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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상파 Nov 11. 2024

자유글 06

여섯 달 요양보호사

여섯 달 요양보호사


여섯 달 동안 요양보호사 일을 했던 집에서의 마지막 날이다. 요양보호사, 새로운 직업에로의 도전이었다. 아니, 날마다 하는 집안일을 남의 집에서 눈치 보며 하는 허드렛일이었다. 그리 많지도 않은 나이에 몸이 불편해 등급을 받은 어르신은 기초생활수급자라 공짜로 사람을 부리는 맛을 톡톡히 누리는 것 같았다. 요양보호사가 마음에 안 든다고 나 이전에 세 명이나 잘라냈다고 하더니 이번에는 방문요양이 아니라 주야간 보호 센터를 이용한다는 핑계를 대며 나를 잘랐다. 그러지 않아도 날이 갈수록 어른의 불평과 잔소리가 늘어가서 정신이 사나워지는 참이라 잘 됐다 싶었다. 그녀를 듣기 좋게 어머니라 부르면서 요구하는 대로 토를 달지 않고 열심히 한다고 했는데 불평을 늘어놓을 때면 일할 의욕이 나지 않았다. 무엇보다 칼질을 잘 못한다고 모친을 언급하는 대목에서는 정말 정나미가 뚝 떨어졌다.


마지막 날인데 사람이 어떻게 나올까? 그게 되게 궁금했다. 어르신이 한날은 설거지를 하는 내게 이 집에 일을 하러 온 사람이니 똑바로 하고 가라는 말을 한 적도 있어 마지막 날이니 나를 아주 벗겨먹겠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출근을 해보니 혈액암을 앓고 있는 남편분이 거실 침대에 누워있었다. 혈액암 주사를 맞고 퇴원하는 날로 원래 있던 허리 협착증이 심해져 동네 정형외과에서 물리치료를 받느라 센터를 못 갔다고 했다. 남편분은 허리가 잘 펴지지 않는다며 누워서도 앓은 소리를 내며 중국 드라마를 보고 있었다. 그녀는 탁자 옆에 갖다 놓은 목욕 의자에 앉아서 다리를 주무르고 있었고. 닳은 무릎 연골에 무리가 왔는지 욱신욱신 쑤셔서 남편이 물리치료를 받을 때 같이 물리치료를 받고 왔다고 했다.    

  

그녀의 얼굴빛이 사나워보였다. 몸이 아픈 것도 아픈 거지만 집에 누워있는 남편이 불편한 모양이었다. 그녀는 남편이 집에 있는 날에는 유달리 더 소리를 지르고 불평을 쏟아내곤 한다. 남편을 요양원에 보내고 싶어도 경제적인 사정 때문에 그러지 못한단다. 노래 프로를 좋아하는 그녀가 알아들을 수 없는 중국드라마를 보고 있는 남편에게 그것 좀 그만 보고 다른 데 틀라고 소리를 꽥 질렀다. 분위기가 험악해지고 있었다. 불똥이 내게까지 튈 것 같은 분위기. 마지막 날 일 잔치(?)를 치를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목요일은 쉬는 날이고 금요일은 내 사정 때문에 나오지 못했으니 닷새 만의 출근이었다. 거실이며 부엌으로 음식물과 먼지가 돌아다녀 걸레로 훔치고 쌓인 설거지를 했다. 텔레비전 소리에 섞여 그녀가 오늘은 신발 정리를 하자고 한다. 전에 한 번 현관에서 벌레를 봤다고 하더니 그 벌레가 아무래도 신발장 안으로 들어간 것 같으니 그놈을 잡아야겠다는 것이다. 평수가 크지 않은 집이라 거실과 현관이 바로 붙어있어 누워있는 사람에게 먼지깨나 날릴 것은 불을 보듯 뻔했다. 거실에 남편이 있을 때는 먼지 날린다고 청소기도 돌리지 못하게 하는 사람이 오늘은 전혀 상관할 바가 아닌 모양이었다.   

