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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콘치 Jan 11. 2024

비 오는 날의 감상

어둑하고 컴컴한 방 안에 어울리지 않게 밝은 알람음이 울린다.

이상하리만치 깜깜한 공기. 

끈적끈적하게 들러붙은 몸을 일으키려 시도해 보지만 너무 둔중해 실패한다.

어디가 아픈 게 틀림없다고 생각한다.

여전히 매트리스에 녹아있는 채로 날씨를 확인해 본다. 

역시나, 비가 오는 날이었다.

굳은 어깨와 목의 뻐근함을 이기려 스트레칭을 해본다.

오늘은 반드시 조퇴를 하겠다고 다짐하며 짜증 섞인 발걸음을 툭툭 내딛는다.

 


툭, 떨어지는 비를 튕겨내며 우산을 펴고 축축하고 시원한 공기 사이로 들어간다.  

조금 전보다는 몸이 가뿐해지는 듯하다. 

어쩌면 늦장을 부리느라  갈 길이 바빠졌으니 

어쩔 수 없이 가뿐한 것처럼 움직이는 것일지도 모른다. 



발걸음은 앞으로 가면서도 고개를 바쁘게 두리번거려 본다. 

낡은 주택과 상가들 사이, 담벼락 밑, 차 밑을 살핀다.

이렇게 비 오는 날에 길에서 사는 연약한 존재들은

어디에서 비를 피하고 있을까. 어떤 마음으로 이 쌀쌀하고 축축한 시간을 지내고 있을까.

덜덜 떨며 어찌할 수 없는 자신의 처지를 슬퍼하고 있을 것 같다.

아니, 어디선가 눈을 지그시 감은 채로 그저 초연하게 비를 피하고 있을 것 같다.



비를 맞아 더 초록빛으로 빛나는 나뭇잎,  투둑투둑 우산에 떨어지는 빗소리,  

시원하게 쏟아지듯 흐르는 강을 보며 잠시 차분해졌었는데.

그렇게  젖어드는듯하다가도  맑은 날에 저 물에서 몸을 다듬던 오리들, 

물가에서 먹잇감을 기다리던 새들,  

사람이 없는 틈에 차 밑에서 나와 인도 한켠을 유유히 걸어가던 고양이들이 생각나면 

금세 눈물이 울컥 차오른다. 

갑자기 비가 쏟아지고, 날이 추워지고, 눈이 내리는 것처럼

어찌할  수 없는 상황들에 불평조차 못해서 억울하진 않을지,  

주변을 경계하느라 긴장하며 외롭게 지내는 것은 아닌지.

그러나 어쩌면 나보다 그들이 더 단단한 마음을 가졌을지도 모른다.

비가 오면 비가 오는 대로, 눈이 오면 눈이 오는 대로, 칼바람이 불어 추우면 추운 대로, 

누군가 내 자리를 뺏으면 그저 다시 다른 곳으로 몸을 피하며.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보니 유치원에 도착했다.

비에 젖어 눅실해진 마음을 애써 털어내듯 우산을 흔들어 물기를 털어낸다. 

어디선가 비를 피해있느라 눈에 띄지 않았던 어떤 존재들에게 이미 마음을 쏟은 터라

새로 누군가를 살피고 싶지 않기도 하다. 

그러나 그들처럼 나도 초연하게 받아들여볼까도 싶다. 

퇴근길에는 날이 개어 다시 평온한 모습을 볼 수 있길 소망하면서. 

날이 흐려 나처럼 몸이 무거웠는지 

눈물 콧물을 훌쩍이며 등원한 아이를 반갑게 마주 보며 말을 건네본다.


아이구, 비 오니까 집에서 쉬고 싶었지? 오느라 고생했네. 물 한 번 마시고 같이 가방 정리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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