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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콘치 Oct 22. 2024

참꽃 보러 갔다가 인생을 배운 날

참꽃은 진달래의 사투리이다. 분홍색 진달래가 지천에 깔린 사진을 보고 반해서 남편과 함께 비슬산 산행을 결심했다. 새벽 6시 반경에 산악회 버스를 탔다. 다 함께 등산로 입구에서 내려서 산행을 하고 3시~3시 반 경에 주차장으로 모여 다 같이 버스를 타고 오는 일정이었다.


들뜬 마음으로 등산길에 올랐다. 그 시간에 이미 산행을 마치고 내려오는 사람들도 많았는데, 하나같이 머리가 쫄딱 젖어있었다. 그분들을 보고 ‘아 우리만 힘든 게 아니구나. 다들 저렇게 땀으로 쫄딱 젖을 정도로 힘든 산이 맞는구나.’하며 위안을 삼았다.


계속 오르면 오를수록 점점 몸에 열이 나서 중간에 서서 바람막이 재킷을 벗고 있을 때였다. 역시나 쫄딱 젖어서 내려오시던, 우리 아빠 연배정도 되어 보이는 친절한 남자분께서 “옷 입어요! 저 위에 가면 얼어 죽어요! 저 위에는 초겨울날씨예요~”라고 하셨다. 내려오는 분들의 머리가 다 젖어있던 이유는 땀이 아니라 거센 비바람을 맞아서 그런 것이었다. 갑자기 겁이 덜컥 났다. ‘그냥 내려갈까..? 한번 가볼까..?’ 잠시 고민을 한 끝에 내린 결론은 ‘그래도 여기까지 왔는데 한번 가보자!’였다. 재킷을 여몄다. 역시나 올라가면 갈수록 끈을 꽉 동여매었음에도 불구하고 거센 바람에 모자가 뒤집어지고, 비 때문에 땅은 질퍽하고 미끌미끌했다. 바지가 진흙이 투성이가 되었다. 남편의 재킷은 방수 기능도 있었고, 후드가 달려있었지만 나는 비가 내리는 대로 다 젖는 일반 나일론 재질에다, 후드도 없는 재킷이어서 너무 추웠다. 오들오들 떨며 '등산할 때는 만일의 기상 상황에 대비해 후드 있는 재킷을 입어야겠다'는 사실을 배웠다. (이렇게 등산용품이 하나씩 늘어난다.)


점점 올라갈수록 손이 시리고 (장갑도 사야겠다고 결심했다.) 체온이 뚝뚝 떨어졌지만 ‘참꽃 군락지’라고 적힌 이정표가 나와서 조금 더 힘을 내보기로 했다. 참꽃 군락지로 갈수록 등산로 옆에 참꽃들이 늘어났다. 지친 마음이 조금 상기되어 기운이 났다. 기대를 안고 비바람에 펄럭거리는 모자를 부여잡으며 앞으로 앞으로 걸어갔다. 마침내 참꽃 군락지에 도착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비구름에 가려서 군락지는 완전 ‘곰탕(구름과 안개 등이 깔려 뿌연 상태로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상황)’이었다. “음… 그래서 여기가 지금 참꽃 군락지라는 거지…?” 너무 실망했다. 아쉬운 대로 그나마 비구름 사이로 희미하게 보이는, 나뭇가지에 간신히 매달려 바람에 휘날리고 있는 참꽃 사진을 찍고 정상으로 향했다.


지칠 대로 지쳐서 정상에 다다랐을 때, 정신이 번쩍 드는 냄새가 나기 시작했다. “어디서 라면 냄새나지 않아…?” “누가 날씨 이럴 줄 알고 라면 챙겨 왔나 봐… 부럽다…” 그 순간 눈앞에 펼쳐진 광경에 우리는 눈까지 번쩍 뜨였다. 절 앞에서 컵라면을 팔고 있는 것이었다. “우리 라면 먹을까?” “당연하지.” 우리는 오들오들 떨며 컵라면 한 개를 나눠먹고 국물까지 싹 마셔서 비웠다. 그리고는 여유 있게 룰루랄라 화장실도 갔다가, 하산하는 셔틀버스표를 발급받으러 갔다. 따뜻하게 셔틀버스를 타고 편하게 하산할 생각을 하니 올라오며 겪은 고생들도 할만했다고 여겨졌다.


