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상담가의 사색22(작성: 2023.10.15.)
본 글은 심리상담가로서 상담하고 생활하며 느낀 바를 나누는 글이며, 1인칭 시점의 독백체의 글로 이루어집니다.
아울러 본 글에서 언급된 사람의 이름, 직업, 나이, 지역 등 배경정보는 각색되어 창작되었으며, 실제 인물이나 기관과 관련이 없음을 알려드립니다.
살면서 우리는 상황이나 사태를 있는 그대로 객관적으로 파악하는 것이 어렵다. 나라는 사람이 나름대로 덧대어 상황을 파악하는 것이 익숙해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로 인해 때때로 괜히 자신을 고통에 빠뜨리기도 한다. 즉, 스스로 고통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나에게도 언제든 이런 일이 발생하곤 하는데, 이번 일은 참으로 기억에 남는 일이 되어버렸다.
명상센터에 있는 11박 12일 동안 나름 열심히 명상을 해보고자 노력했다. 그래서 호흡 명상을 할 때도 열심히 하고 이후에 위빠사나 명상을 할 때도 열심히 했다. 6, 7일쯤 되던 날이었다. 새벽 명상을 마치고 아침밥을 먹으러 가는 길이었다. 나름 차분하고 안정된 마음을 갖고 걸어가고 있었다. 그런데 뒤에서 나를 따라오는 발걸음이 들리기 시작했다. 그러고 나서 그분이 "XX 님?"라고 하면서 나를 불러 세웠다. 그분은 이번 명상 기간 동안 남자 수련생을 챙겨주는 매니저였다. 그분께서는 나에게 "명상홀에서 XX 님의 숨소리가 들린다는 이야기가 있어서요."라며 이야기를 했다. 적지 않게 당황하며, 이야기를 들었고, 나는 이해가 잘되지 않아 정말 내가 맞는지를 재차 물었다. 그분은 내가 맞다고 이야기를 했다. 나는 알겠다며 그분과 헤어지고 식당을 걸어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동시에 내 마음은 새벽 명상 마친 후의 차분하고 안정된 마음을 벗어나, 혼돈과 당황스러움과 불쾌한 기분을 마주하고 있었다.
식당에 가서도 더 이상 평소 잘 먹던 아침밥, 평온하게 감사하게 먹던 밥이 아니었다. 계속해서 '내가 숨소리가 크다고?', '나보다 더 큰 숨소리도 있는데?', '누가 매니저한테 그 이야기를 했을까? 내 옆 사람인가? 내 앞사람인가?', '앞사람 같은데. 그 사람 맞나 보다. 아니야, 옆 사람일 수 있어. 제일 가깝잖아.' 등등의 여러 생각을 하며, 내가 의심하게 된 옆 사람과 앞사람을 한 번씩 힐끔 쳐다봤다. 그러면서 마음은 현재 순간에 머물지 못했고, 누가 그런 이야기를 했을지 찾아 헤맸고, 상당히 불쾌한 기분이 들었다.
이후 밥 먹고 산책을 간단히 하는 동안에도 마음은 쉽게 진정되지 않았다. 여전히 다소 흥분된 상태를 느낄 수 있었다. 아름답게 감사히 보고 있던 하늘도 눈에 잘 들어오지 않았고, 마음은 심란했다. 그러면서 한 번 내 숨을 살펴봤다. 처음에는 전혀 크게 느껴지지 않았는데, 내쉴 때 약간 소리가 나에게 들리는 게 있었다. 그런데 그렇게 크게 느껴지진 않아, '이게 크다고? 아닌 것 같은데.'라며 나를 위로했다. 하지만 일단 크다고 하니, 소리가 안 들리게 숨을 몇 번 쉬어봤다. 상당히 인위적인 느낌이 있었지만, 정말로 숨소리가 더 이상 나에게 들리지 않았다. 그러면서 '숨소리가 들릴 수 있겠구나.'라는 생각이 들면서 다소 마음이 누그러지는 것을 느꼈다.
그런 후, 오전 명상을 하는 동안 좀 더 숨소리가 주변에 들리지 않도록 신경 썼고, 실제로 이렇게 해보니 명상에 보다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 되었다. 그러면서 그 이야기를 해준 사람에게 약간의 감사함이 느껴지기도 했다. 이후, 명상을 지도해 주는 법사님에게 이와 같은 내 마음을 나누는데, 법사님은 자기가 명상을 열심히 하고 있을 때는 알아차릴 수 없어서, 주변에서 이야기해 주는 것이 맞다고 했다.
