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잊은, 그리고 잊을 사람들 #2
전편 : https://brunch.co.kr/@knzkyzrh/17
(전편과 어느정도 이어지는 글입니다.)
https://youtu.be/plhqxDLlhB0?si=_59STONoEGoxCAfG
오전 9시까지 강의실에 도착해야 한다. 집에서 가까운 역까지 도보 15분. 지하철로 편도 1시간. 역에서 학교까지 도보 10분. 1교시 수업을 위해 직장인보다 이른 시간에 집을 나서야만 지각을 면할 수 있었다.
딱히 헤르미온느가 되고 싶은 건 아니었다. 오후 2시부터는 교내 아나운서 활동이 잡혀있었고, 그 이후 토익, 일본어, 한국어, 한국사, 시사상식, 논술 스터디까지 소화해야 하는 탓에 1교시 수업이 최선이었다.
학교 밖을 벗어나도 바쁜 건 변하지 않았다. 월수금 저녁은 방송 아카데미, 화목은 쇼호스트 아카데미.
학벌로 충분히 지고 있기 때문에 외모 만큼은 경쟁자들에게 주눅들고 싶지 않아 가방을 가득 채운 화장품들로 화장실에서 메이크업을 점검한다. 이 모든 스케줄이 끝나면 밤 11시.
주말엔 낮과 밤, 각각 다른 아르바이트 일정이 있었다. 즉, 주말에 종일 시간을 내기 위해선 스케줄을 2개나 조정해야 할 만큼 번거로운 작업이 필요하다.
이 퍽퍽한 현실 속에서, 다른 사람과 시간을 보낸다는 것은 사치였다.
내가 A를 만난다는 것은 그런 일이었다. 쥐꼬리 월급을 모아 버버리 가방을 사는 것과 같은 일.
그래도 그에게 내 마음이 닿을 수 있다면 그걸로 괜찮았다. 최대한 시간을 쪼개고 또 쪼개 일주일에 두 시간이라도 함께 시간을 보낸다면. 그 '노력'을 알아주기만 한다면. 그걸로 괜찮았다.
어느 여름 날, A는 전라도 광주에 가고 싶다고 했다.
그는 살면서 단 한 번도 아르바이트를 한 적이 없었다. 홀 서빙보다 값진 노동인(그의 기준에) 고액과외로 쉽게 돈을 벌었던 사람인지라, 고된 노동으로 시간당 5,000원 남짓한 돈을 받는단 감각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래서 그는 그렇게 쉽게 "주말에 광주로 여행가자" 따위의 소리를 내뱉었다.
내가 어떻게 살든, 그의 입장에선 그저 '대학생'에 불과했으니까.
내게 주말에 여행을 떠난다는 것은. 아르바이트 2개를 조정해야 한다는 의미였으며, 그걸 조정하기 위해 평일 스케줄 조정이 필요했다. 그래서 그의 발언은, 단순한 말이 아닌, 도화선에 불을 붙이는 행위였다.
"알바 다른 날로 바꾸면 되잖아."
"도대체 왜 내가 알바까지 바꿔가면서 광주를 가야 해. 대체 거긴 왜 가고 싶은데?"
"그냥. 전라도에서 제일 발달한 지역이라잖아. 궁금해."
궁금하단다. 고작 그런 알량한 호기심 하나에 맞춰주느라 이쪽은 6개가 넘는 일정을 조절해야 하는데. 회사에 연차 하루 올리면 그만인 직장인 주제에 어찌 그런 속 편한 소리를.
단순히 내 사정을 알아주지 않아서라든가.
그런 어린 감정이 아니었다.
동경.
아니 분노에 가까운 감정이었다.
내가 바쁜 삶을 살 수 밖에 없었던 이유는 아르바이트가 차지하는 비중이 컸다. 다시 말하자면, 아르바이트를 하지 않으면 생활이 영위되지 않는 환경에서 자랐다. 3개월에 200만원 하는 학원비를 감당할 수 없는 집안에서, 남들보다 두 배 이상의 시간을 투자하지 않으면 무엇도 이룰 수 없다는 것을, 사무칠 정도로 알고 있었다.
악순환이었다. 그런 환경 속에서 자란 내가, 꿈을 이루기 위해선, 학원이 필수였다. 인맥도, 학벌도 가지지 않은 내겐 '아카데미 추천생'이란 타이틀이 필요했다. 쇼호스트 아카데미에서 간간히 던져주는 아마추어 진행자 오디션 자리라도, 거기에 등록된 학생이 아니라면 카메라 테스트 기회조차 얻을 수 없었으니까.
