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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콘치 Oct 16. 2024

일단 시작하기, 준비는 나중에!

아무래도 등산을 계속하지는 않을 수도 있으니까 등산 딱 세 번만 가보고, 그러고 나서도 더 가고 싶다면 그때 등산화든 스틱이든 사기로 남편과 다짐을 했다. 


일단 어디부터 가볼까, 물색을 시작했다. ‘초보자 등산 코스’를 검색해 보았다. 한눈에 띈 것은 바로 내가 살고 있던 지역의 산에, ‘왕복 2시간 반 왕초보 코스’라는 문구였다. 오직 그 문구 하나. 광덕산으로 떠날 때 남편과 내가 준비한 것은 그 문구 하나였다.  “무거우니까 물도 하나만 들고 가자!” 둘이서 500ml 물 딸랑 하나 들고,

몇 년간 맛나게 신어서 뒤축이 닳아진 운동화를 신고 산행을 시작했다. 


이번에도 역시나등산로에 들어선 지 10분도 안 됐는데 머리가 어지럽기 시작했다. ‘원래 이런가시작도 안 했는데 어떡하지이러다 쓰러져서 낭떠러지로 떨어지면?’ 온갖 상상의 나래를 펼치다 정신을 차렸다. 일단 창피하니까 애써 힘든 티를 내지 않고 올라가기로 했다.      


광덕산은 정상에 가까워질 부근데 큰 돌이 많았다. 사족보행을 할 수밖에 없는 높이의 돌이었다. 네발로 기어가며 헉헉대고 있는 이 두 30대를 바람처럼 빠르게 스쳐가는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그중엔 맨발로 척척 올라가시는 할아버지도 계셨고, 고무신 신고 신발주머니같은 가방 하나 들고 날다람쥐처럼 우리를 지나쳐가는 아저씨도 계셨다. “우와…”감탄사만 연신 내뱉게 되는 모습이었다.      


분명히 블로그에서는 등하산을 합해서 2시간 반 밖에 안 걸리는 ‘왕초보 코스’라고 했는데, 우리는 정상에 오르기까지만 2시간이 걸렸다. 정상에는 이 왕초보 등산러들을 더 충격에 빠뜨리는 장면이 있었다. 올라오는 길에 고무신을 신고 우리 옆을 지나갔던 그 아저씨. 가방에서 주섬주섬 편의점 얼음컵을 꺼내서 비타 500을 담아서 마시고 계셨다. '아니, 보냉병도 아니고 플라스틱 얼음컵?' 그 플라스틱 컵에는 얼음도 녹지 않고 그대로 남아 있어 음료를 빙글빙글 돌리실 때 덜그럭 덜그럭 소리가 났다. 크- 등산 고수의 아우라가 느껴졌다. 나도 언젠간 편의점 얼음이 녹기 전에 정상에 도착하는 날이 올까…? … 그건 모르겠고나도 다음엔 무조건 비타 500 챙겨 와야지.’라는 다짐을 했다.     


시선을 돌려 정상석을 바라보았다. '나도 드디어 정상석에서 사진을 찍는다!' 기대하고 기대하던 커다란 정상석! 신나게 사진을 여러 컷 찍었다. 정상에 오르면 무엇을 하면서 쉬는지도 몰랐던 우리는 사람들을 따라 신발을 벗어놓고 바닥에 털썩 앉았다. 그리고 사람들을 관찰하며 다음 산행엔 무엇을 가져올지 리스트를 채워 넣었다. "우와 저 사람들 믹스커피 마신다. 한 입만 달라고 하고 싶다! 우리도 다음엔 믹스커피 챙겨 오자. 근데 난 김밥은 못 먹겠다. 너무 힘들어서. 아 나도 얼음물 너무 마시고 싶다…!" 산행 준비물을 휴대폰 메모장에 적어놓고, 시원한 바람을 조금 느끼다가 하산을 시작하기로 하고 일어났다.