나는 그날 하루 6-7시간 만에 여러 감정들을 느꼈다. 새벽 명상 후에 잠깐 동안 평온한 마음, 이후에 불쾌하고 심란한 마음, 이후에는 숨소리를 지적해 준 사람에 대한 다소 간의 고마운 마음까지, 참으로 여러 마음을 느꼈다. 도대체 나는 무엇을 있는 그대로, 사실 그대로 알아차리지 못했던 것일까? 나는 어떤 나만의 생각을 하고 있었던 건가?
매니저가 나에게 숨소리가 들린다는 이야기를 했는데, 나는 그걸 숨소리가 크다고 이해했다. 그리고 누군가가 매니저에게 와서, 불쾌하고 짜증스러운 표정과 말투로 "XX 님 때문에 명상이 힘들어요. 숨소리가 너무 크거든요."라고 이야기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 상황을 떠올리며 동시에 나는 내가 '지적'받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적받는 것을 몹시 불쾌해하는(다르게 말하면, 내 이미지가 손상되는 걸 극도로 두려워하고 어려워하는) 나는 그때부터 스스로를 불쾌한 감정의 구렁텅이로 빠뜨리기 시작했다.
그런데 만약 내가 이런 생각을 했더라면? 그 사람이 매니저에게 매우 조심스럽게 다가와 주저주저한다. "저,, 매니저님. 제가 명상을 하는데, XX 님이 약간,,, 조금 숨소리가 들리는 것 같아요. 지난번에 숨소리가 너무 거칠면 명상이 어렵다는 이야기를 하셨던 게 기억나서요.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저는 괜찮긴 한데..."라고 했다면? 혹은 주변 사람이 아니라 나를 지도해 주는 법사가 나의 숨소리를 듣고 나서 그걸 매니저에게 이야기를 전달했던 것이라면?
만약 그랬다면 '지적'받는다는 인상을 가지지는 않았을 것이고, 기분 또한 그렇게 불쾌한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오히려 이야기를 전해준 사람에게 죄송하기도 하고, 한편 알려주어서 고맙다는 마음도 들었을 것이다. 이처럼 나는 누구의 도움도 없이, 누구의 개입도 없이 나 스스로 직접 숨소리를 알려준 상황을 나에게 불쾌하고 고통스러운 방향으로 펼쳐버렸다.
그런데 사실 가장 중요한 것은 어떤 생각을 통해서 기분을 완화시키기 보다, 그냥 그 상황을 있는 그대로 관찰하는 것이다. 매니저가 나에게 숨소리에 대해 이야기를 해주었다는 사실 그 자체만 가지는 것 말이다. 거기에 나만의 여러 생각이나 상상이나 의미를 덧붙이지 않았다면, 나는 그다지 기분이 나쁜, 혹은 아침 식사를 하는 동안 심란함을 느끼지는 않았을 것이다.
매니저가 나에게 숨소리가 들린다는 그 언급 자체는 나를 지적하는 것이 아니다. 그저 그 이야기를 했을 뿐인 것이다. 그것이 나에 대한 평가도 아니었다. 그저 내가 그런 모습이 있다는 것을 알려준 것뿐이다. 지적이나 평가는 나의 해석일 뿐이다. 사실 거기에 무슨 의미가 있었겠는가? 그것을 놓고 내가 상상하고, 의미 부여하고, 괜한 사람을 의심하며, 나를 기분 상하게 했을 뿐이다. 즉 나의 내면에서 만들어지거나 덧대어진 것일 뿐, 있는 그대로의 상황을 보지 못했다. 그래서 내가 불쾌하고 괴로웠던 것이다.
있는 그대로, 사실 그대로 상황을 관찰하고 바라보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이로 인해 많은 상황에서 스스로 고통과 괴로움으로 빠뜨리는 것을 막을 수 있으니까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많은 노력보다도 이것이 매우 중요한 일이다. 그렇지만 이렇게 객관적으로 상황을 알아차리기란 쉽지 않다. 이전부터 이미 해왔던 습관이 남아있으니까 말이다. 때문에 이것을 하기 위해서는 나의 내면을 솔직하게, 천천히, 자세히 들여다보는 연습이 지속적으로 꾸준히 필요할 것이다. 나 또한 그렇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