환경.
아무리 뼈를 깎고 실리콘을 넣어도 타고난 미모를 이길 수 없는 것처럼. 발버둥쳐도 이 현실로부터 도망치는 건 불가능했다. 남들처럼 돈에 미쳐 성공가도만 보고 달린다면 조금 나아졌을 수도 있다. 애석하게도 '하고 싶은 걸 해야 한다'는 정신병을 선천적으로 달고 태어난 지라, 인생에 그런 선택지가 있는 줄도 모르고 살았다.
A는 정반대였다.
연구원이었지만 딱히 연구가 하고 싶어서 그 일을 하는 건 아니었다.
그냥 자기가 가장 잘 하는 과목이 과학이었다고 한다. 수학도 좋았지만, 과학이 조금 더 머리를 쓸 수 있는 일이라 재밌었단다. 그래서 집에서 대학원까지 학비를 지원해줬고, 딱히 큰 열정 없이 일을 다닌단다.
무언가를 간절히 하고 싶었음에도 70만원이 없어 지원이 불가능한 환경에서 자란 나와, 한 달에 700만원을 지원해줄 수 있음에도 딱히 좋아하는 것 조차 없이 살았던 그의 가치관은, 태생부터 맞추는 게 불가능했다.
그는 내게 예쁜 미소와 낯가림 없는 성격, 누구든 집중하게 만드는 화술을 부럽다고 얘기했다. 그딴 건 전부 내가 노력으로 빚은 모습이다. 매일 거울 보며 가지런한 미소를 연구했고, 방송 일을 하려면 무대공포증이 없어야 한다며 벌벌거림을 딛고 어릴 때부터 무대에 섰다. 내가 가진 것은 모두 누구든 노력만 하면 거머쥘 수 있는 하찮은 장기지, 천성이 아니었다.
반면 A가 가진 것은 내가 평생 노력해도 얻을 수 없는, 진정한 보석이었다. 내 불행은 외부에서 오는 것이기에 내가 어찌 할 수 없는 노릇인데, 적어도 그걸로 불행한 적이 없으니까. 그 칙칙하고 얼룩진 기억을 모르고 살 수 있다니. 얼마나 값진 삶인가.
그렇다고 마냥 환경 탓만 할 수도 없었다.
학원을 가면 별천지가 펼쳐지는데, 이미 주변에서 "예쁘다"는 말을 많이 들어서 아카데미까지 온 케이스가 8할 이상. 딱히 어릴 때부터 꿈이 있었다거나, 그런 사람은 드물다. 열정으로 따지면 내가 그들보단 앞서있다.
남들은 내게 '예쁘다'고 말해줬지만, 그것이 정작 호감으로 이어지는 경우는 드물었다. 사실 굳이 따지면 '향기없는 꽃'이라는 평가가 더 압도적이었다.
이 사람 만큼은, 나를 정말로 좋아하는 게 맞겠지.
그렇게 생각하고 던진 고백에는 "어, 나 너 안 좋아하는데. 그냥 너무 좋은 사람이라 친구 하고 싶었어."같은 답변이 돌아온다.
이딴 애들 하나 꼬시지 못하는 내가. 어떻게 예쁜 애들 몇 백 명이 단 한 자리를 놓고 경쟁하는 왕좌의 게임에서 미모로 이길 수 있겠는가.
'충분히 예쁜' 정도로는 안 된다. 누가 봐도 '엄청 예쁜' 정도가 되어야만, 이 퍽퍽한 현실 속에서도 내가 꿈을 이뤄낼 수 있다. 하지만 내 주변 사람들은 유독 내게 야박했다. 페이스북 속 희미한 인상의 남자 사진엔 좋아요를 눌러주면서, 내게는 "예쁜 척 하지 말아라"라는 댓글을 남긴다.
그것이,
그림 그리는 사람들에게 '너 그림 되게 못 그린다' 라고 하는 것과 같은 뜻인 줄도 모르고.
결국 환경만 싫은 것이 아니었다.
이런 어중간하게 예쁜 외모도 싫었다.
평범한 애들 중 그나마 나은 하나가 아니라,
예쁜 애들 중에서도 유독 시선을 끄는 하나가 되어야만 했기에.
A는 그런 내게 "자기가 만난 사람 중 가장 입체적으로 생겼고, 그래서 좋다"고 말했다.
이미 내가 가진 외모에 만족할 수 없는 나였기에 그 말이 결코 진정성 있게 다가올 리가 없었다.
그래서 나는,
나도, A도.
