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둔산은 방송에서 연예인들이 등반하는 장면이 몇 차례 나와서 산에 관심이 없는 사람들에게도 유명한 산이다. 남편이 '대둔산에는 케이블카가 있으니 쉽게 다녀올 수 있을 것 같다'며 함께 가보자고 추천했다. 나는 그러자고 했지만, 내심 ‘산에 갔으면 하산까지 내 발로 해야 진짜 등산이지!’라는 생각을 한편에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정상에서 남편을 설득해 볼 요량으로 대둔산 등산길에 올랐다.
대둔산은 손에 땀을 쥐게 하는 구름다리, 그리고 그곳을 건너면 만날 수 있는 다리가 후들거리게 아찔한 삼선계단이 유명하다. 그곳까지 오르는 길에도 옆으로 뒤로 펼쳐진 암석들이 장관을 이루어 연신 사진을 찍으며 올랐었는데, 구름다리와 삼선계단에서 돌아본 풍경은 정말 감탄스럽고 경이로웠다. 다만 구름다리는 바닥이 뚫린 채로 몹시 흔들거려 손에 땀을 쥔 채로 경치를 감상해야 했다. 삼선계단은 마치 체감상 90도 각도로 세워진 듯한 아찔한 각의 계단으로, 뒤를 돌아볼까, 말까를 수십 번 고민하게 되었는데 그러다 한번 돌아본 풍경은 정말 장관이었다.
계속해서 펼쳐지는 절경에 사진 찍는 것을 멈추지 못하며 올라온 정상이었다. 정상에서도 역시나 다른 산들의 능선과 암석들에 감탄하고 간단히 간식을 먹으며 정상을 만끽했다. 그러고 나니 하산길에 문득 조금만 더 내려가면 케이블카가 나를 산 밑까지 데려다줄 수 있다는 사실이 설렘으로 다가왔다. 남편을 설득해 두 발로 하산하겠다는 생각은 조용히 마음속에 묻고, 신나게 케이블카 표를 발권했다.
케이블카로 내려오니 정말 순식간에 산 밑까지 도착했고, 덕분에 컨디션도 아주 좋았다. 다음날 근육통도 없었고, 몸을 무겁게 하는 피로감도 없었다. 나는 고집이 아주 센 편인데, ‘두 발로 하산해야 진짜 산행’이라는 나의 명제는 아주 쉽게 뒤집혔다. 일말의 갈등도 고민도 없었다. 지금까지 나의 인생사에서는 몇 없는 드문 일이다.
나는 살면서 자주 욕심을 부린다. 나 자신을 과대평가하는 것인지, 승부욕이 강한 것인지… 요령 없이, 아니 어쩌면 '융통성 없이' 원칙대로 매일 매 순간을 흠 없이 완벽하게 해내는 나 자신만을 인정할 수 있다고 채찍질하며 살아왔다. ‘인간은 완벽할 수 없다’는 조언을 듣고 나서는 ‘완벽할 수 없지만 늘 최대한 완벽에 가까이 가도록 노력해야만 나의 몫을 한 것’이라고 생각하며 살았다. 그래서 늘 하루를 마무리할 때 내가 완벽에 가까워지게 노력했는지, 실수는 없었는지, 능력에 부족함이 없었는지 되짚어 보며 나 자신을 질책했다. ‘다 잘했어야지. 실수하지 말았어야지.’, ‘그러니까 네가 그렇게 밖에 못한 거야. 넌 매번 그래.’, ‘남들은 이만큼 하는데 너는 왜 못하니?’와 같은 무시무시한 말들을 나 자신에게 습관적으로 했다. 그렇게 가랑비에 옷 젖듯 어느새 우울이라는 것에 젖어들었던 몇 년간의 시기가 있었다.
의사의 도움을 받으며 그로부터 벗어나면서 다시는 완벽을 추구하지 않겠다 다짐했다. 나의 '원칙'은 반드시 그래야만 하는, 그래야 맞는 ‘원칙’이 아님을 되뇌었다. 내가 ‘원칙’이라 생각했던 것들은 단지 ‘닫혀있는 단편적인 생각의 일부’ 일뿐, 조금만 생각을 열고 마음을 연다면 그것은 언제든 다른 방식으로 대체되고 보완될 수 있다는 것을 잊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중이다.
그리고 의사 선생님이 해준 말,
“‘그만하면 됐다.’라는 마음, 그 정도로도 충분해요.”
케이블카에 대한 나의 처음 생각을 고집하지 않고 아주 쉽게 현실을 받아들였으므로 나의 내면적으로도, 남편과 외부적으로도 어떠한 갈등도 발생하지 않았다. 하지만 내가 잠시 ‘이래야만 완벽한 것이지’라는 생각을 다시 했다는 것 자체로 ‘아차!’ 싶었다. 케이블카를 타고 내려오면서 다시금 다짐한다. 나도, 그 누구도, 어떠한 일도 완벽할 수 없다. 완벽이라는 것은 없다. 모든 상황과 모든 이에게 적용되는 절대적인 정답은 있을 수 없다. 모든 것은 상황에 따라 달라지는 것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