   

노인이 신발장 문을 열어젖혔다. 참 가지가지 물건들이 많다. 빈틈없이 쌓인 신발은 서른 켤레가 넘어 보인다. 아가씨들이나 신을 만한 무릎까지 올라오는 부츠며 목이 짧은 부츠, 장화 그리고 수십 켤레의 운동화, 유행 지난 샌달들이 마구잡이로 들어차 있다. 그것뿐인가. 목장갑이며 대여섯 개의 우산, 비닐이며 구두약을 묻힌 듯한 마른걸레, 시장 가방, 망치며 펜치 같은 연장에서 소화기에 이르기까지 쓸만한 것보다는 버려야 할 물건들로 산적해 있었다. 노인네는 켜켜이 쌓인 그 모든 것들을 다 끄집어내라고 했다. 나는 의자를 갖다가 놓고 올라가 꼭대기에서부터 아래로 차례차례 물건들을 꺼내 현관 바닥이며 열어젖힌 문 밖으로 집어던졌다. 그녀는 쌓인 물건더미와 신발장 구석에서 벌레를 찾는 시늉을 했다. 벌레가 분명히 신발장 안으로 들어갔는데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녀는 쌓인 물건더미 속에서 다시 신발장으로 들어갈 물건을 고르고 나는 선반 바닥에 쌓인 시커먼 먼지를 물걸레로 닦아냈다. 신발장 정리를 하겠다고 할 때는 신발들을 몇 켤레 남기지 않을 것처럼 굴더니 버릴 신발을 고를 때는 버린 것보다는 다시 신발장 안으로 밀어넣는 것이 많았다. 


신발장을 정리하고 났더니 다음은 부엌을 정리하잔다. 이 집은 식탁 위에 약 가로, 세로, 높이가 50센티 정도 되는 약상자가 놓여 있다. 두 사람의 약 복용량이 많아서 식탁 위에 약상자를 올려놓고 있다. 약상자 옆으로는 고장난 전자렌지가 자리를 잡고 그 위에는 라면이며 잼병이며 과자봉지가 쌓여있다. 그러니 식탁에서의 양주의 식사는 옹색할 수밖에 없다. 식탁 위의 물건들을 치우라고 하나 봤더니 그것은 만지지도 못하게 한다. 물건을 버리지 못한 노인의 성격이 그렇기도 하지만 버리면 돈이 들기 때문에 그렇게 안고 살고 있는 것이다. 


치매에 기저귀를 차고 있는 어머니가 센터에서 돌아오시면 돌보는 일은 오롯이 나의 일이다. 그래서 짬을 내서 하는 오양보호사 일은 치매며 기저귀 케어를 하지 않아도 되는 대상자를 염두에 두고 이 어르신을 택했는데 시키는 일이 너무 많았다. 아들이 순대국밥집을 냈다고 삼 주 정도는 깍두기를 담아내느라 바빴고 농산물에 가면 물건을 싸게 살 수 있다고 농산물 시장에 자주 채소를 사러 갔고, 10킬로 정도의 쑥을 사와서는 그걸 고르고 씻고 삶아냈다. 그리고 휠체어에 불린 쌀과 쑥을 싣고 방앗간까지 가서 빻아왔으며 그걸 갖고 한여름에는 개떡을 쪄댔다. 다육식물을 기른 전력이 있어 땡볕이 달아오른 대낮에 다니던 화원에를 들러 다육식물을 사오기도 했고, 날이 궂은날이면 막걸리가 생각나는지 사람을 불러 막걸리를 마시면 막걸리에 어울리는 안주를 해대느라 바쁘기도 했다.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속은 모른다고 했지만 여섯 달, 그리 짧지 않은 기간 동안 한 사람을 알기에는 충분했다. 귀가 얇아 사람들의 말에 현혹되기도 잘하고, 가진 게 없어 아쉬운 소리를 많이 하고, 눈물이 헤퍼 정도 많은 사람이었다. 나랏돈으로 요양호보사를 들이면서 마치 자기 돈으로 사람을 부리는 것처럼 갑 행세를 하는 게 비단 그녀뿐일까. 생선 장사를 나간 어머니 대신 다섯 살부터 밥을 지었다는 그녀는 배움의 기회를 갖지 못하고 13살에 딸아이를 낳아 타국으로 입양을 보내기도 했다. 그녀의 생애를 더듬어 보면 참으로 기구하기도 하지만 아이들을 잘 키워준 두 번째 남편이 있어 그걸 상쇄하고 남음이 있었다. 하지만 춤이며 술에, 약장사며 다육식물에 올인하면서 가정을 등한시하여 인생 후반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 같았다. 어쨌든 나와 다른 생각을 갖고 저물어가는 인생을 맞이하고 있는 그녀의 삶은 춥고 고달퍼보였다. 그들 부부가 안녕하기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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