아노학원, 태권도, 미술학원, 수학영어학원..

중학생이 되어서는 학교시험에 학원시험에 성적 따라 줄 세우기..

그래도 그때까지는 나름대로 열심히 따라가고 있다 생각했었는데..

고등학교에 들어가면서 입시를 준비하는 세상이 열림과 동시에 나는 매일매일을 안갯속을 헤짚으며 살았다.

'아무리 열심히 해도 어디서도 배운 것 같지 않은 문제들을 척척 풀어내는 저 아이들은 어디서 이걸 배워서 맞추는 건지. 과외를 한다고 들었는데 도대체 얼마만큼의 과외를 받아야 나도 저 아이와 같은 성적을 받을 수 있는 건지. 논술? 그건 왜 필요한 건지. 어딜 가서 어떻게 준비를 해야 하는 건지. 쟤네는 그걸 다 어떻게 알고 미리 준비를 해서 논술로 수시에 붙을 수 있었는지. 언제부터 준비하고 있었던 건지. 나는 왜 아는 정보가 하나도 없는지. 나도 놀지 않았는데, 나도 나의 부족함을 너무 잘 알았고, 잘하고 싶었고, 과외받고 싶었지만 부모님에게 학원비도 겨우 받아 내는 마당에 과외라니. 나한텐 너무나 과분한 이야기였다. 그냥 나는 내가 가지고 있는 것들로 재주껏 이 상황을 견디어 내서 어떻게든 인 서울을 가야 한다. 인 서울. 만약 인서울을 못 간다면? 어디 나가서 옷 장사를 해야 하나?'

이런 생각들을 하며 버텼던 나의 고3 시절이었다. 

아직도 이 시절을 되짚어보면 참 어처구니가 없어서 피식 웃음이 나온다.

옷가게라니.. 세상에.. 원하는 대학을 못 가면 옷가게를 차려야 한다는 생각밖에 못했다는 사실이 지금 생각해도 어이가 없다. 왜 어느 누구도 나에게 대학을 가지 못하더라도 이런저런 삶들을 살아갈 수 있다고 아무도 알려주지 않았는지. 세상은 넓고, 돈이 없어도 할 수 있는 일들이 무궁무진하고, 부모님이 아무리 돈이 없다 해도 자식이 하고 싶은 게 있으니 도와달라고 말하면 도와주는 게 부모인데 왜 나는 아무것도 말하지 않고 스스로 해 내는 일만이 부모님을 위한 일이고 나 스스로 대견한 일이라 생각했는지 모르겠다. 

수능이 끝나고, 누구는 좋은 대학, 좋은 과에 가고 나는 재수하는 길을 선택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옷가게를 여는 건 지금껏 열심히 살아온 나의 인생에 오점이 되는 일인 것 같아서 말이다. 그리고 그 어려운 고비를 한번 넘기고 나서야 알게 된 사실은, 미리부터 원하는 대학에 들어가기 위해 준비된 아이들은 하나같이 과외와 각종 학원비를 내어줄 수 있는 부모가 있었다는 사실과 자식보다 먼저 재빠르게 정보를 수집하고 준비했던 엄마의 노력이 있었다는 사실이었다. 종일 가게에서 일하는 나의 부모님에게는 바랄 수도 없고 바래서도 안 되는 일이었고, 나는 가난하다는 생각을 단 한 번도 해본 적 없었지만 태어나서 처음으로 우리 집이 가난한 축에 속한다는 사실을 인지하게 되기도 했다. 




입시 결과에 따라 좌우되는 인생. 나이가 만 37살이 되도록 아직도 수능 보는 꿈을 꾸고, 수학을 포기하는 꿈을 꾸고, 결과에 좌절하는 꿈을 꾸는 나. 이것이 과연 정상인가 하는 생각이 든다.

최소한 내가 아는 나는, 주어진 일이라면. 그게 무엇이든 남의 일이 아닌 나의 일이라면 언제나 열심히 하고, 열심히 했으니 인정받는 일은 당연히 뒤따르는 것이며, 잘하고 싶고, 포기하고 싶지 않은 열정이 있는 사람이다. 그런데 어른이 되어 바라보는 사회는, 주어진 일을 열심히 하는 사람을 찾는 일은 쉽지 않고, 남들보다 열심히 한다고 그만큼의 보상이 따르는 것도 아니며, 잘하고 싶다고 잘할 수 없고, 포기하지 않는다고 잘했다 칭찬받는 사회가 아니라는 것을 안다. 이것을 알게 되는 일은 참 슬픈 일인 것 같다.


어찌 되었든 한국에서의 삶이 그랬고, 그 모든 삶 중에 대학을 가기까지의 그 모든 스트레스와 주어진 상황이 나에겐 늘 버거웠다. 등에는 엄청나게 거대한 짐을 혼자 지고 가는데 사실 주변을 돌아보면 그 짐을 혼자 들고 가는 사람들보다 부모가 나눠서 짐을 지고 가는 사람들이 더 성공하기 쉬운 사회가 아닌가. 그것이 바로 교육에서부터 오는 불평등이며, 사교육의 문제점이고, 곧 한국 교육의 문제라고 생각된다. 이 모든 일들을 나의 세대부터 겪기 시작했으니 내 자식에게만은 어떤 길을 가야 하는지 알려줄 지식이 생겼고 그 모든 것들을 해주려다 보니 돈이 너무 많이 들고, 아이를 낳아도 키울 수가 없어요! 하는 것이 아닌지..




