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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기현 Nov 27. 2023

완벽은 없다, 단지 완벽하고자 하는 마음만 있을 뿐.

심리상담가의 사색25


본 글은 심리상담가로서 상담하고 생활하며 느낀 바를 나누는 글이며, 1인칭 시점의 독백체의 글로 이루어집니다.

아울러 본 글에서 언급된 사람의 이름, 직업, 나이, 지역 등 배경정보는 각색되어 창작되었으며, 실제 인물이나 기관과 관련이 없음을 알려드립니다.

© etien_nl, 출처 Unsplash


내담자 L은 곧잘 자신이 하는 일이 완벽해야 한다고 이야기를 했다. 동시에 완벽하게 하지 못할 것 같으면 시작조차 하지 않거나, 완성하는 시도를 하지 않고 미루기만 할 뿐이었다. 나는 L의 말을 들으면서 그의 마음이 이해가 되면서도 한 편으로는 뭔가 그것이 결코 좋지 않음을 지적하고 싶은 내 마음을 느꼈다.

그를 향한 내 속마음은 이랬다.


'완벽하려고 하니까 안 되는 거예요. 시작조차 못 하는 거잖아요. 그리고 완벽하지 않은 자신을 마주하는 게 싫은 거고요. 완벽은 당신은 갉아먹고 있어요.'


상담은 내담자를 사랑하는 일이고 내담자와의 신뢰 관계가 가장 중요하다는 걸 인정하면서도, 나 또한 이것이 잘되지 않는 순간이었다.

과연 내담자 L의 행동이나 말에서 내가 그를 지적하고 싶은 마음이 생긴 건 무엇 때문이었을까?


이렇게 강한 마음이 일어나는 걸 상담에서는 상담가의 역전이가 일어난 경우로 본다. 상담가가 내담자의 전이로부터 무의식적인 반응을 일으킨다는 의미로, 상담가 개인적으로 해결해야 할 사안이나 이슈가 있음을 의미한다. 

나는 '완벽'이라는 단어에 대한 거부감이 많은 편이다. 완벽하다는 말을 내가 듣더라도, 아니면 누군가가 완벽하다는 평가를 받더라도 별로인 듯한 느낌이 들고, 완벽이라는 단어 자체조차 가능하면 사용하지 않고자 하는 마음이 강한 편이다. 개인적으로 '완벽'이라는 단어가 의미하는 바가 나에게 뭔가 걸리는 부분이 있는 것 같은데, 문득 그것이 무엇일까 생각을 해봤다.


고등학교 시절의 나는 대학 입시를 위해 상당히 경쟁적인 마음가짐으로 지냈었다. 친구임에도 불구하고, 친구를 이겨야 하는 마음가짐이 충돌하고 있었다. 겉으로는 같이 공부하자고 하고, 잘 해보자고 하면서도, 속으로는 '저 친구를 어떻게든 내가 이겨보겠다, 이겨야 한다'.라는 마음이 강했다. 그렇다 보니, 친구가 공부를 하고 있지 않거나 잠깐이라도 졸기라도 하면 그걸 보면서 '잘 됐다.'라며 쾌감을 느끼는 나에 대해 실망하면서도, 어쩔 수 없는 것이라고 자위하며 입시 시절을 보냈다. 그리고 전국에 나의 입시 경쟁자가 있다고 생각하며, 잠깐이라도 내가 졸거나 딴짓을 하면 나 스스로를 혼내며 계속 공부해야 한다고 밀어붙였다. 그렇다 보니 이 시기는 정말 심리적으로 혼란스러웠고 미성숙했지만, 입시라는 명목을 핑계 삼아 내 마음을 그저 외면했다.

당시에 나는 1등이 아니면 의미가 없다는 생각을 했던 때가 많았다. 2등을 해서 꽤나 좋은 성적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1등인 다른 학생을 지켜보면서 나의 결과는 탐탁지 않았다. 그리고 모의고사를 보더라도, 1등급이 아니거나 백분위가 99, 100% 정도로 나오지 않으면 그것 또한 참 마음에 들지 않았다. 오로지 입시에서 성공하는 삶만이 내 삶의 전부인 것처럼 행동하면서 지냈다. 잠자는 시간, 밥 먹는 시간과 같은 인간의 기본적인 생존 욕구조차 줄이려고 했으니 말이다. 정말 그저 공부에서만큼은 최고이고 싶었고, 무결점이었고 싶었고, 완벽한 신이 되고 싶은 마음이 컸다.

하지만 완벽해야 한다는 마음 이면에는 무서운 진실이 하나 있었다. 그건 바로 내가 지금 이 순간은 완벽하지 않다는 것을 의미한다는 것이었다. 또한 완벽하지 않은 존재라는 것을 내가 몹시 두려워하고 있다는 걸 뜻했다. 그렇다 보니 현재 나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은 불가능해져버렸다. 내가 별로인 것 같고, 완벽하지 않은 나는 무가치한 사람 같으며, 계속해서 부족하고 결점이 있는 사람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그것을 경험하지 않고자 그저 '완벽'을 위해 맹목적으로 행동하는 경주마가 되어갈 뿐이었다.


이 세상에 '완벽'이라는 것은 없다. 100점을 맞는다고 한들, 그것이 당신이 그 영역에서 완벽하다는 걸 보장하지는 않는다. 그저 이번 시험에서 문제를 다 맞혔다는 걸 의미하지, 당신이 제일 뛰어난 사람이라는 걸 뜻하지 않는다. 이 세상에 당신의 존재를 '완벽'하다고 평가할 수 있는 존재는 없으니까 말이다. 

설령 제일 뛰어난 사람이라고 자부하거나 타인이 인정한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당신을 행복하게 하지 못한다. '100점을 하지 않으면', '1등을 하지 않으면', '내가 완벽하지 않으면' 등의 불안과 싸우면 살 뿐이다. 또한 내가 불완전하고 결점이 있는 평범한 사람이라는 걸 받아들이지 못한 나머지 이러한 두려움을 마주하지 않고자 한다. 그래서 완벽하지 않으면 나의 존재는 무가치한 것만 같은 부정적인 느낌으로 가득 차고 이를 벗어나고자 하지만 벗어날 수 없는 쳇바퀴의 수렁에 빠질 뿐이다.


우리는 완벽할 수 없다. 단지, 완벽해지고자 하는 마음만있을 뿐이다. 그리고 완벽을 추구하고 거기에 가까워지고자 하는 나의 노력과 행동만이 있을 뿐이다. 노력과 행동은 마땅히 존중받아야 하겠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완벽해지는 결과 지점은 없다.

설령 완벽이라는 게 있다고 하더라도, 완벽이 우리를 행복하게 해주지는 못한다. 현재의 삶을 부정하고, 현재의 당신을 부정하게 될 수 있다. 사람이 사는 것이 행복을 위해서라고 한다면, 행복을 보장해 주지 못한 완벽에 계속해서 집착할 필요가 있을까? 나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정말 완벽만을 추구하는 삶은 이제 버릴 때가 되었다. 그리고 그 대신에 우리에게 당장 필요한 것은 지금 있는 그대로 당신은 충분히 괜찮은 존재임을 받아들이는 마음가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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