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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encilvibe Mar 09. 2024

보다 빠르게, 보다 강하게, 보다 많게

  근이완제를 먹어서인지 눈에 초점이 풀리고 몸이 늘어진다. 팔굽혀펴기를 평소보다 많이 한 날 이후로 왼쪽 어깨가 시큰거려 병원을 찾았다. 의사 선생님 왈 회전근개에 무리가 많이 갔다고 하신다. 간단히 물리치료를 받고 진료비를 수납한 뒤, 약국에서 근이완제와 진통제 등이 포함된 일주일 치 약을 처방받았다. 내 손에 들려진 약 봉투는 마치 의사 선생님의 경고장 같아서 최소 2주 동안은 운동을 하지 말라고 선전포고를 해 오는 것 같았다. 

  

  기실 나는 운동과는 거리가 먼 삶을 살아왔다. 운동하는 것 자체를 싫어하진 않았지만 학교 축구에서는 인원 맞추기용 수비수, 운동회에서는 계주를 응원하는 보통의 학생이었다. 소위 "운동신경"을 타고나지 않은 내가 유일하게 즐겁게 했던 운동은 자전거 타기 였지만, 그마저도 대입을 준비하며 멀어지게 되었다. 그래서였을까, 내 마음 한켠에는 운동에 대한 열등감이 자그맣게 자리 잡았다. 

  

  근력운동을 하는 사람들에게 하나의 자존심과 같은 "3대 중량"이라는 것이 있다. 나 역시 3대 운동을 해봤고 천천히 무게를 늘려나가는 재미도 느껴보았다. 과거의 나와 지금의 나를 비교하는 데서 오는 즐거움은 마음 한구석을 차지하던 열등감을 밀어내기에 충분했다. 

  많은 사람들이 SNS에 자신의 가장 멋지고 화려한 모습을 공유한다. 머리로는 그 사실을 알고 있지만, 나도 모르게 SNS 속 화려함에 압도당하기도 한다. 우리 아파트 헬스장에는 스쿼트 100kg을 드는 사람이 손에 꼽지만, SNS에는 3대 중량이 500kg을 넘는 괴물들이 우후죽순 보인다. SNS 속 괴물들은 애써 밀어냈던 열등감을 자꾸만 끌고 오려 했고 인터넷 속 모순과 나를 비교하는 일이 반복되자 3대 운동을 그만두었다.

  맨몸 운동을 하며 반복 횟수를 며칠 만에 살인적으로 늘렸다. SNS 속에는 나처럼 성급하고 무식하게 운동하는 사람이 없었기에 타인과 나를 비교하며 자책하는 일은 자연히 사라졌다. 그저 타이머의 삑삑 소리에 맞추어 같은 동작을 수백 번이고 반복하는 게 너무 즐거웠다. 근력을 기르거나 몸을 변화시키겠다는 목적의식은 잊어버린 지 오래였고, 어제 세웠던 나만의 기록을 갈아 치우는 재미가 생겼다. 

  지난 몇 주간 했던 맨몸 운동은 내게서 운동에 대한 열등감을 완전히 뿌리 뽑아 주었다. 너무 급하게 운동강도를 늘린 탓인지 그와 함께 어깨 부상이라는 과속 딱지를 발부받았지만, 열등감을 지워내는 값 치고는 저렴한 편이지 않았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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