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마지막 문장을 쓰는 일
고려가요 〈가시리〉
사랑의 마지막 문장을 쓰는 일
떠나가는 사람은 붙잡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속삭이듯 알려주는 작품이 고려가요 〈가시리〉다. 운명처럼 만났든, 어쩌다 보니 연인이 되어버렸든 그것은 부차적인 문제다. 만남은 언제나 이별을 예고하고 있으니, 결국 이 작품은 사랑이 끝나는 자리에서 어떤 마음을 가져야 하는가를 묻는다.
그러나 나는 이별 앞에서 작품 속 화자처럼 ‘돌아오리라’라는 희망을 품지 못했다. 그래서였을까. 나는 상대가 다시 되돌아올 길을 남겨두지 않았다. 퇴로를 아예 막아버렸다. 이별을 받아들이는 대신, 상처가 덜 나도록 문을 세게 닫는 방식으로 끝을 만들었다.
나를 두고 떠나는 사람은 이미 마음이 멀어진 사람일 것이다. 그 시기엔 나 역시 적당히 지쳐 있었을지도 모른다. 익숙함이 권리가 되고, 관심이 의무가 되고, 어느 순간 서로의 마음은 깎이고 닳아 더 이상 따뜻한 온기를 찾기 어려워진다.
그럼에도 질문은 남는다. 가는 사람을 붙잡아야 할까, 아니면 가도록 내버려두어야 할까. 〈가시리〉의 내용처럼 우리는 만나며 이별을 이야기하고, 이별하며 또다시 만남을 희망한다. 작품 속에는 왜 헤어지는지가 드러나 있지 않지만, “가시리 가시리잇고”라며 떠남을 인정하면서도 “다시 돌아오소서”라는 말을 덧붙인 화자의 마음을 보면 이미 상대가 다른 마음을 품었으리라 짐작하게 된다.
그래서 화자는 묻는다. 정말 떠나겠느냐고. 정말 자신을 버리고 가겠느냐고. 떠나면 자신은 살아갈 수 없을 것 같다고 말하면서도, 붙잡지 못하고 보내는 이유는 단 하나, 억지로 잡아두면 끝내 다시 돌아오지 않을 것 같기 때문이다. 그 마음을 알기에 서러움을 숨기지 않으면서도 상대의 감정과 존엄을 건드리지 않는다. 그 애틋함 속에서 이별의 정한이 드러난다.
허나 당신의 성격을 모르는 바가 아니니, 억지로 잡아두고 가지 말라고 울며 매달린다고 해서 이미 떠난 당신의 마음을 되돌릴 수는 없을 것이다. 사랑은 다짐한다고 지켜지는 것도 아니고, 붙잡는다고 남는 것도 아니다. 마음이 떠난 순간, 그 사람은 이미 손에 닿지 않는 먼 곳을 향해 가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가시리〉의 화자는 끝내 담담해진다. 떠나는 이를 원망하는 것도, 자신을 버리는 운명을 저주하는 것도 아니다. 다만, 한 걸음 물러서서 말한다. “가되, 가자마자 돌아오라.” 여기에는 희망도, 체념도, 사랑도, 미련도 함께 얽혀 있다. 붙잡지 않는 것이 사랑일 수도 있고, 보내는 것이 마지막 남은 존엄일 수도 있다.
그러나 떠나는 사람은 이미 떠난 사람이라는 것은 확실하다. 가지 않을 사람은 애초 떠나지 않고 반대로 떠날 사람은 어떤 이유든 결국 떠난다. 모든 일이 그렇듯, 사랑 역시 마지막에 진짜 모습을 드러낸다. 누가 더 많이 애썼는지, 누가 더 상처받았는지, 누가 먼저 등을 돌렸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사랑을 보내는 법을 가르쳐준 옛 노래는 단지 슬픔의 노래만은 아니다. 붙잡지 않아야 돌아올지도 모른다는 희미한 믿음, 붙잡지 못해 영영 떠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그 두 감정 사이에서 흔들리는 마음이 어쩌면 우리가 사랑 앞에서 보일 수 있는 가장 진솔한 모습이 아닐까.
그리고 어쩌면, 이별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사랑을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의 마지막 문장을 흐트러뜨리지 않고 적어 내려가는 일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