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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콘치 Oct 20. 2024

사람에게는 사람이 필요하다

‘혼산’을 해보고 싶은데 운전은 너무 서툴고, 겁도 나서 산악회로 가보기로 결심했다. 사실 홀로 산행을 해보고 싶다는 마음은 전부터 가지고 있었지만 실행에 옮기는 것이 ‘이 날’인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남편과의 다소 어색하고 냉한 며칠을 지나고 있던 시점이기 때문이다. 원인제공자가 나였기에 눈치 보기를 몇 일째 하다 보니 마음이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내가 원인을 제공했으므로 그가 마음이 풀릴 때까지 우직하게 눈치를 볼 수 있도록(?) 내 나름의 불안을 잊고 해소할 수단으로 ‘혼산’을 선택한 것이었다. 그리하여 전날 남편에게 양해를 구하고, 홀로 새벽에 일어나 산악회 버스를 타는 곳으로 향했다.  

     

혼자 간다고 생각하니 왠지 무섭기도 하고, 막상 새벽에 일어나서 채비를 하니 피곤하기도 해서 ‘괜히 간다고 했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이왕 마음먹은 거 한번 가보자’라는 생각으로 조용히 집을 나섰다. 산악회 버스를 타는 시간은 평소 타지로 장거리 출퇴근을 하는 남편의 회사 셔틀버스와 출발시간이 같았다. 그래서 남편은 나에게 불편한 마음을 가지고 있는 상황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버스를 타려면 몇 분 전에 집을 나서야 하는지, 자전거를 타려면 몇 분 전에 나가야 하는지 자세하게 일러주었다. 


평소 남편이 늘 출근을 위해 집을 나섰을 그 시간에 나도 집을 나섰다. 기분이 묘했다. 밖은 아직 너무 깜깜했고, 먼 하늘은 동이 트느라 붉게 물들고 있었다. 쌀쌀했고, 어둡고, 조용했다. 남편이 우리 가정을 위해 매일 이렇게 컴컴한 새벽에 홀로 출근 했을 생각을 하자 안쓰럽고 미안한 마음이 들어 코끝이 찡했다. 

    

이 날의 행선지는 해남 땅끝 마을 중에도 제일 땅 끝에 위치한 ‘달마산’이었다. 가는 데만 4시간이 걸렸다. 그날 산악회에서 추천하는 코스는 달마봉에서 도솔봉을 거쳐 도솔암까지 가는 총 6시간 정도 소요 예정인 긴 코스였다. 나는 속도가 많이 느리니까 여러 개의 봉우리를 거치는 종주 코스는 애초에 가지 않을 생각이었다. 달마봉에만 올라갔다와서 흔한 산밑 카페 아무 데나 들어가서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다 올 계획이었다.


그런데 도착하고 보니 달마산 밑에는 카페가 없었다. 거기에다 산악회 대장님이 다른 분께 “6시간이면 다 충분히 갔다 올 수 있어요~”라고 안내해 주시는 말을 듣고 나니 마음이 흔들렸다. 하지만 혼자서 6시간 산행은 자신이 없었다. ‘해질 때까지 못 내려와서 혼자 길을 잃으면 어떡하지?’ 최악의 상상이 머릿속에서 펼쳐지기 시작했다. 산밑에서 잠시 망설이며 이런저런 생각 끝에, 일단 달마봉까지 가보고 뒷일을 결정하기로 하며 등산로에 올랐다.


시작하자마자 높은 돌들이 즐비해 바로 후회가 됐다. ‘내가 여길 왜 온다고 했지…’ 역시나 나는 바로 뒤처지기 시작했다. 그래도 의지할 구석이 있어 다행이었다. 나와 아주머니 한 분, 아저씨 두 분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다가도 평균 속도가 비슷해 결국 계속 마주치며 일행을 이루게 된 것이다. ‘같이 갈까요?’라는 어색한 말조차도 필요하지 않았다. 먼저 가고 싶어도 그럴 수 없는 사람들끼리 모이게 된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함께 가다 정상석에서 사진도 찍어주고, 먼저 내려가는 사람이 “이 돌 미끄러워요 조심하세요”라고 알려주기도 했다. 달마산은 험한 암릉으로 이루어진 산으로, 전체 코스의 반 이상은 사족보행일 수밖에 없는 코스였다. 곳곳에 로프를 잡고 수직에 가까운 돌을 밟고 오르거나 내려와야 했다. 그나마도 사람들이 많이 밟은 부분은 반들반들해져 발을 올려놓자마자 주르륵 미끄러져 아찔하기도 했다. 


그렇게 어려운 코스임을 알았지만 같이 가는 사람들이 있어 종주코스를 가보기로 했다. 산이 아닌 다른 곳에서 만났으면 서로 무슨 일을 하는지, 나이는 몇 살인지 등을 물어보며 가까워지려는 시도를 하셨을 수도 있다. 하지만 너무 거칠고 힘든 산행 중에 만났기 때문에 서로에 대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불가능했다. 그저 조금 기다려주기도 하고, 조심하라 일러주고, 반찬을 나누어 줄 뿐이었다. 맨손으로 돌을 짚고 밧줄을 잡으며 가는 나를 보고 안타까워하시며 '장갑을 꼭 챙겨야 한다'며 신신당부하기도 하셨다. 산악회에서 나눠준 밥만 덜렁 챙겨 와서 젓가락도 없이 비닐을 손에 끼고 밥을 집어먹는 나를 보시고는 젓가락도 나누어주시고, 반찬도 나누어주셨다. 정말 감사했다.

