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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콘치 Feb 12. 2024

나를 움직이는 목소리

<에릭 번의 감정수업>

아이들이 자유롭게 놀이하는 시간. 나는 아이들 속에 있기보다 어느 정도 물리적인 거리를 두고 있다. 아이들의 놀이 속에 들어가기를 어려워하기 때문이다. 나는 아이들의 모든 놀이가 내 앞쪽에 위치하는 곳에 앉아서 아이들의 모습과 놀이를 기록하고, 위험한 행동을 경계하고, 그러던 중 발견하는 예쁘고 재미난 모습을 눈에 담곤 한다. 이건 내가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교사의 모습이 아니다. 아이들의 놀이 속에 들어가  함께 놀이하고, 친구처럼 편하게 대화를 주고받는 선생님. 그 모습이 내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교사의 모습이다. 그런 성향을 가진 선생님들을 보면 참 아름다워 보이고 부럽기도 하다. 나는 일부러 그렇게 해보려 해도 그런 상황이 어색하고 불편하여 몇 초를 견디지 못하고 그 자리를 벗어나버린다.


 아이들 속에서 거리를 두고 지켜보며 늘 무언가 기록하고 있는 모습은 어릴 적 나의 엄마의 모습과 일부 닮아있다.  엄마는 자주 책상에서 무언가를 읽고, 쓰고 있었다. 이런 잔상이 유치원에서의 내 모습과 겹쳐지는 경험을 자주 하다가 문득  ‘부모 자아’의 개념이 떠올랐다. 그러고 보니 내가 아이들에게 포용적이기보다는 엄격하고 단호하고 지적하는 비판적 부모 자아의 모습을 많이 가지고 있다는 생각도 들어서 에릭 번의 이론을 담은 도서를 읽고 싶어졌다. 그렇게 만나게 된 <에릭 번의 감정 수업>을 읽으며 부모 자아, 성인 자아, 아이 자아, 드라이버(강박 관념), 인생 태도 등에 대한 개념을 통해 나 자신에 대해서도 톺아보는 시간을 가져보았다.


이제 우리는 더 이상 자신에게 무감각하지 않을 거예요.
내 안의 작은 소리도 그냥 지나치지 않고
느껴 보고 꺼내 보고 찬찬히 들여다볼 테니까요


 ‘완벽하라’, ‘남을 기쁘게 하라’, ‘열심히 하라’, ‘서둘러라’, ‘강해져라’. 이렇게 우리를 채찍질하는 부모 자아의 목소리에 따라 우리는 열심히 노력하며 살아갈 수 있다. 그러나 부모 자아가 교묘하게 선을 넘는 때가 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절대 안 돼. (반드시 그렇게 해야만 돼)’라고 우리를 다그치게 되는 것이다. 그러면 우리는 엄격한 부모에게 순응하는 아이가 되어  ‘맞아. 그렇게 하지 못하면 나는 사랑받을 수 없어.’  혹은  ‘완벽하게 하는 해야만 나는 인정받을 수 있어.’라며 강박을 갖게 된다. 우리는 자신을 부정적인 감정으로 빠지게 하는 이런 목소리를 분별해 내는 것이 필요하다. 계속해서 우리 자신을 몰아붙이다가는 머지않아 지쳐버릴 것이고, 또 그런 자신을 자책하고 좌절하는 루틴을 반복할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는 우리 자신을 NOT OK로 만드는 메시지를 알아차리고, 그것에 정면으로 맞서 반박하여 내 안의 비합리적인 비판적 부모 자아의 목소리를 몰아내는 작업을 해야 한다.


책 속에서 몰아내기 작업은 3단계로 소개되어 있다. 첫 번째 단계는 내 안에서 들리는 비판적 부모 자아, 나에게 강박관념을 갖게 하는 드라이브를 알아채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을 알아채는 첫 단추부터가 쉽지 않았다. 열심히 기억을 더듬어 몇 가지 메시지를 발견했다면, 두 번째는 그것을 반박해 보는 것이다. 그것은 첫 번째 단계보다 더 쉽지 않았다. 책에서 언급된 것처럼 부모 자아에 맞서 허가 또는 반박을 하는 것은 너무 낯설고 비현실적으로 느껴져서 불신이 생기곤 한다. 예를 들어, 비판적 부모에 맞서서 ‘너무 나 자신을 몰아붙이지 않아도  괜찮아.’라고 허용을 하려고 하니  ‘그렇게 부족한 점이 많은데 뭐가 괜찮다는 거니? 나태해지지 말고 계속 발전해야지.’라며 불호령이 떨어지는 것이다. 그래도 애써 그 목소리를 무시하며 몰아내기의 3단계로 향해보았다. 3단계는 행동전략을 세우고 자유로운 아이 자아를 풀어주기 위해 나를 위한 말 하기를 하는 것이다. 나는 결국 아무것도 써내지 못했다. 내 아이 자아는 비판적 부모 자아에게 꽤 많이 억눌려 주눅이 든 상태인가 보다.

알아차리고, 반박하고, 성인 자아의 힘을 빌려 행동전략을 세우는 이 3단계를 앞으로도 계속해서 시도해 보겠지만 어느 날은 잘 되었다가 어느 날은 부모 자아의 불호령에 다시 퇴보했다가를 반복할 테다. 그저 익숙하게 해 왔던 대로 나를 다그치는 것이 오히려 편하게 느껴질지도 모른다. 인간은 모두 자신에게 익숙한 방식으로 시간을 보내려는 욕구가 있기 때문에. 늘 ‘너는 부족하니 계속해서 너 자신을 검열하고 공부해야 해.’라고 다그치는 것이 내 성장을 위해 필요하다 생각했는데, 부정적 감정에 빠지지 않는 선에서 이 메시지를 활용하고, 필요할 때는 반박도 할 줄 아는 것이 진정한 성장의 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부정적 감정에 빠지려 할 때, ‘이제부터는 이렇게 해도 괜찮아!’라고 말하는 자유롭고 당당한 아이 자아가 더 클 수 있게 살피고 돌봐주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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