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대로 걷지도 못하면서 굳이 친구들을 따라 보고타에 왔다. 움직이지 말고 푹 쉬어야 했지만 그렇다고 숙소에서 며칠간 가만히 있으려니 방 안에서 더 우울할 것만 같았다. 그래서 발목에 보호대를 차고, 메데진에서 보고타로 떠났다.
경기는 나가지 못하지만 내 체급에서 뛰는 선수들이 얼마나 좋은 기량을 보여주는지도 궁금했다. 특히 같은 체급에 콜롬비아 랭킹 1위(AJP 기준)하는 친구가 있었다. 나이도 18살이고, 이전 대회 기록들도 좋아 보였는데 실력이 어떤지 직접 눈으로 보고 싶었다.
승패에 따라 느끼는 수많은 감정들
시합이 주는 큰 매력이 있다.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알아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이번 대회에는 선수로 출전해보진 못했지만, 그래도 팀 동료들과 이곳에 왔다는 것만 해도 주먹이 꽉 쥐어졌다. 시합에 출전하지 않는 나도 이렇게 떨리는데 다른 친구들은 오죽했을까 싶었다. 거의 매일 같이 운동하던 친구들은 그들 존재 자체만으로도 든든했다. 이기든 지든 본인을 모두 보여주고 올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Show'em who's boss!
친구들이 한 명씩 시합 시간이 되어 준비를 할 때, 열심히 사진을 찍어주면서 그들이 다치지 않고 무사히 마치길 바랐다. 연습 매트에서 몸을 풀고, 본인의 차례가 되어 저 길을 걸어오면서 무슨 생각을 할까. 친구들의 얼굴은 사뭇 진지하고 평소와는 다른 모습이었다.
이 친구는 대회 경험이 3번 째였는데, 경험은 부족하지만 힘은 타고난 듯이 셌다. 운 좋게 첫 경기를 부전승으로 올라와 두 경기를 내리 이기고 결승에서 아쉽게 패배해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은메달은 확실히 동메달보다 만족도가 떨어지는 것 같다. 친구는 결승전의 패배가 끝끝내 아쉬운 듯했다.
Team Checkmat
관장님은 이번 대회에 맞는 체급과 나이대의 선수가 없어, 다른 체급으로 옮겨져 출전하였는데 상대 선수와 약 30kg 차이나고, 나이는 10살 이상 어렸다. 어떻게 이런 대진표를 만들 수 있을까 의문스러웠지만, 경기가 시작되고 숨죽이며 지켜보았다. 결과는 3분 정도만에 서브미션 승리를 거두었다. 10년 이상 수련한 사람들이 받는 블랙벨트, 그들만의 리그에서 나이와 체급 모두를 뛰어넘는 서브미션 승리는 가히 경외감이 들었다.
항상 반갑게 맞이해 주고, 잘 놀아주는 맏형, Luis는 시합 내내 위험한 고비를 넘기고 역전 서브미션으로 승리했다. 경기를 보는 내내 조마조마하고 점수차이가 커서 지는 줄 알았는데 30초 남기고 상대의 탭(항복)을 받아내었다. 경기가 끝나자 불끈 쥔 두 주먹을 하늘 높이 뻗었다.
Luis는 숙소에 도착할 때까지 금메달을 목에 매고 있었는데 그 모습을 보니, 나까지 덩달아 기분이 좋아졌다. 결과가 좋지 못한 친구도 있었지만 다들 도전했고, 좋은 밑거름이 될 것이라 믿는다.
다들 그동안 시합 준비한다고 술도 줄이고, 감량하느라 제대로 먹질 못했는데 시합이 끝나고숙소에 도착하자마자 한 친구는 바로 슈퍼에 가서 맥주를 마셨다. 시합이밤늦게 끝나게 되어 저녁 식사와 함께 맥주로 시작했다.
맥주가 다 비슷하다고 잘 몰랐던 나 조차도 콜롬비아에서 친구들 따라간 곳은 확실히 맛이 달랐다. 다들 피곤한데도 다음날 메데진으로 돌아가야 해서 보고타의 토요일 밤을 신나게 먹고 마시고 즐겼다.
시합은 참여하지 못했지만, 따라오길 잘했다는 생각을 했다. 발목 찜질하며 혼자 우울하게 있는 것보다 훨씬 재밌는 경험이었고, 현장 분위기를 느껴보니 발목이 얼른 회복되어 콜롬비아에 있는 동안 최대한 많은 대회 경험을 해보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