나의 삶을 보건대 의도하지 않게 지금의 남편을 만나 캐나다에 살고 있다. 살면서 단 한 번도 해외에 나가 살겠다는 꿈은 꿔본 적도 없는데 말이다. 여름방학마다 가족들 만나러 미국, 캐나다에서 다녀오는 친구들을 보면 너무도 부러웠는데, 나는 그 부러움을 넘어 우리 아이들 셋을 캐나다에서 키우고 있다니. 가끔은 감개무량함을 느끼기도 한다. 특히나 한국 뉴스를 볼 때면 더욱 그렇다. 아이를 안 낳는 한국사회. 그 이유가 무엇인지 나는, 그리고 국민들은 너무도 잘 알고 있는데 출산장려금 얼마로 퉁치려는 정부를 보면서 과연 언제까지 저 돈으로 버틸 수 있을까 궁금하기도 하다.


결혼을 하면 아이를 갖는다. 참 단순한 진리이고 이치인 것 같은 말이 요즘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결혼을 하기까지도 힘이 들지만 '아이를 갖는다는 건 또 다른 문제'라는 생각 때문이다. 그만큼 출산 후의 우리의 삶에서 '교육에 들어가는 돈'을 빼놓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누군가 내게 "캐나다에서 아이를 키우면 뭐가 가장 좋아요?" 한다면 나 또한 남들이 흔히들 말하는 '자유롭게 키울 수 있는 점'이라며 두리뭉실하게 말할 것 같다. 하지만 이 기회를 빌어 조금 더 자세히 덧붙이자면,


캐나다에서 아이를 키우는 일에 돈이 안 든다는 말은 거짓이다. 이곳에도 사교육이 있고 그 사교육에 돈이 매우 많이 든다. 여기서 말하는 사교육이란, 국영수 학원을 말하는 게 아니라 보통은 악기, 운동 정도를 말하는데 예를 들어 피아노를 배우는 경우, 일주일에 한 번 레슨 30분 혹은 45분이 전부이다. 연습은 각자 집에서 알아서. 그러니 피아노를 배우는 아이들이라면 못해도 집에 전자피아노정도는 반드시 장만해야 한다. 우리 아이의 경우 45분 레슨을 받는데 레슨 45분을 위해서 집에서 차를 타고 20분 정도 달려서 아이를 내려주고, 나는 45분간 근처 커피숍에서 커피를 마시거나 돌아다니다가 아이가 끝날 시간에 맞춰 아이를 픽업해서 집으로 돌아온다. 운동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캐나다 사람이라면 보통은 하키에 미쳐있기 때문에 아이들도 하키를 많이 시키는 편이다. 비록 비용적인 면과 체력적인 면에서 한국 아이들이 많이 배우는 편은 아니지만 주로 겨울엔 하키, 실내축구, 어떤 아이는 러닝, 배드민턴, 농구, 태권도, 수영 등등 여러 가지를 시키는 편이다. 우리 아이의 경우 수영을 예로 들면, 일주일에 1회 45분 8주면 한 클래스가 끝이다. 연습은 각자 알아서. 그런데도 비용이 결코 저렴하지 않다. 태권도의 경우 주 2회 각각 30분씩, 벨트가 조금 업그레이드되면 그때부터 45분 수업. 처음 30분 한다고 했을 땐 30분 해서 뭘 배우나 했는데 30분이면 충분하더라. 어찌 됐든 이 사교육 부분은 안 해도 그만이지만 학교에서 받아온 숙제 하나 없는 우리 아이들은 방과 후, 그리고 주말을 이용해 주로 예체능과 관련된 사교육을 하러 다닌다. 모든 사교육엔 부모 중 누군가의 라이드가 항상 필요하며 시간과 돈이 드는 일이다. 안 해도 그만이라고 생각한다면 할 말이 없지만 캐나다에 사는 어린아이들 중에 운동하나, 악기 하나 배우는 일은 기본 중에 기본이라는 생각이 있기 때문에 반드시 시키게 된다. 