그 누구도 사랑할 수 없게 되었다.
내가 가진 모든 것을 싫어했고, A가 가진 모든 것을 질투했기에.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 행복한 사랑을 할 리 없는 건 이런 일이었다.
나는 예쁘지도, 학벌이 좋지도, 똑똑하지도, 집안이 특출나지도 않았다. 그렇다고 안정적인 직업이 있는 것도 아니었고, 졸업하면 최소 3년을 시험에 꼬박 몰두해야 하는 대학생에 불과했다.
그 프레임이 만든 감옥에, 스스로를 가둬버렸다. 학원만 가도 나보다 예쁜 사람들이 널렸기에. 내게 예쁘다고 다가오는 사람의 마음이 진심으로 느껴질 리가 없다. 그렇게 누구도 열 수 없는 철창을 만들었다.
A에게도 마찬가지였다.
당시 나는 사랑을 몰랐다. 경쟁에 취해 누군가는 내게 만족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고려할 수 없었고, 끊임없이 그 마음을 의심하고 또 의심했다.
내가 아직 스스로에게 만족할 수 없는데, 어떻게 다른 사람들이 고작 나 정도로 만족할 수 있겠는가. 그 생각이 마음을 지배했다. 상대방 인생엔 반드시 나보다 더 나은 선택이란 게 존재할테니까.
그렇게 한 번 마음을 의심하기 시작하면 그 의혹이 연쇄작용을 일으킨다.
작고 사소한 일, 아주 별 것 아닌 일에도 의미를 부여하고 '것 봐, 그럴 줄 알았어' 라며 확증편향을 증폭시킨다. 그래서 "나 사람 잘 본다"는 착각에 취하게 만든다. 그것이 다시 '봐, 내가 사람을 잘 본다니까' 라며 무한히 반복한다.
A에게도 그랬다.
그냥 "광주에 가고 싶다"는 한 마디였는데, 그것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나를 이해하지 않는 사람'이란 결론을 도출했다.
내 일정을, 내 사정을. 얼마나 이해하지 않으면 이런 뻔뻔한 소리를 할까. 나는 내 상황 속에서도 최대한 시간을 나노 단위로 쪼개 그를 위해 헌신하고 있는데, 저 사람은 어떻게 '일정을 이해하는' 정도도 하지 못하는 이기적인 모습을 보여줄까.
처음부터 A는 나를 왜 선택했을까. 분명 예쁘다거나, 입체적으로 생겼다거나, 그런 이유였지. 그러니까 나는 결국 이런 사정을 모두 이해할 노력을 할 정도론 예쁘지 않다는 뜻이야. 이 행동이, 그것의 증명이고.
결국 A를 사랑하지 않게 되는 것 뿐만 아니라,
내 마음에서 A는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선을 긋는다.
나도 그를 사랑하지 않고,
그에게서도 사랑을 확인받을 수 없기에.
그 시점에서 이 관계엔 마침표가 찍힌 셈이었다.
분노는 시작하면 모든 것을 나쁘게 해석한다.
먼저 나에 대한 분노.
왜 굳이 '방송가 입성'을 꿈꿔 스스로에게 이런 고통을 부여할까. 왜 그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동경하기 시작했을까. 담담한 자책이 이어진다. 만약 남들처럼 꿈도 목표도 없이 살았더라면 그 돈으로 방콕이나 다녀오고, 얼굴이나 고쳤을텐데. 이렇게 생계 최전선 끝자락에 아슬아슬하게 걸터앉지 않아도 되었을텐데.
그리고 상대를 향한 가시.
방금 그 발언은 내 삶을 바보취급하는 거야.
이 한 마디로 나와 상대방 모두를 너덜너덜하게 만든다.
광주 뿐만이 아니었다.
그는 내게 종종 물었다.
"다른 곳 취업 준비도 같이 하는 중인 거지?"
우스웠다. 무언가를 위해 열심히 살아본 적도 없는 주제에 감히 타인의 가능성을 재단하는 모습이. 그렇게 쉽게 변할 꿈이라면 뭐하러 이만큼 열심히 살겠나. 친구들 따라 공기업이나 일반 사기업 입사를 준비하는 게 2배는 더 쉬운 길임을 알고 있는데. 그럼에도 굳이 어려운 길을 택해 가시밭길을 버티고 있는 사람의 마음을. 어떻게 그렇게 쉽게 '그만두라'는 식으로 말할 수 있는가.
"딱히 준비 안 해. 하나만 파도 모자른데 어떻게 다른 걸 같이 준비 해."
