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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콘치 Apr 29. 2024

아름다운 것(그리고 맛난 것)이 주는 힘

아. 오늘은 정말 오랜만에 참을 수 없을 만큼 화가 났습니다. 저는 지위라는 특권을 업고 버럭 성질을 내버리는 사람에게 크게 분노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누군 화낼 줄 몰라서 가만히 있는 줄 아나?"라면서 말이지요. 그저 사람 대 사람의 예의를 지키고자 참는 것인데, 윗사람이라는 이유로 예의를 지키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아랫사람만 감정을 조절해야 하고, 말을 가려서 해야 하는 것일까요? 제가 '윗사람'이 돼보면 그런 사람들을 이해하게 될까요? 그렇다면 아직 나이 적고 지위 낮은 저의 어린 생각에 불과한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게 일단 판단은 보류했으나 감정은 쉽게 추슬러지지 않아 입을 앙 다물고 퇴근하였습니다. 이대로 집에 가면 생각의 소용돌이에서 빠져나오지 못할 것 같아 고민한 끝에, 전망 좋은 곳에 가면 기분이 좋아질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고는 집 근처에 있는 카페가 문득 떠올라서 책을 싸 들고 왔습니다. 오늘은 특별히 제가 좋아하는 빵을 두 개나 시키고, 음료는 평소보다 큰 사이즈로 시켰습니다. 그리고 책을 펴서 조금씩 읽어가다 보니 어느새 힘주고 있던 턱 근육이 풀어진 것을 느낍니다.

높은 곳에서 내려다본 풍경이 참 아름답습니다. 이래서 사람은 미적인 것을 늘 추구해야 하는 것일까요? 갑자기 제 삶에 감사하는 마음이 마구 들기 시작합니다. 집 가까이에 이런 장소가 있다는 것이 감사하고, 오늘 이곳을 떠올려낸 것이 감사하고, 비가 너무 많이 오지 않아 걸어올만했던 것이 감사합니다. 그리고 '난 소설은 딱 질색인데!'라며 미루고 미루었던 5월 선정 독서가 막상 시작하니 재미있어, 그것 또한 감사합니다. 그리고 늘 책을 보면 밑줄을 쳐야만 직성이 풀리는 저에게 점착 하이라이터의 세계를 알게 해준 소중한 인연에게도 새삼 감사합니다. 책을 깨끗하게 보니 중고로 되팔거나 기부할 수 있어 좋더군요. 멍하니 이런저런 생각을 잠시 하다가 커피가 다 식었겠거니, 하며 한 입 더 마셨는데 세상에나 아직도 커피가 따뜻합니다. 성능 좋은 텀블러에게도 감사합니다. 품절되지 않고 내 마음을 달래준 소금 빵과 토스트에게도 감사합니다.

오늘처럼 마음이 너무 힘들 땐, 아름다운 것을(그리고 맛있는 것을) 찾아가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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