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연한 것을 당연하다 여기지 않을 때 변화는 시작된다
어제 아침, 구미에 있는 시댁에 도착했다. 도련님까지 오셨으니, 모처럼 다섯 식구가 모두 모였다. 본격적인 설 준비에 앞서, 다 같이 모여 앉아 저녁에 술 한잔 하니 시끌시끌하니 집 전체가 사람 냄새에 따뜻해졌다.
“아빠, 엄마한테 그렇게 말하지 말고, ‘우리 여보, 내가 먼저 말할게요’라고 해야지. 화내지 말고 부드럽게~”
“내가 그렇게 하잖아, 봐, ‘마눌님, 고마워요~’”
여느 경상도 아버지답게 무심코 하신 한마디에, 도련님이 놓치지 않고 아버님을 혼내셨다.
“아이고, 얘는 맨날 나한테만 뭐라고 해요~”
아직도 ‘꼬마’라 부르는 막내가 툭하면 당신의 말투를 두고 토를 달아 피곤하다며, 아버님은 도련님과 평소처럼 투닥거리셨는데 나는 그게 그렇게 좋아 보일 수 없었다. 오빠에게 듣기로 어릴 적엔 아버님이 꽤 엄하신 데다 약주하고 들어오시면, 다들 거실에 있다가도 각자의 방으로 흩어져 들어갔었다고.
그런 아버님이 이젠 담배도 끊으시고 좋아하시던 술도 딱 막걸리 한 두병만 드시거나 아니면 매일 저녁 어머님과 함께 맥주 한 캔 사다가 도란도란 이야기하시다 주무신다니. 조금은 투박하지만 다정다감한 아버지가 되기까지, 과연 아버님을 이렇게 변하게 만든 건 가족들 간의 대화 덕분이 아니었을까. 아버님과 도련님의 투닥거림 조차 사랑스럽게 느껴졌던 건, 그들의 대화에 사랑이 깔려있음을 알기 때문이다.
지구 반대편의 사람과도 대화할 수 있는 요즘 시대에, 우리는 가족과도 눈을 마주치며 이야기하기보다 카카오톡 이모티콘으로 대신하는 시대를 살고 있다. 사람 간의 대화가 소원해진 요즘, 나는 가족 간 대화하는 이 순간이 얼마나 소중한지 새삼 다시 느꼈다. 그 순간이 결코 평범하거나 당연한 순간이 아님을 알기에 더 감사하고 더 행복하다. 특별하지 않다는 이유로 날짜까지 헤아릴만한 순간은 아니지만, 동시에 특별하지 않다고 해서 몇 년이 지나서도 기억에 남는 순간이 아니라는 법은 없다. 시댁을 떠올릴 때마다 나는 항상 이런 순간을 떠올린다. 한 상에 모여 앉아 저녁을 먹고 맥주 한잔에 웃고 떠들 수 있는 이런 유쾌하고 왁자지껄한 이 찰나의 순간을 사진처럼 기억한다. 더 이상 당연하거나 사소하다고 치부할 수 없는 시간.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것을 당연하지 않다고 생각하기 시작한 이후로, 나는 작은 것에도 감사한 게 많았고 소중하게 지켜내고 싶은 것들이 많았으며 옆에 있어 당연하게 여겨졌던 사람들에 대해서도 더 아껴주고 싶어 졌다. 이를테면 가족.
친구에게 좋은 모습만 보여주고 싶고, 남자친구에겐 더 잘해주려고 했으면서, 왜 가족들에겐 특히 더 소홀했을까. <직장생활 잘하는 법>, <연애 잘하는 법> 등 인간관계가 어려워 책으로도 배우고 수많은 사람들에게 조언을 들으면서까지 잘해주고 싶어 노력하면서, 왜 가장 가까이 있는 ‘가족’들에게 잘하려고 노력해보진 않았을까. 가장 오랜 시간 함께 했다는 이유만으로, 그들을 당연하게 여기고 그들이 내게 주는 사랑조차 당연하게 여긴 나머지, 나는 사랑받을 자격이 없는 딸이자 누나이자 아내이며 며느리인데도, 사랑받는 게 당연하다고 여겨오진 않았을까. 생각해보면 어느 것 하나 ‘당연한’ 것은 없다. 여전히 사랑받는 가족임에 감사해야 한다.
사랑이 넘치고 웃음이 쏟아지는 어머님, 아버님의 가족이 되면서, 나는 우리 친정 식구들을 떠올렸다. 우린 불행한 가정이거나 사이가 안 좋은 가족은 아니지만, 돌이켜보면 서로를 위해 진심으로 다가가거나 노력하는 걸 어려워하는 가족이었다. 쑥스럽다는 이유로 진심은 삼켰고, 평소보다 조금 더 날 선 말로 상처를 준 적도 많았다. 내가 상처를 내고서 ‘당연히’ 가족이니까 미안하단 말은 안 해도 이해하겠지, 사랑한단 말은 안 해도 ‘당연히’ 알겠지 하며 넘기고 넘긴 게 30년이었고, 가족끼리 낸 상처는 ‘당연히’ 저절로 아물 거라고 착각하며 지내왔다. 하지만 세상에 당연한 건 없었다. 가족끼리 낸 상처라고 아프지 않은 상처는 없었고, 오히려 친구나 지인들에게 받은 상처보다 더 아픈 상처일 수 있었다. 친구한텐 헛 나온 말 한마디엔 밤새 뒤척일 만큼 고민하고 사과하면서, 왜 가족한테는 똑같이 하지 못했을까.
내가 또 하나의 가족의 일원이 되면서, 나는 세상에서의 내 가치와 쓸모를 확인하려 애쓰기보다, ‘당연히’ 사랑받아왔던 내 자리에 대해 감사히 여기고 그 ‘자격’을 갖추기로 했다. 남편이 좀 더 노력해 좋은 남편이 되어 날 맞춰주길 기대하지 말고, 내가 먼저 그에게 걸맞은 좋은 아내가 되어보기로. 친구나 직장 동료보다 가족이 우선순위에 밀린다고 느낄 만큼 소원해진 동생이 변하길 바라기보다, 내가 먼저 전화하고 안부를 물어가며 좋은 누나 역할을 해낼 수 있기를.
어느 것 하나 당연하지 않은 세상, 무언가 저절로 변하길 기다리고 바라지 말고 내 역할에만 충실하자. 내가 움직이지 않으면서 그가 움직이길 바라는 것만큼 이기적인 생각도 없고, 그 또한 당연히 그렇게 움직여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만큼 오만한 생각도 없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