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시논 Mar 21. 2024

B ~소중함의 상대성과 옅어지는 추억을 대하는 법~

나를 잊은, 그리고 잊을 사람들 #3. '시절인연'

성인이 되어 만난 B는 걸걸한 여장부 그 자체였다. 7살 연상이지만 젊은 라이프스타일 덕분에, 당시 20살이었던 나와도 아무런 무리 없이 잘 지낼 수 있는 사람이었다. 그녀는 특유의 밝은 성격과 행동력으로 매주 종로와 이태원에서 10명 규모의 파티를 꾸렸던 사람으로, 주변에 언제나 많은 사람이 모여들었다. 


당시 나는 퀴어 사회에서까지 굳이 친구를 만들지 않아도 된다는 주의였다. 내가 갈구한 건 사랑과 애욕뿐이었다. 시답잖은 농담이나 주고받을 사이를 원하진 않았다. B는 그런 나를 눈여겨보고 화려한 프라이드 세계로 이끌어 준 사람이다. 그런 의미에서 내게 큰 전환점을 가져다준 사람이 아닐까 싶다. 당시 나와 마찬가지로 20살에 처음 퀴어 사회에 진출한 친구 '알파'가 있었는데, B는 유독 나와 알파를 좋아했다. 덕분에 군 입대 전까지 약 2년, 주말은 B와 함께 보낸 파티 추억으로 빼곡하다. 그중에서도 그녀와 알파, 나는 파티가 아니어도 셋이서 자주 만나는 등, 특별한 친근감과 유대를 가진 사이였다.


여기서 하나 첨언하자면, B는 레즈비언이었다. 그런 그녀에게 어느 날 놀라운 사건이 하나 생겼다. 같은 대학원 연구실에 좋아하는 남자가 생긴 것. 스스로 레즈비언임을 주장했지만 여러 정황 상 아마 그녀는 처음부터 바이섹슈얼이 아니었을까 짐작한다. 파티에서도 예쁜 여자들 보다는 처음 보는 잘생긴 게이 남성에게 관심을 더 갖기도 했고, 때로 남자들에게 기대는 모습은 그녀가 언제나 보여주는 모습과는 사뭇 다른 면모도 띄었다. 어찌 됐든 그렇게 자신의 진짜 성적 취향을 모르던 B가 누군가를 진심으로 좋아하게 됐다는 점은 순수하게 축하할 일이었다.


그게 모든 변화의 시작이었다. 


쇼트커트를 고수하던 B의 헤어스타일이 단발을 거쳐 어깨를 지나 내려오기 시작했다. 화장기 없던 수수한 얼굴엔 어느 순간부터 비비크림과 파운데이션, 아이라이너까지, 단계적으로 두꺼운 옷이 생겼다. 그리고 자연스레 B의 화려한 퀴어파티는 점점 빈도가 줄어들었다. 매주 주말은 이태원 퀴어 골목에서 시간을 보내야 한다던 그녀였는데, 연구실의 그 남자가 마치 주박을 깨뜨리기라도 한 것처럼, 이태원을 점점 멀리했다. 파티 빈도가 줄어들면서, 당시 거기서 만난 사람들과도 자연스레 멀어졌다. 당시엔 인스타그램이나 카카오톡 등 언제든 쉽게 연락할 수 있는 시절이 아니었다. 서로의 접점이 지금보다 더 옅었던 시절이다. 애초에 그 파티는 B를 중심으로 한 모임이었기 때문에 그녀의 이변과 동시에 빠른 속도로 다들 멀어지게 됐다. 그럼에도 나와 알파는 끝까지 B의 곁을 지켰다. 얕은 관계보다 진한 관계 둘이 차라리 더 낫다는 생각이었다. 알파도 여기에 동의했다. 그렇게 더 단단해진 세 사람의 결속은 썩 나쁘진 않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내가 군대에 가 있던 어느 날이었다.


평일에 B가 사전 면회 신청도 없이 다짜고짜 들이닥친 에피소드가 있다. 그녀는 사회생활을 해본 적이 없었고, 군대에 보낸 지인이 없었기 때문에, 군 면회가 주말에 신청자에 한해서만 이뤄진다는 사실을 몰랐다고 한다. 이미 먼 곳까지 찾아온 사람을 그냥 보낼 수도 없었기에, 우리는 그날 낮, 특별 면회 시간을 가졌다. 


"아니, 누나, 정말 무슨 일이야. 놀랐잖아."

"너무 급하지만 좋은 소식이 있어서 하나 가져왔어."

"얼마나 급한 소식이길래 이 먼 곳까지 찾아왔어?"

