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상담가의 사색14(작성: 2023.6.4.)
본 글은 심리상담가로서 상담하고 생활하며 느낀 바를 나누는 글이며, 1인칭 시점의 독백체의 글로 이루어집니다.
아울러 본 글에서 언급된 사람의 이름, 직업, 나이, 지역 등 배경정보는 각색되어 창작되었으며, 실제 인물이나 기관과 관련이 없음을 알려드립니다.
3년째, 한 집단상담의 집단원으로서 참여하고 있는 모임이 있다. 오랫동안 장기로 진행되는 집단에 참여해보고 싶은 마음이 있었는데, 리더(집단 지도자)가 좋은 모임을 꾸려주셔서 나 또한 별로 고민하지 않고 시작한 집단 모임이었다.
모임 때마다 핫시트(집단상담 회기에서 중심이 되는 집단원이 집중적으로 심리적 작업을 하는 상황)에 올라가는 집단원이 다른데, 이번 모임에서는 내가 올라갔다.
이번 회기는 나의 삶에서 있었던 차가운 기억을 떠올려 보고 이야기 나누는 활동이었는데, 나는 대학교 시절을 떠올렸다. 활동에서 나는 금전적 여유가 없었던 시절의 기억을 나누면서 이야기를 시작했다. 선명하게 자리 잡았던 나의 기억으로 인해, 나는 그 이후에, 그리고 지금까지도 금전적인 부분에 대해 상당히 신경을 쓰며 살아가는 나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집단원들은 내 이야기를 들으며 여러 가지 질문과 자신들의 관점을 이야기했다. 나랑 비슷한 경험을 갖고 나와 비슷한 감정을 느끼는 집단원도 있었지만, 나와는 다른 삶의 가치관을 갖고 사는 집단원이 있기도 했다. 여기까지는 특별한 일이 없었다. 집단 상담이 서로의 생각과 감정을 솔직하게 나누는 장이고 '다름'이라는 걸 느끼는 순간이라는 걸 아니까.
한편, 한 집단원은 내가 이렇게 삶에서 금전적인 부분을 고려하며 사는 것이 과연 '왜' 그런 것인지에 대해 좀 더 근본적인 질문을 했다. 금전적인 부분의 진정한 의미가 무엇인지, 이것을 중요시하면서도 공부를 지금까지 해오면서 경제적인 부분을 과소평가해왔던 나의 마음은 무엇인지에 대해 의아해하기도 하고 궁금해하기도 했다.
예전 같았으면 나는 그런 질문을 들었을 때, 내가 그럴 수밖에 없음을 이야기하거나, 나는 최선을 다해 열심히 살고 있다는 식으로 나를 옹호하거나 방어하는 이야기를 했을 것이다.
왜냐하면, 내가 집단원의 반응을 '나를 공격한다.'라거나 '내가 이상하다.'라는 느낌으로 받아들일 만한 요소나 대목에 특별히 나의 주의를 두었으니 말이다. 그런 요소나 특징에 주의 집중이 쏠리다 보면, 자연스레 그와 관련된 단서를 찾게 될 가능성이 커지고, 그러다 보면 나는 정말 내 생각이나 의심을 확증하게 될 가능성 또한 높아진다. 이 사고의 흐름이 만약 확실한 것으로 와닿는다면, 이제는 '나는 이상하지 않다고, 나는 괜찮은 사람이고 잘 살고 있는 사람이다.'라고 나를 더 드러내려고 반응을 해왔다. 정말 나는 '괜찮은 사람'이고 싶었으니까.
그런데 이번 모임에서는 그 집단원의 피드백이 정말로 나에게 많은 것들을 좀 더 진지하게 돌아보고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준 순간이 되었다. 그러면서 방어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내게 관심과 주의 집중을 모으며 나의 내면을 평소와 다르게 살펴볼 수 있었다. 과연 나는 왜 그 집단원의 반응이나 피드백을 이전과 다르게 느꼈을까?
그것은 관계에서 오는 신뢰였다. 내가 상대방을 어떻게 느끼고 있었는지, 이 집단을 어떻게 대하고 있었는지가 자연스럽게 묻어나온 결과물이 바로 나의 반응이었다.
나는 이들과 3년 가까이 만나오고 있다. 그동안 우리의 신뢰감은 자연스레 만들어졌다. 서로의 솔직한 모습을 내어놓으면서 이들이 나와 다르지 않은 사람이라는 것, 나만 유별나지 않다는 것, 나만 이상하지 않다는 것 등등을 느끼며 집단상담 모임을 유지했다.
만약 내가 이상하다고 느껴진다거나, 나만 별나다거나, 이들이 나를 공격하거나 부정적으로 평가한다는 것 같다거나 했다면, 나는 이 모임을 일찌감치 끝냈을 것이다. 나의 불편감을 계속해서 느끼면서 하고 싶지는 않았을 테니까 말이다. 하지만 매년 다시 신청하면서 집단상담을 지속해왔다는 것은 다르게 말하면 나는 이들을 점점 내 내면의 울타리에 들여놓고 있었다는 걸 의미한다.
(매년 신청하는 과정에서 몇 명은 그만두기도 하였지만, 원년 집단원의 반 이상이 아직도 함께 하는 것이 또 하나의 다른 증거일 것이다.)
그래서 결론은 관계가 먼저다. 몇 년 전 대통령 후보의 홍보 문구로 '사람이 먼저다.'를 보면서 참 인상적이었고 좋았던 문구였는데, 그것은 다르게 말하면 관계가 먼저라는 거다.
(개인의 정치적 성향을 떠나서 문구가 좋다는 것이니, 오해 없으시길 바랍니다.)
다른 심리상담가의 사색 글에서 친절과 옳음 중에서 하나를 골라야 한다면, 친절을 고른다고 했던 것도 관계가 먼저이기 때문이다.
상담에서 어떤 치료적 기법이나 상담이론보다도 치료의 성패를 중요시하는 요인이 상담자-내담자의 관계라고 강조하고 라포(신뢰감)형성이라고 하는 이유도 관계가 먼저이기 때문이다.
(이게 전제되지 않으면 상담자의 무수한 노력이 효과가 없거나 물거품이 되어버린다.)
그래서 오늘도 나는 내담자를 향하는 내 느낌은 어떤지, 상대가 나에 대해 느끼는 마음은 어떤지가 궁금하면서 그와 나의 관계에 대해서 들여다보고 신경쓰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