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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논 Feb 08. 2024

A ~나이에 따라 찾아오는 외로움에 대하여~

나를 잊은, 그리고 잊을 사람들 #1. 가짜 비혼주의자가 간과하는 사실들

내가 20대 중반에 만났던 A는 그 자체로 빛났던 기억이 있다. 특수 분야를 연구하는 전문직 종사자란 직함과 그에 걸맞는 고액 연봉, 화이트 톤으로 도배된 잘 꾸민 자가 오피스텔. 운동과 공부 무엇 하나 게을리 하지 않는 철저한 자기관리. 그렇게 살아 온 흔적이 고스란히 묻어나는 탄력적인 몸매. 여기에 물려줄 게 많은 자산가 부모님까지. 요즘 시대에 급부상한 '육각형 인간' '알파메일'을 그대로 풀어놓은 듯한 사람이었다. 


반면 그와 만나던 25살의 나는 많은 것이 대조적이었다. 그저 그런 4년제 대학교의 신문방송학과 재학생. 평일은 물론 주말까지 아르바이트를 해야만 최소 생계가 유지되는 환경. 엉덩이 붙이고 앉아있는다고 높아질 수 없는 스펙의 벽과 남은 시간은 학원과 스터디에 투자해야 하는 가난한 아나운서 지망생. 학원에서 카메라테스트를 받을 때면 성형을 해야 한다며 지적받는 한심한 외모까지. A와 비교하면 또래의 누구와 견주어도 내세울 것이 하나도 없는 시절이었다.


A와 나는 12갑자 한 회차를 초월할 정도의 나이차가 있었다. 그래도 당시의 그는 사랑이 열등감의 대상이었다. 어쩌면 마음 속 한 켠에선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아무리 노력한들 38살의 나는 절대 A와 같은 삶을 살 수 없다는 것을. 오히려 지금 준비하는 것 조차 될 가능성이 희박해 뒤늦게나마 다른 일을 알아봐야 하는 처지를. 그래서 내게 A는 손을 뻗어도 도저히 닿을 수 없는 빛 같은 존재였다.


A에겐 없고 내게는 있던 유일한 존재가 하나 있다. 바로 혈육. 그것도 평생의 동반자로 살아야 하는 아주 가까운 존재의. 그는 외동이었고 공부만 하느라 친구가 없어 인간관계와 애정에 늘 목마른 사람이었다. A는 나의 많은 것을 이해하지 못했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이해하지 못했던 것은 가족과 주변 사람들에게 쏟는 애정이었다. 그는 한 번도 주변 사람에게 '일반적인' 사랑을 받아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늘 자신이 아닌 다른 대상에게 열정을 쏟는 것을 부질없는 짓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오로지 나와 같은, 애욕을 쏟을 대상 하나만 있으면 충분한 인생이었다. 그 가장 큰 차이를 낳은 것이 그 혈육이 유무였다. 내게는 아주 아픈, 장애를 가진 친누나가 있었다. 발달장애 중증 판정을 받아 사회생활은 고사하고 바깥도 제대로 돌아다니지 못한 채 집에만 있는 보호대상이자 내가 밖에서 겪고 들려주는 이야기가 세상의 전부인 가녀린 존재.


단언컨데 살면서 그녀가 미웠던 순간은 단 한 순간도 없다. 오히려 그 때도 내겐 A보다 더욱 소중한, 평생을 함께 할 유일한 내 편이며 가장 사랑하는 존재였다. 그녀가 내 평생의 짐덩이임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녀를 미워할 수도, 밀어낼 수도 없다. 아이러니하게도 내가 구원받을 수 있는 것은 그녀 때문이었다. 전통적인 대한민국 사회에서는 결혼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달은 뒤 그런 감정은 더욱 커졌다. 최소한 이 메마른 세상에서 내가 혼자 마르지 않을 수 있게 해줄 사람이라서. 마치 휴먼 다큐멘터리에 나오는 노모와 병든 자식처럼, 사실 서로가 물질적으로/정신적으로 지탱해줄 수 있는 존재니까.


그런 내게 '영원'을 함께 할 동반자는 필요한 관계가 아니다. 선택할 수 없었던 환경에 놓였던 것도 있지만, 이미 어릴 때부터 평생을 함께 할 동반자로 누군가를 상정한 유약한 나였기에. 평생을 아픈 누군가에게 심적으로 의지할 생각을 하며 살았기에. 내게는 30년 뒤의 외로움과 고독은. 큰 문제가 아니었다.


