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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경 Dec 01. 2023

글을 쓸 수 있어 다행이다

올해를 마무리하며

생각보다 인생이 단조롭게 느껴진다.

색깔이 옅어지고 있다. 쨍하면 쨍한 대로 어딘가 불편하고 아팠던 것 같고, 옅은 세상 속에 은근한 편안함을 느끼고 있던 것도 같은데.. 감사할 줄 모르는 마음이 스멀스멀 기어 나와 나를 또 괴롭힌다.

 

연말이 되어서야 지난 일 년간의 나를 되돌아보는 게 우습다. 하루하루를 돌아보며 살았으면 더 좋았을 텐데 너무 달려와 더 이상 내쉴 숨이 없을 때쯤에서야 돌아본다.

내 특기다. 치유받았어야 했던 마음들이 나뒹굴고 있다. 지금 와서 달라질 건 없다는 비관적인 생각들이 가득 찬다. 되돌아보기에 조금 늦었다는 뜻이다.


나름 열심히 했던 그리고 간절했던 무언가에 대한 보상이 없다. 눈에 보이는 결과물이 없으니 참 허무하다. 과정에 집중한다고 다짐했으면서 왜 종이쪼가리의 증명서라도 받았으면 좋겠을까. "일 년에 한 번 실패하자"라는 새로운 생각을 하게 되면서 호기롭게 미뤄왔던 자격증 시험을 다시 공부하기 시작했다. 새벽마다 일어나서 공부하고 퇴근하고 공부하고 나름 열심히 했다고 생각했는데, 떨어졌다. 3점이 부족해 자격을 받지 못했다는 생각이 꽤 오랫동안 나를 괴롭히다가 모른 척 떠나갔다.

나는 결과주의적인 내 모습이 부끄럽다. 남들에게는 과정에 집중하니 마음이 편안하다고 하면서 결과 앞에서 떨고 있었다. 내 인생이 매번 이런 식이면 곤란하다. 결과가 만족스럽지 못하더라도 나를 잘 격려해줘야 할 텐데. 사실 좋은 결과가 나왔다고 하더라도, 엄청나게 기뻐하는 스타일도 아니다.

그런데 왜 나는 결과가 좋을 때도 좋지 않을 때도, 나에게 엄격한 것일까.

 

연말이 되면 내 불안한 마음이 잠잠해질 줄 알았는데 그건 또 아니었나 보다. 어디서 굴러 들어온 건지 모르겠는 책임감까지 추가되니 더욱더 고요함을 갈망하게 되었다. 그래도 다행인 건 글을 쓸 수 있었다는 것.

나는 꼭 죽을 것 같이 힘들 때보다도 무기력함이 나를 잡아먹는 순간이 제일 두렵다. 글을 쓸 수 있어 다행이다. 글을 쓸 수 있어 다행이다. 두 번이나 적고 싶다. 나를 가장 나답게 만들어주는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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