"사실... 나 갑자기 결혼하게 됐어."

"뭐?! 누구랑~?!"


상대는 놀랍게도 전에 좋아하던 그 연구실 남자와는 다른 사람이었다. 그러고 보니 B의 모습에 이제 걸걸하고 호탕했던 쇼트커트 여성은 흔적조차 남아있지 않았다. 군대에 면회 온다고 바짝 꾸민 얼굴과, 가슴팍까지 내려오는 머리카락. 여기에 심지어 웨이브와 염색까지 들어갔다. 대체 내가 속세와 단절된 이 반년 사이,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그 심경변화는 대충 이랬다. 연구실 남자 와에겐 회식자리에서 고백했지만 단호하게 차였고, 졸업 논문을 발표하기 위해 참석한 학회에서 지금의 남편을 만나게 됐다. 두 사람은 빠르게 호감을 키워나갔고, 결국 혼전임신까지 진행돼, 그대로 결혼을 결정하게 됐다고. 이 과정에 불과 6개월 만에 이루어진 일이다.


한 가지 의아한 점이 있었다. 분명 B는 레즈비언 신분(?)으로 나와의 관계를 시작했다. 여성과 거리낌 없이 키스를 했고, 그동안 짧게 사진 여자친구만 3명 이상이었던 사람이다. 나와 알파 등 남자들과는 같은 호텔 방에서 묵어도 아무 일이 일어나지 않았던, 정말 '날 것의 레즈비언' 그 자체였다. 어쩌다 같은 연구실의 남자를 좋아하게 됐다는 건 그럴 수 있다고 넘어갈 수 있는데, 잘 알지도 못하는 남자를 좋아하게 되어, 빠르게 아이까지 가질 만큼 남자를 좋아하는 사람이었던가. 축하는 고사하고 이 부분이 마음에 걸려 B에게 물었다.


"나도 모르겠어. 사실 지금 막 여자가 만나고 싶은 그런 느낌은 전혀 없어."

"시선이 가더라도 남자에게 간다는 말이야?"

"딱히 남자들에게 시선이 가지도 않아. 그냥 그 사람이 좋더라고."


성적 취향이 너무나 확고했던 내겐 이해가 되지 않는 상황이었다. 어쨌든 그녀가 진심으로 누군가와 사랑하게 되어 가정까지 꾸리게 되었다고 하니, 석연치 않더라도 일단 형식적인 축하는 건넸다. 그 면회가 B가 퀴어로 존재하던 마지막 모습이었다. 내가 군대에 있을 때 결혼식이 진행됐고, 당연히 참석하지 못했다. 알파에게 이야기를 들어보니, B의 파티에서 만난 상당수 사람들이 그녀의 선택을 상당히 달갑지 않게 여겼고, 절반 이상은 식장에 얼굴조차 비추지 않았다고 한다. 


내가 전역했을 때, 이미 B는 육아에 정신이 없었다. 그 후 반년이 지나도 B에게 연락이 오는 일은 없었다. 좋은 소식을 알리고 싶어 서울에서 연천까지도 달려왔던 사이인데, 전역 후 제대로 된 축하 자리도 갖지 못했다. 뭐, 육아로 바쁜 일상을 보내고 있는 중이니 충분히 이해는 하고 넘겼다. 다소의 섭섭함은 있었지만.


그런 나와 달리 알파는 꽤 집요하게 B와 연락을 시도한 모양이다. 급기야 그녀의 집 근처까지 찾아간 적이 있다고. 하지만 B는 그런 알파를 달가워 하기는커녕, 오히려 크게 다그쳤다고 한다. 이미 30대가 되어버린 B에게 더 이상 퀴어 파티 같은 하찮은 유흥에 시간과 에너지를 낭비할 수 없다는 것과, 어찌 됐든 유부녀인데 남자가 이렇게 집 근처로 찾아오면 누구도 좋게 보지 못한다는 것이 이유였다. 하긴, 세간에서 바라본다면 둘 관계는 애 딸린 유부녀와 그녀에게 집착하는 어린 남성으로만 보일 뿐일 테니까. 그래서 B는 알파에게 더 이상 연락도 하지 말아줬으면 한다는 의사를 표현했다.


그렇다고 B가 남자들만 거절한 것은 아니었다.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그녀는 자신의 결혼식에도 찾아와 준 가장 친한 레즈비언 친구에게도 비슷한 말을 했다고 한다. 대사는 "언제까지 그렇게 흥청망청 놀 수만은 없잖아"였다. 맞는 말이다. 이미 가정을 꾸린 여성이 이전처럼 종로나 이태원에서 술병을 던지며 놀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런 소식을 많이 접했기에 나도 B에게 일부러 연락을 시도하지 않았다. 요즘 유행하는 '시절인연'이란 말을, 그 어린 나이부터 깨달았던 모양이다.


