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상담가의 사색23(작성: 2023.10.29.)
본 글은 심리상담가로서 상담하고 생활하며 느낀 바를 나누는 글이며, 1인칭 시점의 독백체의 글로 이루어집니다.
아울러 본 글에서 언급된 사람의 이름, 직업, 나이, 지역 등 배경정보는 각색되어 창작되었으며, 실제 인물이나 기관과 관련이 없음을 알려드립니다.
상담은 다소 시간이 걸린다. 약은 복용 후, 빠르면 몇 시간 뒤에 효과가 나타나기 시작하는데, 심리상담은 대체로 그렇지 않다. 그렇다 보니 심리상담은 도움이 안 되며, 소요 시간이 너무 길고 비용만 비싸다는 부정적인 인식이 있기도 하다. 그렇지만 상담을 지속하고 상담사와 좋은 관계를 맺으면서 자신을 점차 이해하기 시작하면, 어느 순간 심리상담 시작 때와는 다른 자신을 마주하게 되며 만족스러운 순간을 맞이한다. 그리고 자연스레 이와 관련된 질문이 하나 떠오른다.
이렇게 상담이 지속되면서 상담이 만족스러운 순간으로 기억되고, 내담자가 자신에 대한 긍정적인 태도를 갖게 되는 데는 무엇이 중요한 것일까?
이 질문에 대한 의견과 해답은 여러 갈래지만, 여기에서 제시할 수 있는 하나는 '직접 행동해서 얻는 경험'이라는 것이다. 즉, 상담은 직접 자신의 마음을 체험하고 오롯이 느끼는 '경험'의 순간을 제공하고자 하고, 이를 통해 내담자 스스로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이나 관점, 태도나 마음가짐을 바꾸거나 새롭게 형성하도록 하고자 노력한다.
종종 사람들이 '백견이 불여일행(百見不如一行)'이라는 말을 할 때가 있다. 원래의 고사 성어는 백 번 듣는 것이 한 번 보는 것보다 못하다는 뜻인 '백문이 불여일견(百聞不如一見)'인데, 좀 더 행동하는 것을 강조하고자 백견이 불여일행이라고도 말한다. 이처럼 행동하는 것, 그리고 직접 스스로 경험하는 것의 중요함은 어김없이 심리상담에도 적용된다.
내담자 K는 자신이 겪는 미래에 대한 걱정과 불안으로 인해 정신과에 다니면서 약물도 복용하고 있지만, 좀처럼 불안이 근본적으로 해결되지는 않는다며 상담센터를 찾아왔다. 우리는 충분히 이야기를 나누었고, 난 K에게 더 이상 자신의 불안을 옆으로 치워두지 말고, 한 번은 들여다보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제시하였다. 그는 그렇게 해보고 싶지만, 사실 어떻게 해야 할지도 모르겠고 자신의 불안을 마주할 수 있을지에 대한 자신감도 없었다. 하지만 결국 그는 자신의 불안을 마주하였고, 상담을 만족하며 우리의 이번 만남은 거기서 종료되었다.
그는 상담에서 직접 자신의 불안을 경험했다. 더 이상 불안을 피하지 말고 수용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심리학 책을 통해서, 유튜브 심리 관련 영상을 통해서, 혹은 주변에 상담을 받아본 사람의 경험담을 통해서 충분히 많이 들어왔고 자신도 머리로는 이해하고 있었지만, 그것을 자신에게 적용하기란 쉽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상담 시간에 자신의 불안을 충분히 들여다보고 마주하면서 자신감의 회복이라는 만족할 만한 성과를 가지고 돌아갔다. 그는 어떻게 불안을 마주하면서 직접 경험할 수 있었을까?
평소였다면 그는 불안을 떠올리지 않으려고 다른 일에 몰두했을 것이다. 그러다 보니 게임과 같은 것에 더 많은 시간을 쓰기도 했다. 하지만 상담에서만큼은 나와 함께 천천히 자신이 불안을 느끼는 지점에 대해 자세하게 이야기를 나누었다. 불안과 관련한 에피소드를 이야기하는데 그저 벌어졌던 하나의 사건을 담담하게 타인에게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그 상황을 다시 한번 생생하게 느껴보는 과정과 같이 천천히, 자세히, 무엇보다도 안전한 환경에서 자신의 불안을 차근차근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그는 다시 한번 불안을 경험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불안과 함께 하고 있는 나의 마음 상태를 여러 갈래로 살펴보면서, 그는 그토록 피하고 싶고 느끼고 싶지 않았던 불안과 같이 지내보는 경험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경험이 그토록 걱정하고 염려했던 것처럼 괴롭고 피하고 싶은 불안은 아닐 수 있다는 느낌을 받기 시작했다. 아울러 피하고 있었던 불안을 직접 경험하면서, 이때까지는 예상하거나 알 수 없었던 자신의 마음을 새롭게 발견하고 불안을 새로운 관점으로 바라볼 수도 있게 되었다.
이후, K의 상담에서는 그의 불안과 관련한 여러 일들을 계속해서 다루어 나갔고, 그는 결국 불안을 없앨 수는 없지만, 불안과 함께 살아갈 수 있는 자신감을 얻을 수 있었다. 그리고 그는 그것이 더 만족스럽다고 했다. K는 불안을 마주하고 수용한다는 것에 대해 머리로는 충분히 알고 있었지만, 결코 그것이 자신의 삶에 적용되지는 않는다고 생각해왔다. 하지만 심리상담이라는 자신만의 시간을 통해 그는 자신의 불안을 마주하면서 마침내 자신을 진정으로 수용하게 되었다.
우리는 수많은 것을 보거나 들으며 많은 것들을 배운다. 지금 이 글을 통해 몇몇 사람은 행동하고, 경험한다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이해하게 될 것이고, 수긍하게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아쉽지만 결코 그것은 오롯하게 당신의 것으로 되지는 않는다. 진정으로 행동과 경험이 중요하다는 것을 느끼려면 당신은 용기 내어 직접 뛰어들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이야말로 진정으로 자신에게 큰 배움과 성찰을 가져다줄 것이다. 내담자 K가 했던 것처럼.
백문이 불여일견이고, 백견이 불여일각이며, 백각이 불여일행이다.
백 번 듣는 것이 한 번 보는 것보다 못하며, 백 번 보는 것이 한 번 생각하는 것보다 못하며, 백 번 생각하는 것이 한 번 행동하는 것보다 못하다.
한서 권69 조충국신경기전39 중 조충국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