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레를 싫어해도 산에 갈 수 있었던 이유
“비도 그쳤는데 등산 갈까?”
“비 온 다음이고, 산은 그늘이니까 시원할 것 같지?”
9월 첫 주. 연일 비가 많이 오고 난 직후였다. 남편과 나는 나름 아침 일찍 산행을 시작한다며 8시경에 도착했다. 산행을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해가 나오기 시작했다. 9월 초에 비가 그쳤다고 서늘해질 것을 기대한 것, 산은 그늘이 많아서 덥지 않을 것이라는 것은 무지함으로 인한 잘못된 판단이었다. 태양이 작열하기 시작했다. 비가 온 다음이라 왠지 약간의 습한 기운도 더해졌다. 땀이 비 오듯 흘렀다. 하지만 덥고 땀나는 것보다 더 큰 문제가 있었다.
물이 있다는 것, 그것은 곧 생명체가 살 수 있는 곳이라는 것이다. 많은 산을 가본 것은 아니지만 다른 산에 갔을 때보다 훨씬 더 벌레가 많았다. 특히 모기와 파리…! 중간중간 서서 해충 기피제를 뿌리고, 손을 휘휘 저어보고, 도망치듯 속도를 올려서 뛰어올라가도 보았다. 놀랍게도 모기와 파리들이 내 몸 근처에서 붕붕 대며 따라 올라오는 것이다.
산행을 하다 보면 계곡물이 지나는 부분이 있다. 그런 부분에는 어느샌가 벌레들이 나타난다. 생명체가 태어날 조건이 형성되었다는 것일 테다. 물이 있는 곳에는 언제나 생명체가 있다. 생명체가 있는 곳에는 물이 있어야 한다. 나를 따라오는 왕파리와 모기는 정말 싫지만 산행을 하는 동안에는 조금 다른 면도 함께 생각하게 된다. 파리와 모기는 해충에 속하기는 하지만 생명체라는 공통점이 있다는 것을 생각해 본다. 너도, 나도 이 지구가 주는 자연과 공기, 물 덕분에 이곳에서 살아가다가 여기서 만난 것이겠다.
이렇게 ‘벌레가 싫어 등산을 못하겠다’는 말도 조금 무색해진다. ‘어쩌면 네가 사는 곳에 내가 방문한 것이겠구나.’ 생각하며 산에 방문한 내가 손님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 녀석들이 싫다면 내가 손 몇 번 더 젓고, 그때만 조금 더 빨리 도망치면 된다. 그리고 나는 이 자연을 빌려준 존재들에게 감사한 마음으로 한 걸음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간다. 나 진짜 벌레 싫어하는데, 오히려 산에서는 더 무덤덤해진다. 신기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