하지만 무성했던 소문과는 달리, B는 내게 먼저 연락을 해 왔다. 전역 후 1년이나 지난 후였다. 예전에는 1년은커녕 2주만 못 봐도 서로에게 너무 소홀해진 것 아니냐며 엉덩이를 토닥인 사이다. 그 시간이 무색하게 느껴질 만큼 오랜 기다림이었다. 그녀가 굳이 연락 상대로 나를 고른 이유는 내가 다른 아이들보다 멀쩡히 지내고 있으며, 예전부터 정신연령이 또래에 비해 높은 편이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나, 사람들에게 자꾸 그렇게 연락 오는 거 너무 불편해. 특히 알파."


왜 연락했는지 단번에 느껴지는 말이었다. 아마 알파에게 직접 연락하기는 싫고, 나를 통해 더 이상 연락하지 않아 줬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한 번 더 리마인드 하고 싶었던 이유였겠지. 괘씸했다. 우리의 마음은 생각하지도 않은 채, 본인의 사정만을 고려해 아무렇지도 않게 상처를 주려는 듯한 태도가 싫었다. 그래서 그녀가 아닌, 알파의 편을 들었다.


"알파는 우리 둘을 평생 친구라고 말하고 다녔던 애야. 그럴 만도 하지."

"그래도 불편해. 어떻게 평생 친구라는 게 있겠어. 그리고 난 가정도 있는데."

"많이 곤란해? 집에서 걸리거나 그랬던 거야?"

"아니 언제 걸릴지 모르잖아. 그리고 가족들한테 도대체 우리 사이를 뭐라고 설명하냐고."

"이해가 되기는 하는데, 그건 둘이 어떤 사이로 가장할지 결정하면 해결될 문제잖아."

"그게 불가능해. 난 그냥... 사실 나는 그냥 예전의 '그 생활'이 싫어."


'그 생활'이 싫다고 말했다. 아마도 B가 주축이 되어 종로 등지에 수많은 퀴어들을 거느리며 파티를 했던 시절을 말하는 것이리라. B는 자신이 성소수자'였고' 그 사회의 일원이 되어있었던 사실 자체를 지우고 싶었던 것이 분명하다. 과거가 지운다고 지워지는 건 아니지만, 접점을 최소화해 그 시절을 등지고 싶었겠지. 나와 알파에겐 아직도 애틋하고 소중한 추억이었는데, 그걸 만들어 준 장본인이 멋대로 우리를 포함한 그 시절 전체를 흑역사처럼 취급한다는 사실이. 완강한 어조 속에 숨겨진 그 의도가 크게 와닿아 어린 내 가슴속 묵직한 말뚝이 되었다.


그녀의 의도와는 달리 이 일은 알파에게 비밀에 부치기로 했다. 그도 이미 어렴풋이 느끼고 있었겠지만, 그렇다고 그 추측에 쐐기를 막아 그 작은 가슴에 구멍 낼 필요는 없었으니까.


시간이 흘러, 알파가 종로에서 생일파티를 한다는 소식이 들렸다. B에게도 초대 문자를 보냈다고 한다. 답은 물론 없었다. 20살 때 우리가 처음 만났던 그때처럼, 파티가 무르익고 있을 무렵. 어느 순간 담배를 배운 알파를 따라 간접흡연을 자처했다. 우리에게 공통점이란 B 밖에 없었으니 자연스레 그녀의 소식을 전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먼저 B의 이야기를 꺼낸 건 내가 아닌 알파였다.


"B가 SNS 팔로우를 끊었더라."


담담한 어투였다. 사회관계망이라는 실보다 얄팍한 끈마저 끊겨있었다는 사실을 확인한 이후, 더 이상 B에게 미련을 두고 있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전에 나한테 얘기한 적 있어. 더 이상은 '이쪽' 세계와 연관되고 싶지 않다고."

"그건 알아. 그렇다고 해서 SNS까지 끊을 일이야? 소식조차 궁금하지 않을 일이냐고."

"우리는 B에게 위협적이고, 지우고 싶은 존재들이야. 전에 그렇게 말했어."

"나중에 분명 후회할 거야. 후회해서 연락해도 필요 없어 이제."


