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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경 Jan 14. 2024

얼어버린 투쟁에 함께하는 마음으로

회사 생활 이야기

우리 회사 앞에는 1년 넘게 시위노래가 나오는 트럭이 서있다. 매일 아침 9시쯤에 오는 것 같은데 나는 창가에 앉아 일하다 보니 매일, 하루종일 똑같은 노래를 듣는다. 가끔은 그 멜로디가 너무 익숙해서 콧노래로 따라 부를 정도이다. 옆에 앉은 회사동료들은 내가 나도 모르게 시위음악을 흥얼거리는 모습을 보고 웃는다.


나는 가끔 우리가 시위노래로 웃음 짓는 순간들에 죄책감을 느끼곤 한다. 그들의 숭고한 행위를 우스워지게 만드는 것 같기 때문이다.

 그 시위가 왜 계속되는지 알지 못하지만, 트럭 앞에 앉아있는 두어 명 정도의 사람들의 표정을 보면 알 수 있다. 얼마나 간절한지 피부로 느껴진다.

하루라도 그 트럭이 안 보이는 날에는 드디어 일이 해결됐나? 막연한 승리감을 은밀하게 느끼다가도, 다음 날이 되어 주섬주섬 스피커를 설치하는 그들의 뒷모습을 보면 절망감으로 하루를 시작하기도 한다.


하루는 티비에 우리 회사 건물이 나왔다. 대충 우리와 건물을 함께 쓰고 있는 건설사가 부도 위기에 처했다는 내용이었다. 나는 뉴스를 보자마자 내 머릿속에 노랫말도 기억나지 않는 시위노래가 슬피 우는 것을 느꼈다. 1년 넘는 시간 동안 해결될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감으로 매일 아침 노래를 틀던 그들은 어떻게 되는 것일까.


다음 날, 사무실에서 하얀 눈이 소복이 쌓인 멋진 풍경을 내다보며 무거운 한숨을 내뱉었다. 그날 나는 해결해야 하는 문제가 많아서 답답한 공기를 꾸역꾸역 마시며 일해야 했지만, 그런 나의 상황보다도 밖에 세워져 있던 트럭에 더 마음이 갔다.


노래가 끊기지 않았으면 좋겠다. 점심시간마다 흥얼거렸던 멜로디가 그립다. 쟁취하고자 한 것을 지독한 투쟁으로 얻어내었으면 좋겠다. 불가능하다고 믿었던 것을 거칠어진 손아귀에 꼭 쥐었으면 한다.


이미 차게 얼어버린 투쟁에 함께하는 마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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