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다시 직업재활시설로 돌아왔다. 이번에는 단순히 생계를 위한 선택이 아니었다. 장애인 재활과 사회복지라는 내 삶의 중요한 가치를 배우고자 하는 열망에서였다. 예전과는 다른 역할과 시각으로 일을 시작하면서 새로운 기대와 설렘으로 가득했지만, 한편으로는 불안감도 함께했다.‘그동안 현장은 얼마나 변했을까? 그리고 내가 이곳에서 다시 적응할 수 있을까?’
그의 소식을 우연히 페이스북에서 보게 되었다. 그는 여전히 장애인 단체에서 활발히 활동하며 자신의 열정을 담은 게시물을 꾸준히 올리고 있었다. 볼링을 하는 그의 사진을 본 날, 나도 그처럼 몰두할 무언가를 찾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망설임 끝에 나는 그에게 메시지를 보냈다.“팀장님. 볼링하는 모습 정말 멋져 보여요. 나도 같이 해보고 싶은데, 혹시 함께할 수 있을까요?”그의 답장은 간단했지만 따뜻했다.
“물론이지. 다 같이 하면 더 재밌지!”
그는 여전히 추진력이 넘쳤다. 몇 번의 대화를 나눈 뒤 그는 운동 모임을 만들겠다고 제안했고, 곧 첫 번째 정기 모임 날짜가 정해졌다. 모임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모였다. 대부분 처음 보는 얼굴들이었지만, 볼링이라는 공통의 관심사가 우리를 하나로 묶어 주었다.첫 투구를 하는 순간, 공과 함께 내 마음속 깊은 불안도 굴러 나가는 기분이었다. 뒤이어 터진 박수와 웃음소리는 금세 우리 사이를 화기애애하게 만들었다. 볼링은 단순한 취미 이상의 의미를 갖게 되었다. 공을 굴릴 때마다 쌓였던 걱정과 불안은 점차 사라지고, 대신 즐거움과 성취감이 채워졌다.
모임이 이어질수록 우리는 점점 가까워졌다. 누군가는 웃으며 기술을 가르쳐 주었고, 또 다른 누군가는 자신의 이야기를 나누며 공감대를 형성했다. 그렇게 우리는 서로에게 중요한 사람이 되어 갔다.볼링 모임을 계기로 당구, 야구장 관람, 영화 감상, 그리고 업무 행사 지원까지, 다양한 활동이 이어졌다. 함께하며 직장 생활에 대한 고민도 나누고, 서로를 위로하기도 했다. 몇 해를 그렇게 함께 보낸 우리는 마침내 첫 해외여행을 떠났다. 여행지는 일본이었다.오사카의 골목에서 따끈한 타코야키를 나누어 먹고, 작은 신사의 돌계단 앞에서 서로 사진을 찍어 주며 웃던 그 순간은 잊을 수 없다. 그 어느 사람과의 여행과 다르지 않았지만, 내게는 한층 더 특별했다.
작은 우연에서 시작된 만남이었지만, 그와의 인연은 내 삶을 한층 더 빛나게 했다. 그의 열정과 배려는 나를 변화시키고 성장하게 했다. 그와 함께한 시간은 삶을 더욱 풍요롭게 만들어 주었다.
이제 나는 확신한다. 인연은 우연이지만, 그 우연을 어떻게 키워 나가느냐에 따라 우리의 삶은 전혀 다른 모습으로 변할 수 있다. 그의 말처럼, 우리는 모두 각자의 속도로 나아가고 있지만, 중요한 건 같은 방향으로 걸어가고 있다는 점이다.앞으로 우리의 시간이 얼마나 더 이어질지는 모르지만, 나는 내가 받은 따뜻함을 다른 사람들에게도 나누고 싶다. 재활시설에서 일하며 배운 것들, 그리고 그와의 시간 속에서 느꼈던 감동을 더 많은 사람들과 함께하고 싶다.예를 들어, 볼링 모임처럼 누군가를 하나로 묶을 수 있는 활동을 기획하거나, 작은 일상 속에서 함께할 수 있는 경험을 제공하고 싶다. 누군가의 삶에 작은 변화의 씨앗이 될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할 것이다.필요할 때면 그의 연락이 올 것이다. 아마 새로운 모임, 혹은 활동을 제안할지도 모른다. 그때도 나는 기꺼이 응할 것이다. 왜냐하면 이제 나는 안다. 인연이란 키워 나가는 것이라는 것을, 그리고 그 인연은 언제나 삶을 빛나게 만든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