분노인지 슬픔인지 모를 얼굴이었다. 그렇게 순수했던 알파였는데, 5년 사이 많이 변했구나. 이제는 주변에 사람들이 많아, B와 관계가 끊어져도 아쉽지 않은 마음이 됐던 거겠지. 왠지 그 감각이 싫었다. 비록 B는 떠나갔지만, 내 마음속 어딘가엔, 추억할수록 애틋할 앨범의 한 페이지였는데. 그걸 소중한 마음으로 간직하는 사람이 이제는 나 혼자 남았다는 사실이. B의 이야기를 하는 것처럼 만들며 알파에게도 하고 싶은 말을 전했다. 스피치 학원에서 연설하는 것과 비슷한 감각이었다. 


"응... 추억이란 게 참 신기하다. 나는 아직도 그 시절을 너무 또렷하게 기억해. 이태원 언덕에서 누나가 화장실 변기를 부쉈다며 도망쳐야 된다며 같이 뛰던 기억, 골목에 들리는 카라 노래에 교성을 지르며 클럽에 들어가야 된다고 옷도 던져두고 들어가던 기억, 누나가 여자친구와 대판 싸워서 골목길에 술병 3~4병을 던지며 고래고래 소리치던 일 까지도. 매주 그런 바보 같은 일이 있었지. 나 분명 고등학교 때도 친구들 많았었는데, 이상하게 그때랑은 또 다른 종류의 소중함이야. 단지, 그 기억만이라도 줄곧 기억해줬으면 하는 것뿐인데. 그거조차 안 된다고 하더라. 즐거움과 부끄러움이 종이 한 장 차이였다는 걸, 지금 깨닫지 뭐야."


그날 그 장면이 알파와 웃고 떠들었던 마지막 기억이다. 우리의 관계 역시 B가 이어준 관계였고, 구심점이 사라지면서 우리의 관계도 더 이상 돌아가지 않은 채 멈춘 톱니바퀴처럼 되었다. 군대도 면제였던 알파는 내가 병역을 마치는 동안 다른 친구들을 사귀었다. 내게도 전역 후 새로운 친구들이 생겼다. 그렇게 우리 둘 사이의 끈은 시간을 거듭하며 자연스레 희미해지다가, 결국 그 색을 완전히 잃었다. 20살부터 짧은 시간 동안, 매주 함께 울고 웃었던 두 사람을, 한낱 '시절인연'으로 곁에서 떠나보냈다.


놀랍게도 시간이 조금 지난 뒤, B에게서 먼저 연락이 왔다. 그냥 흔한 안부 인사였다. 그런데 어째서였을까. 엠패스인 나는 그 짧은 인사 속에서 그녀의 외로움을 느꼈다. 슬슬 깨달았을 때도 됐다고 생각했다. 과거를 지울 수 있다는 바보 같은 생각이 무의미했음을. 그녀에게 오랜만에 전화를 걸었다. 예전에는 수시로 전화를 주고받았던 사이였지만, 새로 바꾼 지 1년이나 지난 핸드폰에서, 처음이자 마지막 통화기록으로 찍힐 만큼 오랜만의 통화였다. 


"잘 지내? 전에 기자 시험 준비한다고 했잖아."

"여전히 준비 중이지 뭐. 그리고 기자 아니고 아나운서야."

"너는 그때부터 어른스러운 애였으니까, 그냥 너한테는 연락하고 싶더라."

"좋게 기억해 줘서 고마워. 당연히 다 잊고 잘 사는 줄 알았는데."


"여전히 그래. 그냥 잊으려고 노력하는 중이야. 애도 많이 컸어. 그러고 나니까, 우리 그 시절이 가끔 생각날 때가 있거든. 남편이 가끔 물어봐. 그 시절의 내가 뭘 하고 살았는지에 대해서. 얼버무리고 거짓말로 넘길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계속 생각이 나더라. 그럴 때 후회가 더 많았어. 내가 왜 그러고 살았는지."


"과거에 그러고 사는 건 누가 결정할 수 있는 문제가 아냐. 나도 그때 왜 그렇게 낯을 가렸는지 후회가 돼. 그 파티에서 더 많은 사람들과 친해졌더라면 지금의 나도, 조금은 덜 외로울 수 있었을 거란 생각을 하거든. 근데 과거는 바꿀 수도 없고, 당시의 나는 미래의 내가 이렇게 될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이지."


"그래, 역시 너한테 얘기하길 잘했어. 예나 지금이나 네가 거기서 가장 어른스러웠던 것 같아. 나는 그래서 너를 좋게 데리고 다녔던 거야. 알파는 그냥 아무것도 모르는 순수한 매력이 좋았고." 


