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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기현 Dec 26. 2023

경계와 무경계, 단절과 연결

심리상담가의 사색 27

본 글은 심리상담가로서 상담하고 생활하며 느낀 바를 나누는 글이며, 1인칭 시점의 독백체의 글로 이루어집니다.

아울러 본 글에서 언급된 사람의 이름, 직업, 나이, 지역 등 배경정보는 각색되어 창작되었으며, 실제 인물이나 기관과 관련이 없음을 알려드립니다.

© patrickperkins, 출처 Unsplash


나는 심리검사 TCI의 성격 척도 중 연대감과 자기초월이 낮은 사람이다. 풀어서 이야기한다면, 다른 사회 구성원들과 잘 지내는 것이나 조화를 이루며 사는 것을 그다지 중요시하지 않는 편이고, 나와 자연이나 우주가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이 별로 없고 초월적인 존재에 대해 인정하지 않는 편이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자율성 척도는 높은 편이라서, 오롯이 나의 삶은 내 것이고, 내가 하는 일에 대한 결과는 나의 책임이라는 생각이 강한 편이다. 그리고 나의 삶에 대한 목표는 내가 직접 설계하고 개척해나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이전의 심리상담가의 사색 연재 글에서도 느꼈을 수도 있고, 오늘의 서두에서도 느꼈을 수도 있지만, 나는 '나'라는 표현을 자주 쓰는 사람이다. 그만큼 나와 타인과의 구분을 명확하게 하고, 경계를 선명하게 세우는 편이다. 또한 '나'를 매우 중요시하는 사람이기도 하다.


그래서 고등학교 3학년 시절, 대학 입시를 치르고 좋은 결과를 맞이할 때, 한없이 기뻤다. 그래도 사회적으로 인정하는 대학에 당당하게 입학했으니까. 입시 결과를 누가 만들어냈느냐는 질문을 그 당시 받았더라면, 나는 '오롯이 100% 내가 한 겁니다.'라고 대답했을 것이다. 20대 시절 내내, 똑같은 질문을 받더라도 그 대답은 한결같았을 것이다.

한편, 대학원 석사 시절 중 초월심리학 분야에서 저명한 사람인 켄 윌버의 저서 중 하나인 무경계를 읽었을 때, 내용 자체가 이해되지는 않았다. 워낙에 유명한 책이어서 한 번 찾아봤는데 나에게 호감적인 책은 아니었다. 나에게는 논리적으로 도무지 맞지 않는 이야기를 한다는 느낌이었다. 그는 경계를 세우는 행위가 우리에게 익숙하나, 경계를 세우고 구분 짓는 행동으로 인해 우리가 심리적으로 괴로워질 수 있다는 이야기를 했다. 나로서는 인간이 구분 짓고 경계를 세우는 데 익숙하다는 점에 대해선 이해하겠으나, 그로 인해 심리적으로 힘들어질 수 있다는 것은 와닿지 않았다. 오히려 구분을 명확히 지어야 부정적인 내사나 투사와 같은 일이 없을 수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으니까.


하지만 30대가 넘어서면서부터, 점점 삶이라는 것이 내가 계획하는 대로 잘되지 않는다는 것을 느끼기 시작했다. 불합격이나 탈락과 같은 결과, 불합리해 보이는 처우나 처사, 강제적인 행동이나 실천 등 내가 원하는 것과 다르게 대처할 수밖에 없는 일들을 점점 경험하면서, 나는 내가 생각하는 만큼 대단하고 우월한 존재가 아님을 느끼기 시작했다. 오히려 평범하고 나약한 면이 많다는 것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사람이라는 것을 이해하기 시작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나의 전지전능한 자기애가 깨지면서, 다른 사람과 다를 바 없는 한 인간으로서의 나를 받아들이는 시기였을 것이다.

또한 30대 중반이 되고 제주로 내려와 여러 사람을 만나고 여러 경험을 하면서, 또한 명상을 본격적으로 시작하면서부터는 점점 경계 짓는 일이 당사자를 고립시킬 수 있는 가능성이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나의 내면을 구분 짓고 경계를 세우는 일을 과도하게 하게 되면, 나는 내 안에서 인정하고 좋아할 만한 부분은 수용하고 포용하지만, 나의 한 면으로 분명히 존재하지만 마음에 들어 하지 않는 부분은 배척하고 부정하기 시작한다. 이로 인해 나의 심리 내적인 부분을 전체적으로 받아들이기는 어려워진다. 그 결과, 심리 내적으로 나는 분열되기 시작하고 연결감은 끊어져 버리면서, 나의 내면은 피 터지는 전쟁터가 되어 간다.

한편, 내가 다른 사람과 나를 계속해서 구분하고 엄격히 상대를 나와는 다른 사람으로 대우한다면, 나는 상대에 대해 궁금해할 일이 없어진다. 나와 다른 사람인데, 굳이 그 사람을 알아야 할 필요가 있는가? 시간 낭비일 뿐인데. 그리고 나의 일이나 활동에만 집중하고, 상대방과 관계 맺는 것에 대한 욕구는 줄어들거나 점점 사라질 수 있다. 이것이 거듭되고 지속된다면 그 결과는 점점 혼자 고립된 생활을 하게 되고, 다른 사람과는 단절된 일상을 지내게 된다(이런 모습은 은둔형 외톨이라고 불리는 대상의 심리와는 다소 다르다. 그들은 대체로 관계 및 연결을 원하나, 그것이 두렵거나 어려워서 피하는 경우가 많다.). 그 결과, 삶에서 공허함을 느끼거나 외로움이나 단절감, 홀로된 듯한 느낌이 많아지면서 괴로워진다. 


반면, 내가 나와 경계를 짓지 않고 무경계적인 혹은 전체로서 나를 이해한다면 나는 내 안의 모든 부분과 마음을 포용하면서 있는 그대로의 나를 수용하게 될 것이다. 나아가 타자와 나의 경계를 허물기 시작하여 무경계적인 혹은 전체로서 우리를 이해한다면, 나와 너는 다르지 않음을 받아들이면서 그들의 경험에 공감하고, 그들도 나의 마음을 공감하며 서로가 더 가까워질 것이다. 그리고 삶에 대한 주관적인 만족감과 기쁨은 늘어날 것이다. 아울러 나를 내 주변 환경이나 자연, 우주나 초월적인 존재와 엄격히 구분 짓지 않는다면, 내가 생각하는 방식이나 행동하는 양식 등 많은 것들이 다른 사람과 상호작용한 결과물이라는 것, 나아가서는 나의 주변 환경과 환경에 영향을 주는 수많은 외부적인 조건에 의해 발생한다는 것을 받아들이게 될 것이다. 그 결과, 나는 점점 겸손해지고 겸허해지며, 삶에 대해 고마움 또한 느끼게 될 것이다.

정리하자면, 이제는 대학 입시 결과에 있어서 그 결과를 오롯이 내가 만들었다고 대답하지는 못할듯하다. 더욱더 중요한 것은 경계에서 무경계로, 단절과 고립에서 연결과 하나 됨이야말로 이 시대를 살아가는 나 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가 좀 더 받아들여야 할 마음가짐이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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