반면 A는 달랐다. 그는 '영원'을 함께 할 동반자에 집착하는 사람이었다. 10년 전 기준으로 38살. 이미 사회에선 결혼을 하지 않는 게 이상하게 보일 정도의 나이였고, 더 이상 20대 처럼 설렘과 달달함만 있는 연애를 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다. 그는 누구를 만나든 '같이 할 동반자'로서 사람을 판단했고, 그것이 옆에 둘 수 있는 사람인지 결정하는 척도기도 했다. 당연히 '타인'과 노후를 동반할 생각이 없는 나는, 그에게 어울리는 사람이 아니었다.


같은 천장을 바라보며 누워있었던 어두운 방. 나는 몸을 비스듬히 돌려 그에게 물었다.

"A는 왜, 그렇게 까지 인생 동반자에 집착해?" 

분명 집착이란 단어를 필터없이 사용했던 기억이 아직도 선명하다. 사실 그의 답을 이해하고자 질문한 건 아니다. 그저 나와 당신은 서로 다른 미래를 그리고 있다는 걸 간접적으로 표현할 목적이었다. 그리고 그는 금방이라도 잠들 것 같은 나지막한 목소리로 이렇게 답변했다.

"그렇지 않으면, 인생이 너무나 외롭잖아." 라고.


어린 내게는 아직 복잡하고 어려운 개념이었다. 외로움. 분명히 그는 그 단어를 사용했다. 고작 그깟 감정 하나로. 불확실한 영원을 찾아 이 사막 같은 무지개 로드를 전전하다니. 외로움 같은 것보다 더 중요하고 들여봐야 할 가치가 얼마나 많은데. 이 사람은 고작 자신의 외로움을 해소할 목적 하나로 평생의 동반자를 갈구하다니. 나이를 그렇게 먹어도 철부지같은 생각이라 여겼다. 누군가와 '동반'한다는 건 단순히 외로움만으로 결정할 수 있을 만큼 가벼운 문제가 아닌데. 아, 이 사람은 '동반자'가 있는 삶에 대해서 깊은 고찰을 해본 적이 없는 사람이구나. 오히려 자신의 외로움이 어디서 기인하는 건지도 모르는 사람이구나. 그렇게 생각하니 아무것도 부러울 게 없을 것 처럼 보였던 A보다, 내가 가래도 조금이나마 나은 인생인 것처럼 느껴졌다. 


"외로움을, 꼭 연인으로 충족시키면 안 된다고 했어."

"왜?"

"외로움은 다양하고 복잡한 감정이라고 했던가? 그것은 사랑이 아니라 외로움을 해소하기 위한 행동이라든가, 타인을 진심으로 사랑하지 못하는 내용이라든가. 그렇게 얘기했던 것 같아."

"누가 그래?"

"독서 토론 모임에서 그런 비슷한 주제로 얘기 했던 것 같아."


만족스러웠다. 내가 그렇게 어리기만 한 사람이 아니라는 걸 어필하고 싶었는데 마침 잘 됐지. 당연히 그가 그 말을 어떻게 해석했는 지는 안중에 두지 않기로 했다. 그저 나는 내가 그보다 조금이라도 나은 구석이 있는 사람이라는 걸, 이런 같잖은 철학으로 증명하고 싶었을 뿐이니까. 이런 대사를 던질 수 있는 사람이라는 이미지를 형성하는 것 자체가 중요했다. 이후 A가 외로움을 이야기 할 때마다 '그것을 애인으로 해소하려는 것은 나쁜 감정'이라는 태도를 취했다. 그럴 때마다 조금이라도 그보다 어른스러워진 것 같은 기분이 들어 썩 나쁘지 않았다.


무엇보다 그가 외로움을 논하는 것이 그닥 유쾌한 기분은 아니었다. 그리고 그는 외로워 마땅한 사람이었다. 가족도 친구도 아닌 오로지 자기 자신만 생각하는 사람이었고, 진짜 친구라 부를 수 있는 사람도 없었다. 그런 주제에 외로움은 느껴서 마치 인형을 고르는 듯한 감각으로 애인을 만든다. 그런 주제에 누군가와 결혼을 한다는 것만으로 외로움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생각한다니. 


그와 살림을 합칠 생각을 아예 해보지 않았던 건 아니다. 대리석 바닥과 아일랜드 식탁에서 깔끔한 브런치를 즐길 수 있는 삶이 마음 한 구석 어딘가의 속물근성을 자극하긴 했다. 하지만 그런 삶을 살고 있음에도 그는 그 외로움이라는 알량한 감정 하나 컨트롤 하지 못하는 미숙한 어른이었다. 그는 가정을 이루고 싶어 했고 홀로 남는 것을 두려워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내게 여러 번 "어떤 관계도 영원할 수 없다"는 것을 강조했다. 그의 세계관에서는 이제 더 이상 새로운 친구를 사귀기도 어렵고, 생기더라도 어린 시절의 우정같은 뜨거운 감정을 교류할 수 있는 아니라는 이유로. 나도 언젠간 반드시 그걸 느끼게 될 때가 올 거라고.



