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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경 Jun 03. 2024

사라진 2년과 그 사람

핸드폰 초기화를 통해 지나간 시간 돌아보기

핸드폰이 초기화되었다. 2년 치 사진과 모든 기록이 다 날아갔다. 클라우드 용량도 가득 차서 정말 말 그대로 모든 것이 먼지처럼 사라졌다. 게으르고 무신경했던 과거의 나를 탓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지난 2년간의 나를 돌아보면서, 다시 보지도 않았을 문자메시지 내용이라던가 사진들에 대해 엄청난 미련을 느꼈다. 소중했던 시간들이 기억나지 않을 것 같은 두려움도 같이.


작별인사를 제대로 하지 못한 사람이 생각났다. 내 사라진 2년을 울고 웃게 해 준 그 사람이. 이별의 순간에 비겁하게 도망쳤던 내가 미웠다. 이렇게 허무하게 사라질 사진들처럼 그 정도의 가벼움이 아니었는데.


작년 이 맘 때쯤, 직장상사에게 모욕적인 말을 듣고 버스 안에서 펑펑 울었을 때가 기억이 난다. 버스에 내려서 너를 만나자마자 꽉 안아 소리 내서 울었던 그 거리와 골목입구가 기억난다.

잠잠히 들어주며 내 기분을 풀어주던 네 따뜻함이 기억난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음식과 맥주를 먹으며 같이 욕해주던 사람.


나는 지독하게도 이기적이어서 내가 힘들 때 네 생각이 짙어진다. 나는 내 선택이 후회될 것 같았지만 이렇게 빨리 네가 그리울 줄은 몰랐다.


누군가 왜 이별이 힘드냐고 묻는다면 난 정확하게 힘든 순간에 함께한 시간이 기억나기 때문이라고 말할 것이다. 나를 위로한 그 방식이 뼛속깊이 새겨져 내가 무너지는 순간마다 기억이 난다.

너는 나보다 나를 잘 알아서 내 기분이 어떻게 하면 풀어질지 알고 있었다.

갑자기 맨발로 걸었던 망원한강공원, 조용히 내 울음이 그칠 때까지 기다려주었던 네 무릎이 기억난다.  어떤 아픔도 믿고 말할 수 있었던 소중한 사람. 어떤 말도 부끄러움 없이 말할 수 있던 사람.


나는 가끔 너에게 편지를 쓰고 싶은 충동이 든다. 마지막 순간에 다하지 못했던 말들부터 진심 어린 사과까지. 그렇게 끝내는 게 아니었는데, 어리석었다.


내가 마지막으로 구할 수 있는 용서는 네가 진심으로 잘되기를 바라는 것이다. 사랑은 관계로만 정의되는 속성이 아니기 때문이다. 나는 너에게 남보다 못한, 아무것도 아닌 사람일지라도 너의 행복을 빈다.

깊게 사랑했던 마음은 한순간에 사라지지 않고, 한동안 그리고 오래도록 남아있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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