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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글 39

생과 사의 길

by 인상파

월명사의 향가 〈제망매가〉


생과 사의 길


국어 교과서에서 처음 만났던 월명사의 〈제망매가〉는 삶의 유한성과 쓸쓸함, 그리고 적막을 맛보게 했던 작품이었다. 죽음이 어쩌면 떫은 감맛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 것도 그때였다.


‘여기저기 떨어질 잎’을 읽으며 나는 그 나무를 우리 집 마당가의 감나무로 떠올렸고, 채 익지도 못한 채 먼저 떨어져 버린 작은 감들을 함께 떠올렸다. 나는 오랫동안 그 떫은맛을 죽음의 맛이라 여겼다. 그리고 지금도 그 생각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혈육의 죽음을 슬퍼하면서도 그 슬픔을 절제하고 불교적 세계관으로 승화시키는 화자의 모습은, 스님이라는 그의 신분에 대한 동경과 호기심을 불러일으켰다.


일 년에 한두 번씩 상여가 나갔던 시골 마을에서 사람들의 슬픔은 통곡과 눈물로 휘몰아쳤다. 그와 달리 작품 속 스님은 담담하고 고요했다. 마치 은은한 목탁 소리 아래 삶과 죽음을 초월한 자리에 앉아 있는 듯했다. 질풍노도의 시절, 나는 그 태도에 이끌렸고, 스님이라는 존재를 피상적으로나마 오래 동경했다.


〈제망매가〉에는 떠난 이를 위해 기도하면서도, 그 기도 안에서 살아 있는 자신을 다독이는 마음이 배어 있다. 때 이른 낙엽이 발끝에 와 닿을 때, 나는 그저 밟고 지나갈 수 없었다. 누군가의 생이 스치듯 지나간 자리를 짓밟는 듯한 기분 때문이었다.


살아서 먼저 떠난 이를 기억하는 일조차 마음이 아렸다. ‘생사의 길을 어찌 알겠는가’라는 물음은 답을 알 수 없으면서도 내 안에서 계속 울렸다. 그러나 끝내 남은 것은 화자의 말이었다, 다시 만날 수 있으리라는 믿음, 슬픔을 희망으로 건너가려는 마음.


삶과 죽음의 길은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운명처럼 우리 앞에 놓여 있다. 먼저 떠나는 이를 추모하는 일은 인간의 오래된 의식이며, 남겨진 자가 할 수 있는 마지막 인사다. 〈제망매가〉 또한 그런 마음에서 비롯된 노래일 것이다. 누이를 떠나보낸 화자는 그 이별 앞에서 한없이 작아진다.


그러나 그는 슬픔에 무너지지 않는다. 내세에서 다시 만나기를 소망하며 마음을 붙든다. 그래서 이 노래는 비통함의 기록이 아니라, 슬픔을 건너가려는 한 수행자의 자세를 보여준다. 죽음을 절망이 아니라 또 하나의 삶의 시작으로 바라보려는 믿음—그 믿음이 이 작품을 오늘까지도 살아 있게 한다.


이 시를 읊조릴 때마다 생과 사의 경계는 단단한 벽이 아니라, 바람처럼 스며드는 가벼운 그 무엇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어쩌면 상실을 견디는 일은 잊는 것도, 붙드는 것도 아닌 그 중간 어디쯤에 머무는 일인지도 모른다. 슬프다고 소리치지도, 괜찮은 척 애쓰지도 않고, 그 상실과 함께 잠시 숨을 고르며 살아가는 일. 그런 태도가 이 노래에 배어 있다.


〈제망매가〉는 누이를 잃은 비통함을 숨기지 않으면서도 그 슬픔 속에만 갇히지 않는다. 죽음은 끝이 아니라 다시 만날 수 있는 또 다른 세계의 문이라고 노래한다. 그래서 이 시는 ‘슬퍼하지 말라’고 말하지 않으면서도, 슬픔이 절망으로 가라앉지 않도록 이끌어준다.


결국 이 시가 내 기억 속에 오래 살아 있는 이유는, 죽음을 단절이나 공포로만 바라보지 않게 해주었기 때문이다. 이 시를 만난 뒤 나는 이별을 운명의 폭력으로만 받아들이지 않게 되었고, 상실은 시간이 흐른 뒤에도 계속 살아 있는 기억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슬픔은 사라져야 할 감정이 아니라, 우리가 살아 있다는 증거이자 누군가를 깊이 사랑했다는 자취라는 것도.


저 까마득한 신라 사람이 남긴 이 짧은 노래가 한 인간의 삶과 죽음에 대한 태도이며, 존재의 유한성을 일깨우며, 삶의 결을 기쁨보다 침묵과 관조에 두게 만들었다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슬픔을 견디며 살아내는 인간의 모습 속에, 언젠가 다시 만날 수 있으리라는 희망이 있고, 모든 이별이 사라지는 지점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삶이 덧없다는 사실이 곧 허무로 이어지지 않는 것도 그 믿음 덕분일 것이다.


천 년이 지난 지금도 이 노래는 ‘삶과 죽음은, 정말 어디에서 이어지고 어디에서 끝나는가.’라는 물음을 놓지 않는다. 풀리지 않은 숙제를 남긴 채 시는 끝났지만, 시의 생명은 끝나지 않는다. 그 생명은 지금도 나라는 인간을 조금 더 단단하게, 그리고 조금 더 깊게 만들어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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