"고마워. 근데 알파와는 나도 연락을 안 해. 그래도 여전히, 내 기억 속에 누나와 알파는 소중한 사람들이야. 이쪽 사회 사람들은 그저 연애와 섹스 수단에 불과하다는 내 가치관을 바꿔주고, 내가 그 사회의 일원이 될 수 있도록 많은 추억과 도움을 준 사람들이니까. 그 시절의 내가 존재하는 이상, 적어도 나는 두 사람을 절대 잊지 않을 거야. 누군가는 새로운 사람들과의 관계에 집중하고, 누군가는 우리를 이제 지우려고 노력하더라도. 나 하나라도 그 시절을 기억하고, 소중하게 받아들인다면, 그 시간은 사라지지 않는다고 생각하니까. 알파에게는 사람에게 버려진 슬픈 기억이고, 누나에겐 잊고 싶은 과거의 흔적이겠지만, 내게는. 지금의 나를 있게 한 소중한 추억이야. 기억과 감정이라는 게, 이렇게 각각의 사람마다, 또 상황마다. 달라질 수 있다는 걸 어린 나이에 깨닫게 해 줬다는 것도 고맙고." 


그 연락이 내 인생 마지막 B와의 접점이다. SNS를 비롯한 그 어떤 것에서도 이제 내 삶에서 B의 흔적은 찾아볼 수 없다. 본가 서랍에 숨겨둔 보물서랍 어딘가, 거기라면 셋이 함께 찍은 스티커 사진이 남아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렇게 글이라도 쓰지 않는 이상, 일상적으로 그녀를 떠올리는 일조차 없을 정도로 무뎌졌다.


얼마 전. 일본에 살고 있다는 근황을 SNS에 업로드한 적이 있다. 워낙 소홀히 여겼던 채널인지라 좋아요 수가 예전보다 현저히 줄었다. 3일 뒤 확인하니 약 8-9개의 좋아요가 눌러져 있었다. 그중 알파가 섞여 있었다. 그걸 확인했지만 딱히 그에게 디렉트 메시지를 보내거나 하진 않았다. 마찬가지로 그 역시 메시지를 보내거나 연락을 해오진 않았다. 정말 딱 좋아요를 누르는 정도로 맺어지는 관계. 그만큼의 얄팍한 끈. 그럼에도 그 얇은 끈이라도 그 시절과 무언가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에 안도했다.


누군가에게 지우고 싶은 흑역사로 취급받는 게 슬펐던 때도 있다. 그렇다고 그걸 계속 마음속에 담아두고 있는다면 사람을 미워하게 될 뿐이다.


시간이란 객관적이고, 기억이란 언제나 그 자리에 머물러 있다. 상대가 멋대로 나를 흑역사로 취급한다고 해서 그 기억의 가치가 절대적으로 까맣게 칠해지는 건 아니다. 그냥 그쪽에 맘대로 내 시간을 자의적으로 해석하는 것뿐이다. 그쪽이 그렇게 하고 싶다고 해서 나까지 거기에 따라야 하는 것도 아니다. 내가 좋은 색으로 포장해 마음속 어딘가에 보관하고 싶다면, 얼마든 그래도 된다. 내 과거를 어떤 형태로 보관하는지, 그건 오롯이 내 몫이다. 일방적인 감정이라 한들 슬퍼할 필요도 없다. 상대방을 원망할 이유도 없다.


기억을 보관하는 형태는 모두 제각각이다. 그게 각자 다른 방향이라 해도. 그러니까, 다른 사람 때문에 내 즐거웠던 기억마저 함부로 더럽히지 않았으면 한다.


앞으로의 내가. 그리고 추억을 숱하게 짓밟힌 많은 어른들이. 


ㅡfin.

사랑하고 있는데도 짝사랑을 하고 있었다. C는 나를 도대체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 걸까. 그의 무뚝뚝한 행동에선 도무지 나를 향한 애정이 느껴지지 않았다. 하루하루 그의 말을 의심하는 힘든 나날이 지속됐다. (다음 편에 계속)


[나를 잊은, 그리고 나를 잊을 사람들 시리즈]

만남, 사랑, 질투, 욕정... 어떤 관계든 반드시 근간이 되는 감정은 존재합니다. 이를 잘 들여다볼 줄 안다면, 인간관계는 그 어떤 책 보다 좋은 성장촉진제가 됩니다. 지금까지 살면서 겪은, 내가 떠나보낸 가족, 친구, 동창, 연인들을 추억하며. 그들이 내 인생에 있어 어떤 자양분이 되었는지 정리하는 에세이 시리즈입니다. 제 경험을 통해 독자 여러분도 다양한 인생을 경험해 본다면 좋겠습니다. 

작가의 이전글 A ~열등감이 연애에 미치는 영향~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