공립학교의 경우는 학교에서 내주는 숙제나 과제가 정말 없기 때문에 엄마들이 제발 집에서 뭘 좀 했으면 좋겠다고 많이 말씀하신다. 엄마들이 시간을 내서 아이들과 따로 공부를 하거나, 이곳에도 있는 구몬이나 수학학원을 따로 보내지 않는 이상 아이들은 학교 끝나고 집에 오면 딱히 할 일이 없다. 캐나다는 특별하게도 유치원 때부터 계속계속 강조하는 것이 딱 하나 있는데 바로 책 읽기다. 책 읽기에 목숨 거는 나라 같다는 생각도 가끔 한다. 그 시간에 애들 연산을 좀 더 가르쳐주거나, 과학, 사회에 비중을 좀 둬도 좋을 것 같다는 한국적인 마인드와 다르게 언제나 책책책! 집에 가서도 자기 전에 책 20분은 꼭 읽고 자라는 숙제를 내주는 게 전부이다. 당연히 선생님이 책을 얼마나 읽었나, 독후감을 써오라던지, 나와서 스토리를 이야기해 보라던지, 느낀 점이 뭐냐던지 하는 일은 없다. 조별 토의도 없다. 읽었으면 읽는 거고 워낙 책이랑 거리가 먼 아이여도 학교에선 아무런 제재가 없다. 책을 읽은 것 말고는 아무것도 없으니 참 대충이다 싶지만 이미 어른인 우리들은 안다. 책을 읽는 습관자체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캐나다교육은 오로지 책을 많이 읽고, 쉬는 시간에 맘껏 뛰어놀고(날씨가 춥던 덥던 영하 30도던), 너희가 행복하게 하루를 보낸다면 그걸로 됐다고 말하는 듯하다. 


중학생이라고 생각하는 G7부터는 한국처럼 시험을 보기 시작하는데 결국 대학을 들어가기 위해 성적이 가장 중요한 시기는 G11이라고 한다. 12학년부터는 이미 원서를 넣기 시작하니 11학년 성적이 가장 중요하고 10학년까지는 그다지 아무 상관없다고. 무엇보다 지금까지 가장 신기한 건 아직까지 내 주변에서는 서울대보다 세계대학순위가 높은 토론토대학에 떨어진 아이를 보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대학을 가고 싶어 하는 아이들이 많지도 않을뿐더러 웬만해선 원하는 대학에 원서를 넣고 대부분 합격 통지를 받는다. 문제는 대학 졸업이다. 대학을 들어가기는 쉬우나 4년 안에 졸업하는 비율이 20%밖에 안된다는 이야기도 들은 적이 있다. 실제로 내 주변에서도 대학에 떨어진 아이는 한 명도 보지 못했는데 대학을 졸업했다는 이야기를 들은 경우는 손에 꼽는다. 그 이유로는 캐나다 아이들이 대학에 입학은 했으나 고등학교때와는 다른 과도한(?) 수업 양을 따라가지 못하는 경우가 많단다. 한국 아이들처럼 고등학교 내내 엉덩이를 붙이고 공부해 본 경험들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오랜 시간 앉아서 공부를 해야 따라가는 대학 수업의 양이 아이들의 졸업 기간을 늘린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또 졸업이 늦어지는 이유 중의 하나는, 아이들이 대학에 들어가서 '내가 이걸 전공하는 게 맞나? 내가 이걸 좋아하나? 다른 걸 해볼까?' 하면서 여러 번 전공과목을 바꾸기도 하고, 생각할 시간을 갖고자 휴학하는 사람들이 늘면서 자연스레 졸업을 하는 시간이 늦어지고 있다고 한다. 

나는 개인적으로 이것이 더 맞다고 생각한다. 

10대는 한참 어리고 한참 뛰어놀 나이라고들 말하면서 한국 아이들은 아쉽게도 그럴만한 시간이 없다. 한참 어린 나이에 미래를 고민해야 하고, 한참 뛰어놀 나이에 종일 책상 앞에 앉아 공부하면서 그렇게 10대를 온종일 보내고 대학생이 되면 그때부터 찾아오는 자유함을 즐기는 것보다, 10대에 한참 뛰어놀고, 학교 가는 것이 재밌고, 스트레스가 되는 일이 아니며, 대학을 가는 일조차 언제든 원하면 갈 수 있고 원하지 않으면 얼마든지 다른 길을 알아볼 수 있고, 그런 결과로 하여금 사회에서 도태되거나 상처받는 일이 없는 캐나다 사회가 나는 더 살맛 나는 사회라고 생각한다.


아이들을 키우면서, 우리 아이들은 운 좋게도 캐나다에 산다는 이유로 공부 스트레스 없이 하고 싶은 운동하고, 보고 싶은 책 보고, 많이 뛰어놀면서 자라는 모습을 보는 일은 부모로서 안심이 되는 일이다. 아직도 수능 보는 꿈을 꾸는 나보다, 저녁 10시에도 학원가에 있지 않고 9시면 잠을 자야 하는 이곳에서 아이들이 살아가는 것이 때로는 감사하고 행복한 삶이라 느낀다. 가끔 한국 뉴스를 보면 '출산율 세계 최저'라는 말이 마음 아프게 들린다. 아이를 낳고 키우는 일은 돈이 드는 일이라기보다는 행복한 일인데. 아이가 찾아와서 행복할 것이라는 느낌보다 대학을 보내기 위해 얼마만큼의 돈이 들지를 먼저 걱정해야 하는 것이라면 아이를 낳는 일은 당연히 부담으로 느낄 수밖에 없다. 캐나다가 대단한 선진국은 아니지만 아이를 키우는 면에 있어서는 한국보다 많은 부분 선진국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본다.






















작가의 이전글 1년에 딱 한번 한국 음식을 선물하는 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