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와 스톱워치
"난 몰라. 금이 갔잖아. 어떡해?"
금방이라도 울음이 터질 듯한 표정의 어린 나는 어둑한 앞마당에 털썩 주저앉았다.
아빠가 사주신 은빛 스톱워치를 목에 걸고 줄넘기를 하다가 그만 놓쳐 버렸기 때문이다.
반짝반짝 빛나던 육상선수용 스톱워치에 지지직 금이 가버린 모습이라니.
그 시절 아버지께서는 자식들의 건강에 누구보다 더 신경을 쓰셨다.
채식주의자에 가까웠던 엄마의 식성을 닮을까 봐 걱정되어 짬짬이 직접 요리도 해주셨다.
돼지비계를 사다가 튀겨 주시거나, 그 기름에 김치를 달달 볶아 고소한 볶음밥을 만들어주시곤 했다.
엄마의 요리 솜씨가 뛰어나셨지만, 우리는 아빠의 별미 볶음밥을 퍽 좋아했다.
어디 먹는 것뿐이었을까?
자식들의 체력을 키우라고 아침저녁으로 달리기를 시키셨다.
처음엔 그냥 달렸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육상 선수용 스톱워치를 사 오셨다.
스톱워치를 목에 걸고 달리면서 매일 시간을 기록하라는 것이다.
안방 벽에 큰 종이를 붙이고, 자식들마다 칸을 나누어 주셨다.
매일 달리는 게 귀찮기는 했지만, 학교 체육시간에나 볼 수 있던 빛나는 스톱워치가 내 손에 들어온 게 좋아서 제법 열심히 뛰었던 것 같다.
그런데 그 스톱워치에 금이 가버린 것이다.
속상한 마음 반, 꾸중 들을까 걱정되는 마음 반으로 앞마당에 넋을 놓고 있었다.
사실 그 뒷상황은 잘 기억이 나질 않는다.
아마도 제법 꾸지람을 듣지 않았을까 싶지만 말이다.
스톱워치는 금이 갔어도 잘 작동되었고, 우리의 달리기도 계속 이어졌다.
아버지께서 의도하신 바는 아니었겠지만, 우리는 학교 운동회에서 줄줄이 계주 대표가 되기까지 했다.
하지만 달리기가 길어지다 보니 싫증이 나 꾀를 부린 적도 많았다.
안개가 자욱한 어느 아침엔 반환점의 반도 안 되는 지점에 가만히 서 있다가 대충 시간만 채우고 돌아오기도 했다.
그런 날엔 뒤늦게 출발해서 오는 동생과 안갯속에서 딱 마주치는 바람에 멋쩍은 상황도 종종 있었다^^
어찌 되었든 우리의 달리기는 내가 중학교 1학년 때까지도 계속되었고, 육상선수가 되어 볼까 하는 헛된 꿈을 꾸게까지 했다.
물론 중학교에 입학하자마자 계주 선발에서 탈락하는 것을 보고 그 꿈은 바로 접었지만......
어린 시절의 내가 그리 건강한 편은 아니었다.
그래도 아버지의 노력 덕분에 그럭저럭 중간은 하며 잘 지내온 것 같다.
어느덧 오십 대가 된 지금, 잘 달리냐고 누군가 내게 묻는다면 No, No!
달리기는커녕 걷는 것도 귀찮아 이 핑계 저 핑계를 대며 운동을 게을리하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