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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종훈 Aug 31. 2024

무엇이 꿈인지 현실인지

                                               

   마치 천사가 내려와 환하게 빛을 비추는 눈부신 병실인 듯했다. 눈을 살짝 찡그리며 침대에 누워있는 엄마를 바라보고 있었다. 엄마는 산소 호흡기에 의존하며 하얀 병실에 다소곳이 누워있었다. 침대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가족들은 아무런 말도 내뱉지 못하고 있었다. 난 멀찌감치 서성이며 엄마를 그리워하며 지켜보기만 할 뿐이었다. “엄마, 엄마” 온 힘을 다해 불러 보지만 말소리는 입 밖으로 발산하지 못했다. 소리치고 울부짖고 발버둥을 쳐도 그 자리에 멈춰 서 있었다. 아무런 움직임도 말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하지만 눈물만은 멈추질 않고 하염없이 흘러내렸다. 내 몸이 이상해 아무런 반응을 하지 못했다. 무슨 영문인지 알 수가 없었다. 그저 있는 힘을 발휘하여 어떻게든 엄마 곁으로 가기를 기원했다.

  그렇게 고통의 순간을 겪고 갑자기 눈을 떴다. 꿈이지만 너무 생생해 슬픔을 감출 수가 없었다. 엉엉 울고 또 울어 눈가에 눈물이 그렁그렁했다. 목은 잠겨있고 ‘악’하는 비명을 내뱉으며 잠에서 깨어났다. 깨어난 후에도 내 눈에 눈물이 흠뻑 젖어 닦고 또 훔쳐냈다. 분명 꿈을 꾸었는데 그것도 슬픈 꿈이었는데 현실에서도 꿈의 연장선이 된 듯하였다. 어느 쪽이 꿈인지 현실인지 분간할 수가 없었다.

   해파리처럼 축 처진 몸을 뒤흔들며 겨우 침대에 걸터앉았다. 왠지 불길하고 우울한 감정을 떨쳐 버릴 수가 없었다. 혹시 엄마에게 무슨 안 좋은 일이라도 생긴 건 아닐까? 근심을 앉고 또 다른 하루를 준비했다. 출근길에 고국에 있는 부모님께 전화를 걸었다. “엄마, 별일 없어?” 엄마는 “아무 일 없지 매일 똑같아.”, “다리 아픈 건 어때?” 엄마에게 물었다. “항상 그래, 어쩔 수 없지, 뭐.”라는 엄마의 음성이 가슴을 후벼댔다. 어제 꾼 꿈 이야기는 하지 못했다. 괜한 걱정을 드릴 듯싶었기에 그저 막내아들 잘 지내고 있다고 의례적인 인사만을 남긴 채 전화를 끊었다.

   매일 고단한 하루를 보내고 늦은 밤 귀가를 했다. 자정이 되어 도착한 집, 샤워를 마치고 허기를 때우기 위해 라면으로 간단히 식사를 마무리했다. 일과를 끝내고 잠자리에 들어서면 시곗바늘은 어느덧 새벽 1시를 넘어 달려가고 있었다. 시곗바늘은 아무 일도 없다는 듯 그저 자기 갈 길을 일정한 속도로 걷고 있는 자태가 얄미웠다. 내 몸은 지쳐 한 발짝도 움직이기가 버거운데 혼자 무심히 째깍거리는 소리가 귀에 거슬렸다. 몸은 모든 에너지를 다 소진해 버려 잠이 들면 충전이 될 것이 생각했었다. 핸드폰 배터리가 방전되어 흐릿해진 화면을 연상시키듯 빨리 콘센트에 다가가라고 재촉하듯이 말이다.

   실제로 살아가고 있지만 현실을 실감하지 못한 채 살아가는 기분이 들었다. 내가 지금 하는 동작, 숨소리, 생각들이 진짜일지 의심하게 되었다. 가끔은 실제 살고 있는 이곳이 꿈속이기를 바랄 때가 있었다. 꿈에서 깨어나면 난 부모님 품에서 포근하게 안식을 취할 것처럼 느껴졌다. 단지 바라는 건 어머니 품속의 따듯함인데 현실은 혹독한 추위에 홀로 서성이는 외톨이었던 것이었다. 무엇을 위해 이 모진 생활을 버티며 살아가는지 질문을 던져보곤 했다. 그 헛된 자존심, 주변의 시선을 두려워하는 혼자만의 망상이 아닐까? 머나먼 타지에서 빈털터리, 패배자로 귀국하는 것이 두려웠었다. 기다리고 견뎌내면 언젠가 나에게도 밝게 빛나는 타국에서의 삶이 펼쳐질 것이라 믿었었다. 그날을 위해 난 하루를 살아내고 이겨내고 있었다. 몸은 한도를 초과해 무너져 내리고 있었지만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머릿속에선 '난 잘할 수 있어, 잘해 내고 있어, 잘될 거야'라며 몸에게 타일렀다. 난 그렇게 긴긴 시간 동안 몸과 마음을 다독거리며 타지에서 지냈다.

  언젠가 “혼자만 잘 먹고 잘살면 되냐!”라는 날카로운 막내 외삼촌의 한마디가 뇌리에 덩그러니 서성이며 떠나질 않았다. 행복한 삶이 무엇인가란 질문을 수도 없이 나 자신에게 던져보았다. 답은 누구도 알려 주지 않았고 스스로 찾아갈 수밖에 없었다. 내가 누리고 있는 행복을 가족과 공유하는 방향으로 결론을 지었다. 그리고 미련을 갖기 전에 짐을 챙겼다.

  몇 년 전 서둘러 귀국길에 올랐다. 부모님과 함께 할 날이 많지 않음을 감지했다. 그렇게 새로운 인생의 막을 열어 보고자 한국으로 돌아온 후의 일상은 모든 게 낯설고 신기했다. 깨끗한 지하철을 타고, 없었던 새로운 빌딩들이 들어서고, 정돈된 거리가 내가 기억하는 풍경과 달라져 있었다. 무엇보다 길을 걸으며 마주치는 한국 사람들이 너무 많아 생소했다. 내가 살았던 공간의 다국적 사람들과 소통하며 보낸 시간이 길었기에 그렇게 생각됐다. 시간이 흐르면 모든 것이 자연스러워질 것이라 믿었다. 이 혼란스러운 하루하루가 한동안 이어졌다.

  시간은 흘러 반년이 지나갔다. 이상하게도 어머니의 품속으로 돌아온 후부터는 슬픈 악몽을 잘 꾸지 않았다. 가끔은 타지의 친구들이 보고 싶어 꿈에라도 나타났으면 싶은데도 아무도 나를 찾지 않는다. 나도 모르게 모국의 숨결이 나를 안정되고 편안하게 만들었던 것인가.

 지금은 지난 타지에서의 생활이 좋은 꿈을 꾸고 깨어난 것 같다. 그곳에서 만났던 인연들, 매일 출퇴근했던 장소, 30대의 특별한 경험들이 꿈속에서 완성된 듯싶다. 다시는 똑같은 꿈을 꾸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현실로 돌아온 난 또 다른 꿈을 향해 진행 중이다. 어떤 꿈이 내 앞에 펼쳐질지 알 수 없지만 악몽이 아니길 바랄 뿐이다. 삶 자체가 기나긴 꿈을 꾸며 헤쳐 나가고 있는 것이 아닌가란 물음을 던져본다. 요즘도 이 현실이 가끔은 꿈이 아닐까라는 의심으로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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