"굳이 같이 준비 할 필요 없이 지금 하는 거 그대로 하면서 다른 곳에 지원만 하면 되잖아."
"다른 곳에 지원하려고 이만큼 노력하는 게 아닌데 왜 그래야 해?"
A는 언제나 내 이런 마음 저편에 있는 묵혀 둔 열등감까지 끄집어 내는 존재였다. 그 빛이 강렬할 수록 앞에 서 있는 내 그림자는 더욱 짙어진다. 엘리트 인생의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연구원 나부랭이가 된 덕분에 토익은 커녕 '컴활' 조차 공부한 적 없는 주제에. 나는 그걸로 그를 쉽게 깎아내리지 않는데, 그들은 어찌 그리 나의 노력에 이리 삭막하게 구는 지. 당시엔 그 감정이 요동치던 격동의 시기였기에, 그걸 무시하는 모든 사람을 내 인생이란 기록 속에서 말소하던 때였다. 그도 마찬가지였다. 나를 응원하지 않는 존재, 모두 유죄.
"다른 걸 할 생각 없이 그냥 있으니까 문제인 거야 항상."
시작했다.
결국은 똑같은 싸움의 반복.
"그 밖의 선택지를 그렇게 깊게 고민할 여력이 없다고!"
그 말을 들은 A의 표정은 철부지같은 어린 생각을 맞춰주기 힘들다는 기색이 역력했다. 그의 눈동자에 비친 내 모습도 마찬가지였다. 또래보다 사회경험이 부족하고, 제대로 된 조언 하나 할 줄 모르는 '미성숙한 어른'을 만나느라 지칠대로 지쳐 있었다.
당시 내게 연애란 너무 사치였고, 같이 있는 것 자체가 최대한의 배려였는데. 그것을 말로 표현하지 않아도 그에게 전달되길 바라고 있었는데. 그는 지금껏 그런 '애정표현'을 모르는 건 둘째치고, 그 배려를 이리도 쉽게 무시하는 어른이었으니까.
결국 내가 A와 함께 할 수 없음을 깨닫기는 순간
이별은 빠른 속도로 입술 끝에 찾아왔다.
"어쩌면 A는 너무 많은 걸 가져서 외로운 것 같아."
마침 좋은 핑계도 찾았다.
나의 꿈 타령처럼 그는 지나친 외로움 타령을 반복했다. 듣는 나도 정신이 점점 피폐해질 정도로 동반자에 집착했다. 그걸 이용하기로 했다. 나는 거기 어울려줄 수 없는 사람이란 태도를 유지하자. 그게 내 어둠보다 새까만 열등감을 표출하는 것보단, 분명 서로에게 나을 것이다.
꿈을 이해하지 못하는 그와 마찬가지로, 나는 외로움을 이해하지 못했기에. 서로가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을 각각의 무기와 방패로 삼아, 우리는 생각보다 깔끔하게 관계를 정리했다.
아나운서가 되고 싶었던 나와.
동반자를 찾아 결혼이 하고 싶었던 그는.
그렇게 서로를 이해할 노력을 조금도 하지 않은 채 매듭을 지었다.
추측에 불과하지만 어쩌면 A도 내게 무언가의 열등감을 가지고 있었을 수도 있다.
초면인 사람과 쉽게 말을 이어가지 못하는 그가 가지지 못한 나의 태생적 밝음이 그의 마음에 어둠을 만들고 있었을 지도 모른다.
인간은 누구나 자신의 관점에서만 사물을 해석한다.
타인의 마음도, 행동도. 결국 사물이다.
타인에 대한 해석이란, 결국 본인의 경험과 시야를 투영하는 것에 불과하다.
그래서 관계엔 열등감이 큰 영향을 미친다.
현실에서 신데렐라 스토리가 존재하지 않는 큰 이유 중 하나다.
열등감은 비교에서 출발하는 경우가 많다. 가까운 곳에서 내 현실이 초라하다는 걸 끊임없이 인지시키는 것은 의외로 멘탈이 조금이라도 연약하면 견디기 어려운 고문이다.
나 자신에 대한 평가도 생각보다 객관적이진 않다.
결국 하나의 프리즘에 불과하다. 물체에 닿아 투과되는 빛. 거기에 조금이라도 굴곡이 있으면 그 프리즘도 곧은 모양으로 뻗어가지 않는다. 심지어 자기를 평가한다는 것은 객관적이라고 오해하기 쉽기 때문에, 그 오염을 인지하기도 쉽지가 않다. 자기평가가 낮은 사람들이 끝없는 늪에 빠져 헤어나오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다.