하지만 비슬산이 우리에게 안겨 줄 충격은 끝나지 않았었다. 우리가 라면을 먹고 셔틀버스표를 받으러 간 시간은 12시경이었는데 받은 셔틀버스표는 14시 15분인 것이다. “표가 잘못된 것 같아요. 이거 12시 15분인 거죠?”라고 묻자 직원은 “아니요 대기실에서 2시 15분까지 기다렸다 타셔야 해요-”라고 답하셨다. 많이 놀랐지만… 등산객들을 위해 휴게실을 준비해 주다니! 감사히 여기기로 했다. “휴 대기실이 있어서 다행이다. 거기 있으면 따뜻하겠지!” 라며 대기실 문을 여는 순간 입이 떡 벌어졌다. 전쟁통에 피란민들이 모인 것처럼 앉을 틈도 없이 서로 딱 붙어 서있는 사람들로 대기실이 가득 차있었던 것이다. 심지어 난방시설 없이 그냥 천막만 세워진 대기소라서 찬바람이 그대로 숭숭 들어왔다. 펭귄들이 추위를 견디기 위해 서로 둥글게 붙어 서서 허들링을 하듯이 서있었다. 찬바람에 땀은 식어가고, 옷은 아직 젖어있어서 체온이 점점 더 떨어져 갔다. ‘이럴 줄 알았으면 표를 끊어놓고 라면을 먹는 건데…’ 후루룩후루룩 라면 국물을 들이키며 행복해했던 그 순간이 야속했다. 그런데 대기소 밖에서 나오는 방송에 귀를 기울여보니 셔틀을 기다리다가 그냥 도보로 하산하는 사람들이 있는지 자리가 조금씩 비는 것 같았다. 운 좋으면 조금 일찍 셔틀을 탈 수도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큰맘 먹고 대기소에서 나왔다. 셔틀 입장하는 곳으로 나가서 비바람을 맞으며 기다리다가 빈자리가 나오자마자 잡기로 했다. 전략은 성공적이었다. 우리는 약 1시간 반정도 대기소에서 서서 기다린 후 예정된 시간보다 40분 정도 빨리 셔틀을 타고 내려올 수 있었다. ‘이럴 바엔 걸어내려 가는 게 낫지 않을까’ 여러 번 고민했지만 아직 왕초보 등산러인 우리의 속도로는 무리였다. 우리 수준에 너무 어려운 산을 골랐던 것이었다.


셔틀을 탄 사람들은 모두 우리처럼 쫄딱 젖어있었고, 모두 1시간 이상 서있었기 때문에 지칠 대로 지친 상태였다. 다들 말없이 창 밖만 보면서 내려왔다. 그런데 창밖의 풍경이 참 기가 찼다. 고도가 낮아질수록 마법처럼 날이 화창해지는 것이었다. 심지어 산 밑에서는 돗자리를 펴고 참꽃 옆에서 피크닉을 즐기는 사람들이 가득했다. 저들도 우리를 보면 ‘산행이 힘들어서 땀이 많이 났구나.’라고 생각하겠지. 산 밑과 산 위의 날씨는 이렇게나 다르고 예측이 불가한 것이었다.


한 번의 산행은 마치 한 인생의 축약본처럼 매번 기쁨과 실망, 회복과 좌절이 반복되는 인생사를 담아낸다. 예쁜 꽃을 보기 위해 오르는 길은 쉽지 않다. 포기하고 싶다는 생각이 계속되지만, 꽃을 보겠다는 일념으로 힘을 내본다. 그런데 오늘처럼 예상치 못한 변수가 생기면 꽃을 볼 수 없기도 하다. 하지만 그 와중에 몇 개 없는 꽃 앞에서 찍은 사진을 다시 펴보면 그런대로 예쁘고 보람차다. 숨차는 등산 끝에 만난 라면 가게는 정말 가뭄에 단비같이 행복하고 소중했다. 그러고 나서 알게 된 셔틀버스 시간과 대기소로 인해 다시 한번 좌절할 수밖에 없었지만, 그 마음은 셔틀을 타니 노곤노곤하게 풀어져 감사함으로 변했다. 산밑에서 본 따뜻한 날씨와 행복한 사람들을 보니 같은 위치에서 고도만 다른데도 이렇게 다른 모습이라는 것이 새삼 놀라웠다. 내려오고 나니 우리가 했던 그 고생들이 그저 웃기고 재밌어졌다는 것도 신기할 따름이다. 산행은 이렇게 희로애락의 다양한 감정을 겪으며 다양한 나를 만나게 한다.


옛날에는 ‘지나고 나면 다 추억이야’라는 말이 싫었다. 마치 '추억될 일에 괜히 마음 쓰는 쪼잔한 사람'이 되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등산을 시작한 후부터는 그 말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인생이란 이렇게 각자의 위치에서 다양하게 다르고 힘들다가, 즐겁다가도 좌절하다가, 조금만 벗어나면 그 많은 느낌과 굴곡들을 지나온 내가 대단해 보이면서 그저 추억이고 재밌었던 기억으로 한데 묶이는 것이다. 그렇게 진지한 고찰을 하는 와중에 '그런데 방수 재킷은 꼭 있어야겠다, 후드는 꼭 달려있어야겠다.. 장갑도 있어야겠다.. 무사히 산악회버스를 탈 수 있어서 다행이다..'라는 소소한 깨달음도 얻었다. 한 번 산행을 할 때마다 이 삶의 굴곡을 축약해서 겪어볼 수 있으니, 연습 없이 이 삶을 살아내야 하는 존재들에게 산은 참 고마운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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