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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페티 Feb 26. 2024

콜롬비아 칼리 주짓수 대회 3일 전 또 부상

이번엔 손가락이 말썽이다

지난 보고타 대회를 준비하다가 다친 발목이 다 낫기도 전에 다음 칼리 시합 전 이번엔 손가락이 꺾였다. 발목은 치료를 받기 위해 스페인어로 'La terapia física'라고 하는 '물리치료'를 받으러 다녔는데 한국처럼 찜질이나 전기 등으로 치료하는 것이 아닌 그냥 운동법을 1시간 동안 알려주는 시간이었다.


 병원 의료기기를 전혀 사용하지 않고, 집에서 영상을 보고 혼자 따라 할 수 있는 걸 병원에서 하고 왔다. 이후에 굳이 가서 할 필요는 없는 것 같아서 '진짜 물리치료' 받을 수 있는 곳을 찾아보기로 했다.


손가락이 꺾였다.


 스파링을 하던 중, 가드에서 상대방이 패스하지 못하도록 손을 뻗어 막고 있는 상황에서 상대 무릎에 찍혀서 왼손이 순간적으로 꺾였다. 처음에는 너무 아파서 손목 자체가 꺾인 줄 알았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엄지 손가락 통증만 심해졌다. 시합은 3일 남았는데 이제 부상 목록이 하나 더 늘었다. 한 달 전 콜롬비아 보고타 AJP 대회를 준비할 때도 그랬고, 이번에도 시합을 코앞에 두고 다치다니 하늘이 노래졌다.


 주짓수나 유도를 해본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다섯 손가락 중에서 힘을 쓰는 건 엄지, 검지, 중지인데 그중 엄지를 빼고 나머지 4개 손가락만 사용한다는 것은... 상대 도복 깃을 잡을 때도 불안정하고, 제대로 시합이나 할 수 있을까 의심이 들었다. 마치 스스로 엄청 큰 페널티를 안고 시작하는 것이었다.


 발목과 엄지손가락 모두 같은 친구와 스파링을 하다가 다쳐서 당시에는 조금 원망스럽기도 했다. 항상 큰 부상을 안겨줬기 때문에 걱정은 날로 늘어갔다. 하지만 콜롬비아에 머물면서 가장 친하게 지냈던 친구고, 늘 웃음이 나는 친구였기 때문에 그런 마음은 금방 사라졌다. 더욱이 나를 걱정해 주는 친구 앞에선 담담하게 괜찮다고 한 뒤, 앞으로 할 수 있는 것들을 다시 정리해 보았다.


 다친 직후, 체육관에 구비된 얼음팩으로 얼른 응급처치를 했다. 이때 처음 한 20분 동안, 손가락에서 처음 느껴보는 고통이 밀려왔다. 당장 시합은 3일 남았고, 손가락은 점점 부어오르고 있었다. 고통을 고스란히 느끼면서 앞으로 남은 일정동안 시합을 어떻게 준비할 것인지 생각하니 정신도 아득해졌다.


 '한 손을 안 쓰고 시합에서 이길 수 있을까.'
'전력을 다해도 모자랄 판에 발목과 손가락을 테이핑 하고, 나가서 싸울 수 있을까.'

 '당연히 상대방은 내가 아프다고 봐주지 않을 것'이기에. 아픈 부위를 상대방이 알아차리지 못하기 위해 멀쩡한 오른쪽 발목까지 테이핑을 할까 고민도 해보았다. 더군다나 이 시합은 우리 체육관에서 나 혼자 가는 것이라 걱정이 산더미였다.


왼쪽 사진이 다치고 한 2시간 지났을 때고, 오른쪽 사진이 그날 저녁이다. 처음엔 퉁퉁 부어오르기만 하다가 저녁부터 점점 푸른빛이 돌기시작했다. 병원에 가봤자 3일 이내에 이 손가락을 고칠 수는 없을 것 같고, 의사 선생님은 시합에 나가지 말라고 할 것이 분명하기 때문에 병원은 일단 가지 않았다. 아픈 손가락을 붙잡고, 또 저번 시합처럼 고민했다.


 그러던 중 병원에서 일하는 친구를 찾았다. 마침 운이 좋게도 스포츠 분야 정형외과 쪽에서 일하는 간호사 친구 덕분에 위의 손가락 사진을 보내고, 영상도 찍어서 보내주었다. 그 친구가 일하는 병원 의사 선생님께 사진으로나마 자문을 구할 수 있었는데 결론적으론 절대로 시합에 나가선 안 되고, 사진과 영상으로 보기엔 줄에도 문제가 있을 것으로 판단되어 최소 10일간은 움직이지 못하도록 고정해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콜롬비아에 머물 수 있는 비자는 한 달 남짓했고, 그동안 시합은 준비했던 콜롬비아 AJP 칼리 대회와 이후 1주일 뒤에 있는 것이 전부였기 때문에 더 고민이 되었다.


 당장 처치할 수 있는 건 시합 때 더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스포츠 테이핑과 약을 사 오는 일이었다. 약국에서 손가락이 꺾였다고 설명하니 Meloxicam이라는 약을 처방해 주었다. 그리고 평소에 구비해 두고 통증이 심할 때 복용하는 나프록센 타입의 진통제와 함께 급하니 알약 2개를 삼켰다. 그렇게 다친 당일과 다음날 아침, 점심, 저녁을 복용했는데 같이 먹으면 안 되는 것인지, 먹은 것 중에 뭔가 잘못되었는지 저녁식사 이후로 속이 안 좋기 시작했다.


D-2


 결국 새벽에 자다가 일어나서 구토를 했다. 이제는 발목, 손가락에 이어 속도 좋지 않았다. 시합 D-2일, 새벽에 눈을 뜬 나는 해가 뜰 때까지 뱃속에 있는 걸 다 게워냈다. '이런 최악의 컨디션으로 시합을 나간다는 게 말이 되나.', '가서 아무것도 못하고 올 것 같은데 그래도 나가야 할까.' 또는 '괜히 속도 안 좋은데 힘쓰다 시합장에서 실수라도 하면 어떡하지' 등등 치욕스러운 상상까지 하게 되고, 시합 이틀 전인데 머릿속은 복잡했다. 뱃속이 요동치니 머리는 폭풍이 몰아치고 있었다. 시합을 나갈까, 나가지 말까를 이틀 전까지 고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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