      

나는 장갑과 젓가락, 반찬만 안 가져온 것이 아니었다. 물도 하나만 가져왔었다. 총 산행시간 6시간 중 불과 2시간 정도가 지났을 때 이미 나의 물은 밑바닥을 찰랑거리고 있었다. 그런 나를 보고 함께 가시던 분께서 가방에서 파워에이드를 꺼내 선뜻 건네주셨다. 이 힘든 산행에서 그것이 얼마나 귀한 것인지 알기에, 보고도 믿기지 않았다. “이렇게 귀한 걸 제가 받아도 되는 거예요…?” 내가 감격하며 받기를 망설이자 주변 어른들께서 “아유 줄만하니까 주는 거지~ 얼른 받아요~”라고 하셨다. 사실 물을 벌컥벌컥 마시고 싶은 마음을 꾹꾹 참으며 올라올 때, 생전 돈 주고 사 먹어본 적 없는 파워에이드가 문득 생각났었다. ‘파워에이드 먹고 싶다… 이 산꼭대기에서 누가 10만 원에 팔고 있다면 사 먹을까, 말까? 아휴, 물이 없으니까 별 생각이 다 드네… ’라고 혼자 터무니없는 생각을 하며 올라왔었다. 그런데 그 영롱한 파란 음료를 이 산꼭대기에서 만나다니! 정말 하늘에서 내려오신 천사가 아닌가 싶었다.    

   

그렇게 서로 의지하며 열심히 가다 보니 우리 ‘막차팀’(우리들 스스로를 이렇게 칭했다.)도 완등을 하는 순간이 왔다. 다만 시간은 모이기로 했던 시간보다 15분가량 늦었다. 우리는 ‘늦게 와서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인사를 하며 집결장소로 갔다. 대장님은 늦어지는 우리가 걱정도 되셨을 것이고, 출발 시간도 늦어질 수 있기 때문에 예민하셨을 수도 있는데 “허허허” 웃으시며 구수하게 “아니에요~”라고 하시며 반겨주셨다. 그리고 남은 막걸리와 안주거리들을 얼른 들라며 권해주셨다.   


“짠~ 고생하셨습니다~” 막차팀끼리 건배를 하며 시원하고 달달한 막걸리를 몇 잔을 연거푸 마셨다. 정말 꿀맛이었다. 달콤한 막걸리와 잘 어울리는 짭짤한 안주거리들도 먹고 버스에 올라탔다. 무리한 산행을 한 탓에 처음으로 무릎도 욱신거리고, 엄지발가락에도 물집이 생겨 욱신거렸다. 종아리, 허벅지, 엉덩이도 너무 아팠다. 


하지만 기분은 좋았다. 다른 산행 때처럼 ‘내가 해냈다’라는 성취감 때문이 아니었다. 암릉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암릉만 찾는다는데, 나는 당분간은 암릉에는 가고 싶지 않을 정도로 정말 힘들고 무서웠다. 그래서 성취감보다는 '내가 살아 돌아왔다'는 안도감만이 들었다. 그럼에도 기분이 좋았던 이유는 사회적 존재로서의 욕구가 충족되었기 때문이다. 잘 알아보지도 않고 충동적으로 결정한 산행에, 거친 암릉을 타서 이런저런 고생을 했지만 그 경험을 통해 '역시 사람에게는 사람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는 것이 큰 수확이었다. 


내가 잘못해 반성과 자숙의 시간을 가지면서도 이 옹졸한 나라는 인간은 불쑥불쑥 ‘흥 나도 평소에 노력했다 뭐!’ ‘완벽한 사람이 어딨냐고!’ ‘그럼 너는 뭐 완벽하냐!’며 간사하게 속마음을 홱홱 뒤집곤 했다. 사실은 혼자 그렇게 미안했다가, 미웠다가 하며 냉탕과 온탕을 왔다 갔다 하다가 ‘결국 인생은 혼자다 뭐’라는 냉소적인 태도로 홀로 산행을 떠나온 것이었다. 나의 진짜 마음을 그제서야 알았다. 하지만 처음 보는 분들께 도움을 받고, 서로 의지하며 해 온 산행 덕분에 '인간에게는 인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았다. 그중에서도 남편과 나는 수많은 사람들 중 서로가 필요해서 곁에 평생 함께하기로 약속을 맺은 소중한 사이라는 것이 새삼스레 떠올랐다. 그래서 앞으로 남편에게 더 잘해야겠다고 다짐했다. 내가 그동안 너무 나의 일에만 몰두하느라 관계에 소홀했었다. 혹여 남편이 바로 마음을 풀지 않더라도 우리는 서로를 사랑하고 있고, 서로가 필요하다는 것을 믿어 의심치 않고 기다리기로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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