"어쩌면 A는 너무 많은 걸 가져서 외로운 것 같아."


그에게 마지막으로 남긴 메세지는 이랬다. 서로 너무 바쁘니 효율적인 이별을 추구하자는 이유로. 나는 저 짧은 인사를 마지막으로 그의 곁을 떠났다. 그를 반려자로 생각하고 있지 않았기에 빨리 옆자리를 내어주는 것이 그에게도 나은 방향이었기를 바라면서.


어찌됐든 A는. 모든 것을 다 가지고도 외로울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해준, 내 인생의 의미있는 만남이었다.


그리고 오랜 시간이 지나, 어느 덧 나도 그 시절의 A와 비슷한 나이가 되었을 무렵. 비로소 그가 들여다 본 감정이 무엇인지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인간의 미래는 결코 혼자 있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난 뒤 찾아오는 막막한 어둠과 불안함. 애초에 무리를 짓도록 본능이 설계된 동물이 가정을 이루지 못하고 혼자 남았을 때 어떤 심적 변화가 찾아오는 지.


언제부터인지 비혼에 관한 담론이 부쩍 늘었다. 비혼식이란 단어도 생소하게 느껴지지 않을 정도다. 덕분에 비혼이라 주장했을 때 돌아오는 반응도 많이 심플해졌다. "요즘은 그게 편하지" 같은 가벼운 존중도 돌아온다. 그만큼 '전통적 의미의 가족 결합과 화합'을 운운하며 설득을 시도하는 사람도 많이 줄었다. 아마 여성운동이 활발해지기 시작한 덕분 아닐까 싶다. 여성이 소유물로 전락하는 가부장 사회의 문제점을 트위터와 미디어가 끊임없이 지적했고, 그것을 학습한 젊은 여성들이 결혼을 무슨 인생의 무덤 정도로 여기기 시작하면서 비혼주의란 개념이 흔해진 것 같다. 실제로 트위터와 여초 커뮤니티 사이트에선 "나는 한 집안의 아내이자 며느리가 아닌 온전한 나로 살고 싶다"같은 주장이 지금도 꽤 많이 발견되니까. 


그들과 나와 A씨, 그리고 우리 누나. 이들의 미래는 모두 똑같은 비혼이다. 하지만 같은 비혼을 그리고 있는 사람들임에도 생각의 결이 완전히 달라 놀랄 때가 많다. 선택할 수 있음에도 굳이 고르려 하지 않는 사람과, A처럼 사무치는 외로움을 참지 못해 결혼을 하고 싶지만 그걸 택할 수 없는 사람 사이에 존재하는 아주 미세한 입장차가 존재한다. 


그런 사람들의 이야기를 종합해 보면, 아직도 많은 비혼주의자들이 커리어와 자기관리만으로 비혼의 외로움을 모두 해소할 수 있을 것이라 착각한다. 그러면서도 환갑이 넘어서도 빈 집에 홀로 들어가는 느낌은 굳이 생각해 보려 하지 않는다. 사회적 자신과 개인적 자신을 구분하지 못하는 모양이다. 심지어 먼 훗날엔 비혼가구가 늘어 관련 커뮤니티도 활성화 될 것이고, 성 소수자 실버 타운이 생길 것이라는 둥, 현실과 동떨어진 근거없는 믿음에 빠져 미래를 낙관적으로만 바라본다. 돈을 많이 모아 둔 노후는 혼자 있어도 괜찮다고, 아직 늙어보지도 않은 주제에 장담한다.


현실은 언제나 상상보다 잔혹한 법이다. 그래서 커리어와 고독은 별개다. 해를 거듭할 수록 사적인 연락은 줄어들고 혼자 있는 시간은 많아진다. 대한민국에선 환갑이 넘어서도 당당한 샐러리 맨으로 살기 어렵다. 그렇다고 무인 가게를 운영하며 취미 생활에 몰두하는 노후를 산다면? 젊고 창창할 때 취미생활이 없어 무료한 시간을 보내는 사람이 태반인데 그 때 가슴이 뜨거워지는 새 취미를 찾을 수 있을까. 결국 외로움, 고독. 이 모든 것은 내가 쌓아올린 모든 것과는 별개다. 마치 그 시절의 A가 나이를 먹고 사무치는 외로움에 시달렸던 것처럼. 일에 집중하다가도 어느 순간 자신을 돌아보고 행복을 고찰하는 순간은 반드시 온다. 그때 내 곁에 남은 사람을 돌아본 순간, 그제서야 외로움은 곁으로 찾아온다.


