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콘치 Oct 15. 2024

저질체력이지만 멋진 정상석에서 사진은 찍고 싶어

커다란 정상석 옆에서 위풍당당하게 사진을 남기는 행위에 로망이 생겨버린 나는 ‘조금 작더라도 맛보기로 동네 산부터 시작해 보자~’라는 마음으로 당시 살던 곳 근방에 150m 남짓 되는 산으로 갔다. 어린이들 숲 체험 장과 배드민턴 장, 야외 운동 기구 등이 있는, 말 그대로 ‘동네 산’이었다. 산책하시는 할아버지, 할머니부터 여기저기 뛰어다니며 노는 어린이들까지. 남녀노소가 모두 마실 삼아 오는 곳인 듯했다. 하지만 나는 정상에 갈 것이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 보다는 조금 더 깊게 들어갔다. 정상을 향하는 중에도 '겨우 마실 하러 오는 산'이라는 생각에 좀 시시하다고 느끼던 찰나였다.      


‘어라, 뭔가 잘못됐는데?’     


어지럽고 숨이 차기 시작했다. 나의 체력은 도대체 얼마나 좋지 않은 것인가. 분명히 나이 지긋하신 어르신들도 오고 가시는 것을 분명히 보았는데. 내 체력은 어쩌다 이렇게까지 되어버린 것인가. 고작 이 정도 산에 어지럽고 숨이 차다니! 갑자기 나 자신에게 실망해서 등산 따위 안 하고 싶어졌다. 그래도 '이곳의 정상은 어떻게 생겼을까?' 하는 조금의 기대감으로 조금씩 천천히 올라갔다.       


드디어 정상에 도착했다. 그런데...     


“애걔, 이게 정상이야?”     


아, 나는 정말이지 초보 중에서도 왕초보 등산러였다. 고도에 대한 감도 없어서 100m 조금 넘는 언덕에서 정상의 뷰를 기대했던 것이다. 산이 너무 낮고 완만해서, 정상에 올랐음에도 그곳은 여전히 숲 속이었다. 그냥 풀과 나무 숲이 우거진 한가운데일 뿐이었다. 정상석이 있긴 했다. 하지만 나처럼 정상석을 보려는 목적으로 간 것이 아니라면 그것이 있는지도 모르고 지나칠만한, 내 무릎 정도 높이 보다 더 낮은 크기의 정상석이었다.

정상석을 보고 나니 내가 산행이라 하기에도 민망한 곳을 오르며 어지러워하고 숨이 차고 눈이 퀭해졌다는 사실이 비참하게 느껴졌다.

     

‘이런 내가 등산을 할 수 있을까? 재미 하나도 없고 엄청 힘들기만 하다. 흥.’     


그렇게 약간 의기소침해진 상태로 돌아오는 길에 곰곰이 생각을 해보았다. '내가 멋지게 보았던 그녀도 체력이 심각하게 안 좋아서 등산을 시작했더랬지. 그럼 나도 조금씩 하다 보면 늘어갈까?' 호기심 섞인 희망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그렇게 생각하니 기운이 조금 나면서 승부욕이 발동하기 시작했다.      


나도 멋진 정상석 옆에서 사진 찍을 거야. 이건 내 등산 역사에 시작일 뿐이야!

이전 01화 완벽한 그녀의 취미 생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