문제는 자기 평가에 오점이 생기면 타인을 행동을 해석하는 프레임에도 왜곡이 생긴다는 점이다. 스스로 예쁘지 않다고 생각하면 누군가 내게 예쁘다고 칭찬해봤자 그 말이 그대로 들리지 않고, 그걸로 접근한들 그 마음을 온전히 믿을 수 없게 된다.
그래서였다.
A가 하는 모든 말이 사사건건 시비와 비아냥과 넋두리로 들리기 시작한 것은 명백히 그 이유였다. 어쩌면 그가 정말 몰라서 물어보는 질문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당시의 초라한 나는 그 눈부신 마음을 그대로 쳐다볼 수 없었기 때문에. 그저 눈을 감고 자의적으로 해석하는 게 고작이었다.
그렇다고 그가 무조건 옳은 것도 아니긴 하다. 풍족한 환경에서 자라 아르바이트를 무시하거나 편한 대학생활을 보낸 탓에 '학생은 시간이 널널하고 논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그는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나를 해석했기 때문이다. 당연히 언론고시를 준비해본 본 적이 없으니, 그들이 어떻게 살아가는지, 어떤 고민 속에 고통스러워 하는 지 사실 이해할 리가 만무하다.
그 시절엔 거기까지 헤아릴 깜냥이 없었기에.
단순히 A가 그런 이기적인 사람이라고. 내게 지독했던 사람이라고만 여겼다.
결국 나도 마찬가지였다.
도저히 나아질 수 없는 현실 속에서, 그런 암울함을 겪어본 적 없는 A를 질투했고 '역시 나를 이해하지 않는구나' 같은 생각을 했다. 사실 '말을 해도 어차피 모른다'며 깊은 대화를 피하고 있던 것도 나였다. 깊은 이야기를 나눌수록, 마음 속 끝없는 심연이 들킬까 두려워서. 그러면서도 마음 한 켠으론. 당연히 내가 던진 짧은 힌트만으로 내 마음을 전부 알아주길 바란다는 착각에 휩싸였다.
그리고 몇 년의 시간이 지났다. 왕성하게 누군가를 만났던 나는, 그 누구와도 관계를 맺지 않은 지 4년의 시간이 흘렀다. A 뿐만 아니라 다양한 사람을 만나면서. 나는 해결될 수 없는 근본적 부분에 기인한 열등감에 휩싸였고, 그것이 곧 관계를 갉아먹는 일을 많이 겪었다.
아마 나는 평생 나를 사랑할 수 없는 존재인 것 같다. 그래서 다른 사람도 사랑할 수 없다.
조금 더 무언가를 사랑할 줄 알게 되고 난 이후부터 다른 사람을 만날 수 있다는 생각에 연애적 만남을 일절 밀어내는 중이다.
뒤늦게 돌이켜보니, 그의 말이 완전히 틀리진 않았다.
어쨌든 그 예언대로 나는 언론/방송 쪽 일을 접었으며, 지금은 그저 평범한 회사에서 그저그런 월급을 받아 아둥바둥 살아가는 소시민으로 살고 있다. 어차피 이렇게 될 거, 차라리 A의 말을 듣고 그 때부터 일찍 사회생활을 했더라면 지금보단 높은 위치에 있었을 거란 후회도 든다.
그러나 다른 길 따위 쳐다 보고 싶지도 않았던 그 때의 나에겐. 그의 말 한 마디 한 마디는 뜨겁게 달군 꼬챙이처럼 아팠던 것도 부정할 수 없는 과거다.
사실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나는, 결코, 될 수 없다는 걸.
A의 말을 인정하는 순간,
정말로 나의 모든 것이 끝날 수 있다는 것을.
그 열등감이 결국.
A와 나의 관계를 끝냈다.
[나를 잊은, 그리고 나를 잊을 사람들 시리즈]
사랑, 질투, 욕정... 어떤 관계든 반드시 뿌리가 되는 감정은 존재합니다.
이를 잘 다스릴 줄 안다면 인간관계는 책 보다 좋은 성장촉진제가 됩니다.
그런 의미에서 지금까지 내가 떠나보낸 가족, 친구, 동창, 연인들을 추억하며.
그들이 내 인생에 있어 어떤 자양분이 되었는지 정리하는 에세이 시리즈입니다.
제 경험을 통해 독자 여러분도 다양한 인생을 경험해 본다면 좋겠습니다.
*본 에세이에 등장하는 인물은 여러 경험을 섞어 만든 가상의 존재입니다.
불편함 없이 읽어도 괜찮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