대한민국에서 비혼주의를 표방하며 살기로 결힘한 이상. 이 한 가지는 가슴 속 한 켠에 반드시 새겨야 한다. 1인가구와 비혼주의 길 끝에 기다리고 있는 단어는 독거중년과 독거노인이라고. 자녀가 있어도 독거노인이 생기는 사회다. 비혼주의자가 거기서 자유로울 수 있을 확률은 지극히 낮다. 혼자 살아야 할 삶에 지대한 뜻이 있다면. 홀로 늙어가는 것이 어떤 느낌일지 시뮬레이션 해봐야 한다. 비혼주의는 30대, 40대의 커리어 우먼들에게만 해당하는 내용이 아니다. 그 상태에서 시간이 더 지나면, 얄짤없이 기다리고 있는 것은 지금 신문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고독한 노년생활이다. 


그들의 선택이 가볍다는 이유로 그걸 비난할 순 없다. 인생은 모두 저마다의 선택이 있기에. 다만 기왕 평생 독신을 표방하기로 했다면 이 정도는 최소한 깊게 생각해봐야 한다는 조언만 전하고 싶을 따름이다. 나와 내 주변, 나와 비슷한 사람들은 이미 '홀로 늙어 죽는 것'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과 생각을 가지고 있다. 영화 '메종 드 히미코'를 보고 오열하는 사람들이 많은 건 다 이유가 있다. 우리는 가볍게 자신의 페미니즘이나 결혼활동 실패의 방패막으로 쓰이는 비혼주의 개념보다 그 미래에 대해 더 깊고 심도있게 생각해 본 사람들이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독신을 고집하고 싶다면, 그 선택을 부디 응원하되, 조금 더 깊은 생각을 해볼 수 있게끔 A와의 이야기를 곁들여 보았다. 


2024년. 그와 연락이 끊긴 지 벌써 10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다. 당연히 아나운서는 못 됐고, 그나마 언론인이라며 되자고 시작한 기자생활은 진작에 그만뒀다. 


그 시절과 비교하면 살은 거의 20kg 이상 불어났고, 피부과를 아무리 다녀도 늘어진 탄력을 되돌릴 순 없었다. A처럼 멋진 대리석 바닥이 아닌 겨울엔 추워서 옷을 다 입어야 하는 일본식 가옥에서, 인테리어라곤 전혀 고려하지 않은 채 살림살이 몇 개 얹어서 살고 있다. 역시나, 그 때 생각했던 미래 그대로다. 그 때의 나는 찬란하게 빛났던 A씨와 모든 것이 다르다. A가 내게서 가장 좋다고 했던 '순수한 빛' 도 이미 바랜지 오래다.


비록 누나와 함께 할 삶이라고 예전부터 정해 둔 인생이지만. 그래도 이제 A가 말했던 물질적인 모든 걸로도 해결할 수 없는 외로움이 무엇인지는 어렴풋이 느껴진다. 어릴 때 A보다 나은 부분이라고 느꼈던 감정들은 애초에 반려자를 선택할 있는 환경조차 갖춰져 있지 않았던 내가 그저 현실에서 도피하고자 만들어 낸 신기루에 불과했다는 것을. 이제는 깨달아버렸다. 그래서 나는 A가 경험했던 그 감정의 순서를 앞으로 그대로 밟아야만 한다. 모든 것이 화려했던 A조차 극복하지 못했던 난관을. 초라하기 짝이 없는 내가 이겨낼 수 있을가. 그렇게 생각하면, 참았던 고독이 폭포처럼 쏟아져 나를 감싼다.



지금은 연락처도 없는 A지만. 나와는 달리 그는 계속 그 때의 눈부신 사람으로 있어주길 바라본다. 그 빛에 이끌려 찾아 온 좋은 사람이, 그가 두려워 하는, 내가 앞으로 맞이할, 고독한 미래를 조금이라도 함께 걷어줄 수 있도록. 


ㅡfin.


[나를 잊은, 그리고 나를 잊을 사람들 시리즈]

만남, 사랑, 질투, 욕정... 어떤 관계든 반드시 근간이 되는 감정은 존재합니다. 이를 잘 다스릴 줄 안다면, 인간관계는 그 어떤 책보다 좋은 성장촉진제가 됩니다. 지금까지 살면서 겪은, 내가 떠나보낸 가족, 친구, 동창, 연인들을 추억하며. 그들이 내 인생에 있어 어떤 자양분이 되었는지 정리하는 에세이 시리즈입니다. 제 경험을 통해 독자 여러분도 다양한 인생을 경험해 본다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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