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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폴린 Dec 18. 2018

아무 것에도 익숙해지지 않아야 울지 않을 수 있다

박준,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

얼마 전 남한강과 북한강이 만난다는 두물머리에 다녀온 적이 있습니다. 그날의 고즈넉한 분위기와 조용조용 스치는 바람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그날의 풍경에 이 시를 더했습니다. 오래된 물길들이 산허리를 베고, 강건너 마을에 불빛이 마른 몸을 기대는 풍경을 그렸습니다. 그런데, 시를 다 읽고나서야 다시 시의 부제가 아닌 제목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문병. 남한강과는 어울리지않는 문병이라는 소재. 그제서야 미열을 않는 당신의 머리맡에 금방 앉았다 간다 하던 사람이 사나흘씩 머물다 간 게 보였고, 남한강을 뒤로 하고, 문병 갔다 사나흘간 그 자리를 지켰던 화자가 보였습니다. 이미 당신에게 익숙해져버린, 당신의 눈빛에도 잘 헐어버리는, 그래서 울어버리는 화자가 보였습니다.

쉽게 상처받고 잘 울기도 하는 저에게, 울음을 참는 건 정말 힘든 일입니다. 그럼에도 울지도 않는 삶을 살아내는 사람들을 만날 때면, 제 삶이 유독 슬픈 것인가 자문해보기도 합니다. 꼭 그렇지만도 않은데, 저는 왜 기어이 마음 속에 보이지도 않는 슬픔의 실체를 꺼내보이는 걸까요. 실컷 울어내면서 마음 속에 슬픔을 다 게어내고 나서야, 비로소 헛헛해진 가슴에 다시 새로운 감정들을 채워낼 수 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무것에도 익숙해지지 않아야 울지 않을 수 있다' 는 그의 말이 유독 가슴에 남습니다.


아마 사람들이 모두 적당한 행복과 또 그만큼의 슬픔을 갖고 살아갈 테지요. 하지만 울지 않는 사람들은 마음을 온전히 다 주지 않습니다. 자신을 다 내보이고 익숙해져버린 사람들만이 울어버립니다. 아무 것에도 익숙해지지 않아야 울지 않을 수 있다면, 저는 차라리 누군가에게든 어느 것에든 익숙해지고 싶습니다. 익숙해지던 것이 떠나갈 때에 울어버릴 지라도, 그렇게 익숙해지고 싶습니다. 언제나 흘러가는 수면은, 그래서 새의 발자국을 기억하지 않고 저를 스치고 지나는 바람조차 남기지 않는 것이겠지요.


얼마 전 남한강과 북한강이 만난다는 두물머리에 다녀온 적이 있습니다. 그날의 고즈넉한 분위기와 조용조용 스치는 바람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그날의 풍경에 이 시를 더했습니다. 오래된 물길들이 산허리를 베고, 강건너 마을에 불빛이 마른 몸을 기대는 풍경을 그렸습니다. 그런데, 시를 다 읽고나서야 다시 시의 부제가 아닌 제목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문병. 남한강과는 어울리지않는 문병이라는 소재. 그제서야 미열을 않는 당신의 머리맡에 금방 앉았다 간다 하던 사람이 사나흘씩 머물다 간 게 보였고, 남한강을 뒤로 하고, 문병 갔다 사나흘간 그 자리를 지켰던 화자가 보였습니다. 이미 당신에게 익숙해져버린, 당신의 눈빛에도 잘 헐어버리는, 그래서 울어버리는 화자가 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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