      

“2시간 올라왔으니까 내려가는 건 넉넉잡아 1시간? 1시간 반?” 


우리는 몰랐다. 하산이 더 힘들다는 것을. 심지어 몇 년간 열심히 신어 닳아진 운동화를 신고 왔으니, 우리의 하산길은 더 고난길이었다. 내려가는 내내 발이 미끄러져 마치 미끄럼틀 타듯 주르륵 쿵, 엉덩방아를 계속 찧었다. 몇 번 그렇게 엉덩방아를 찧고 나서는 넘어지지 않으려고 다리에 힘을 더 주고 종종걸음으로 걸으니 앞 허벅지가 터질 것 같았다. “와, 등산화는 있어야겠다.”, “이래서 스틱을 쓰나 봐.”, “우리 조금 더 알아보고 올걸 그랬나?” 이제와 의미 없는 대화를 나누며 자그마치 또 2시간 반에 걸쳐 하산을 했다. 


하지만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무턱대고 시작한 것이 좋았던 것 같다시작하기 전부터 이것도 해야 하고 저것도 해야 한다는데 또 누구는 다른 의견을 말하는 등의 다양한 후기들을 보았다면 시작도 전에 질려버리지 않았을까.

 

취미부자였던 나는 한국무용, 가야금, 발레, 피아노, 클라이밍 등 여러 취미 생활을 경험했다. 취미 생활을 시작하는 첫 단계는 ‘재밌겠는데?’라고 느끼는 호기심이다. 그러면 그다음에는 이미 그 취미를 시작한 경험자들의 사례를 찾아본다. 두 단계를 통과해 그 취미를 시작하기로 마음을 먹었다면, 많고 많은 학원들 중 어느 곳을 선택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 시작된다. 수강료, 장비, 도구, 거리, 뚜벅이라면 버스의 배차간격까지 고려해야 한다. 수강료가 너무 비싸거나 거리가 너무 멀면 탈락. 처음 시작부터 장비와 도구가 많이 필요하거나 거금이 들어간다면 마음이 더 멀어진다. 혹은 비싸거나 많은 준비물이 필요하지는 않더라도 ‘이 사람은 이게 좋다더라’, ‘저 사람은 저게 좋다더라’ 하는 선택지가 너무 많을 경우에도 몇 개 찾아보다 질려버려 그 취미와 멀어져 버리기 십상이다. 


나도 한국무용과 발레를 시작할 때 연습용 치마와 슈즈를 고민할 필요 없이 학원에서 일괄적으로 구매해서 제공해 주는 루트가 좋았다. 시작도 전에 장비 욕심을 부리지 않게 되기도 하고, 인간에게 가장 고통이라는 '선택의 고통'을 덜어주니 마음 편하고 빠르게 시작을 할 수 있었다. 


반면 얼마 전 첼로를 배워보고 싶어 학원을 알아보았을 때이다. 학원의 위치, 수강료, 학원의 인테리어까지! 모든 것이 마음에 들었는데 악기는 개인적으로 준비해야 한다는 공지를 보고 멈칫했다. 당근으로 싸게 살까도 싶다가, 좋은 거 사서 오래 해볼까 싶다가… 이것저것 알아보다 질려서 결국 시작하지 않았다. 악기를 빌려주는 다른 학원을 다시 알아볼 마음조차 사라진 것이다.

     

등산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산이 궁금한 마음은 있었지만 체력 때문에 자신이 없었고, 나의 끈기에 대한 의심도 있었던 상황에서 ‘완벽한 시작’을 하려 했다면 아예 시작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해보고 싶다!’는 마음이 들면 다른 것들은 일부러라도 흐린 눈을 하고, ‘하고 싶다’는 나의 마음에만 집중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 그렇게 일단 시작해서 한 번의 경험을 하고 나면, 그 다음번에 올 ‘진짜 시작’에서는 나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더 잘 알고 시작할 수 있다. 


그러니 해보고 싶은 것, 도전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일단 해보자. 그리고 완벽한 준비는 나중으로 미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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