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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페티 Mar 04. 2024

칼리 주짓수 대회 D-1

하루 전까지 고민하다.

아마 손가락을 다치고 진통제와 처방받은 약을 먹고, 저녁에 이 햄버거를 먹었는데 햄버거가 문제였는지, 약이 문제였는지 모르겠지만 시합 전까지 아무것도 먹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최대한 소화기관에 부담이 덜 되는 액체로 마실 수 있는 건강 음료(?)를 사서 마셨다.


배탈나기 전날 밤에 먹은 햄버거

 지겹도록 많이 먹었던 햄버거였다. 자주 가는 레스토랑이었고, 운동이 끝난 저녁에 종종 사 먹으러 가던 곳이고, 그동안 탈 난 적이 단 한 번도 없어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하필 시합 이틀 전에 문제가 생겼다.


 혼자 시합을 위해 떠나던 목요일 밤, 이때도 참 가는 길이 험난했다. 지난번 보고타 대회를 가기 위해 메데진 북부 터미널에서 버스를 탔기 때문에, 당연히 칼리도 북부 터미널로 가는 줄 알았다. 버스 시간에 맞추어 택시 기사님께 칼리에 간다고 했더니, 칼리는 북부 터미널이 아니라 남부 터미널이라고 알려주셨다.


 이때 그나마 운이 좋았었다. 미리 여유롭게 택시를 불렀고, 기사님이 좋으신 분이라 대화하는 과정에서 칼리는 메데진 북부 터미널이 아닌 남부 터미널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어찌어찌 남부 터미널에 잘 도착했고, 기사님께서 편하고 비싼 버스라며 버스 회사도 2곳을 추천해 주셨다.


 기사님이 추천해 주신 버스회사 중 한 곳인 Empresa Arauca라는 곳에 예매했고, 다행히도 사람들이 많이 탑승하지 않아 옆자리가 비었다. 덕분에 편하게 갈 수 있었고, 보통 남미 버스들은 직행이라고 말해도 중간중간 멈추는 곳이 많았는데, 이번엔 그렇게 많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처음에 버스 직원으로 보이는 분이 자리에 앉아있는 승객들에게 먹을 것들을 한 주먹씩 나눠주고 계셨다. 버스에 타면 웰컴 키트처럼 '먹을 것을 이렇게 많이 나눠 주는구나!' 이래서 택시 기사님도 추천해 주는 좋은 버스라고 생각하며, 받아 든 과자를 모두 가방에 챙겨 넣었다.


 하지만 잠시 뒤 다시 돌아온 직원은 과자를 살 거냐고 물어보았다. 그럼 그렇지, 이건 공짜로 주는 게 아니라 다 사는 것이었다. 결국 다시 다 반납해야 했다.


 메데진에서 밤 10시 버스를 타고 도착한 칼리에 대략 10시간이 소요되어 오전 8시에 도착했다. 눈은 반쯤 감겨 있는 채로 부랴부랴 짐을 챙기고 버스에서 내렸다. 일단 터미널 안으로 들어가서 택시 타는 곳을 찾고 있었는데 누군가 뒤에서 내 어깨를 두드렸다.


 돌아보니 경찰 제복을 입고 있는 세 명이 내 뒤를 쫓아왔다. 잠이 덜 깬 채로 큰 가방을 메고 두리번거리는 내 모습이 수상했을까? 갑자기 그들에게 둘러 쌓여 여러 질문을 받았다. '어디 사는지, 어디 가는지, 칼리는 왜 온 것인지, 여행으로 온 건지, 여권을 보여달라'는 등의 질문을 받았다.


 다른 나라의 공권력을 비난하거나 낮추고 싶지 않지만, 중남미에서는 소매치기 다음으로 조심해야 할 것은 경찰이라는 말도 있다. 흔히 여행자의 돈을 뺏는(?)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이다. 위압감이 장난 아니었다. 경찰 세 명이 둘러싸이니 졸고 있던 나의 눈도 번쩍 떠지게 되었다. 분위기상 여권을 그들 손에 넘어가면 다시 돌려받기 어려울 수도 있겠다 싶었다. (멕시코에서 간혹 경찰이 여권을 보여달라고 한 뒤, 다시 돌려주지 않아 무기한 기다리라고 하는 경우가 있어 일정 금액의 돈을 주고 여권을 돌려받는다는 이야기를 들었던 적이 있다.)


 그래서 모두 사실대로 이야기했다. "이곳에는 주짓수 대회를 참가하기 위해 왔고, 일주일간 머물다가 다음 주에 떠날 예정이다." 그리고 메데진 라우렐레스에서 거주 중인 에어비앤비 숙소 주소도 보여줬다. 정말 다행히도, 경찰들은 문제없이 떠났다. 칼리의 첫인상이 정말 찐했다. 그토록 주변에서 들었던 '위험한 칼리'를 직접 체험하고 있는 듯했다.


 12시간이 소요된 야간 버스를 타고, 칼리에 도착했다. 피곤한 몸을 이끌고 도착한 숙소는 엉망이었다. 내부까지 잿가루가 날리고 있었다. 이게 무슨 일인가 싶었는데, 알고 보니 칼리 북부에 3일 내내 큰 산불이 일어나 내가 도착한 당일에서야 불이 잡혔다고 했다. 그동안 칼리 북부 시내 전체는 잿가루가 날리는 풍경이 연출되었다.


 대회 하루 전날, 계체를 하기 위해 시합장에 들렸다. 이곳에서 혼자 시합을 마쳐야 한다니, 굉장히 외로웠지만 내 여행 자체가 혼자 했던 여행이니만큼 그런 것에 집중하지 않으려고 했다.


 내부는 들어갈 수 없었으나, 내일 대회에 참가하는 인원들이 체중을 재고, 본인 확인을 하는 등의 검사를 거쳤다. 벌써 묘한 긴장감이 돌기 시작했다. 이틀 전부터 제대로 먹은 것이 없으니, 계체도 체급의 1kg이나 더 적게 통과했다.


 돌아오는 길에 사고가 있었나 보다. 퇴근 시간대가 되니 낮과는 다르게 차들이 엄청 많이 보였다. 시합장은 칼리 북부 지역과 차로 약 30분 거리에 있었는데 숙소에 돌아가는 동안에도 '최악의 피지컬과 컨디션으로 시합에 나갈 수 있을까', '이런 상황에서도 도전을 하는 것이 맞을까.' 심히 고민되고 혼란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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