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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페티 Mar 07. 2024

칼리 주짓수 대회 출전 D-day (1/3)

차가운 시합장의 공기

늘 그렇듯 전 날 큰 행사가 있으면 잠을 잘 못 잔다. 야간 버스를 타고 온 피곤함까지 겹쳐서 여러모로 컨디션이 좋지 않았다. 이틀 전부터 생긴 배탈로 그동안 거의 먹지 못하였지만, 시합 전 에너지 보충을 위해 뭔가를 먹어야 했기 때문에 아침에 주문 가능한 배달을 찾아 최대한 건강식 같은 보이는 포케를 주문했다.


 식욕이 없어 거의 먹는 둥 마는 둥 하고 어제 싸두었던 시합장 짐을 다시 한번 챙겼다. 저번 대회에 놓고 갔던 마우스 피스, 도복 한 벌, 띠, 발목과 손가락을 고정할 테이프 그리고 생수 500ml 한 병, 수분 보충에 좋다는 음료도 한 병.


 모두 챙긴 것을 확인하고 우버를 불러 출발했다. 숙소에서 시합장까지의 거리는 약 30분이었다. 가는 동안 아픈 엄지 손가락을 매만지며, 걱정과 긴장이 동시에 되었다. 전날 대진표를 보니, 내 경기는 한 번 지면 끝나는 'single elimination' 방식이었다. 하지만 패배하면 더 이상 기회는 없었던 것이 오히려 마음이 편해졌다. 이 손가락과 발목으로 최소 한 판만 버티면 된다고 생각했으니까.


  경기가 있는 시간보다 약 1시간 30분 정도 일찍 도착했는데, 앞선 시합 일정이 진행되고 있었다. 일단 짐을 내려놓을 관중석으로 올라가 다른 사람들 시합을 구경했다. 시합장의 분위기에 더 떨리기 시작했다.


긴장이 되니 뱃속에선 '꾸르륵'소리를 내며, 신경이 쓰이기 시작했다.


 조금만 이상한 낌새가 있으면 계속 화장실을 다녔는데 못해도 5번은 넘게 왔다 갔다 했다.


만에 하나 콜롬비아 시합장까지 와서 생리적인 현상으로 인해 불상사가 발생하면 세계적인 망신이 될 것만 같았다. 더군다나 모든 시합은 생중계되고, 녹화도 된다.


아마 콜롬비아 뉴스에도 나오지 않을까. 꼬레아노 한 명이 시합장에서...


'신이시여, 아- 제발 그런 일은 없게 해 주세요.'


종교도 없는 놈이 이럴 때만 신을 찾는다.

 

 혼자 긴장하고 있던 찰나에 이곳에서 친해진 친구도 있었다. 나이가 조금 있어 보이는 분이셨는데 관장님과 같이 왔다며 관장님도 소개해주었다. 그 체육관은 이피알레스 (ipiales)라고 하는 에콰도르 국경지역과 맞닿은 도시에 있었다. 그곳에서 약 2주 후 대회가 있어 나에게도 정보를 준다며 whatsapp 번호를 물어봤다. (해외의 카카오톡 기능)


 그렇게 긴장도 풀 겸 모르는 사람들과 이야기하며, 도복으로 갈아입고 몸을 풀기 시작했다. 준비 운동을 하고 있는데 중학생 정도로 보이는 친구들이 나에게 말을 걸어왔다. 나와 스파링을 해보고 싶다고 했다. 모르는 사람과 시합 전에 스파링을 하는 건 특히 나처럼 여기저기 아픈 상태라 더 조심스러웠지만, 상대가 중학생이라 흔쾌히 받아줬다.


 주변에서는 흥미진진하게 바라보고, 같은 체육관에서 온 친구들이 서로 코치를 해주며, "암 트라이 앵글 조심해!", "암바 할 것 같은데 팔을 숨겨!" 등등 천천히 스파링을 하며 몸을 풀었다. 적당히 힘을 빼며 스파링을 하니 끝나지 않을 것 같아 몸이 조금 풀렸다고 생각했을 때 트라이앵글 초크로 '탭(항복)'을 받았다.


 옆에 있던 다른 친구들도 해보자고 올 줄 알았는데 그 친구 한 명과 스파링이 끝나니, 다들 뿔뿔히 흩어져 각자 몸을 풀었다. 그때 당시에는 조금 긴장하고 있던 터라 스파링 하는 것이 살짝 부담스러웠는데 돌이켜보면, 긴장도 풀리고 나에게 정말 감사한 스파링 상대가 되어주었다. 마치 내게 집중하라는 듯, 그 친구를 보내 시합 모드로 바꿔놓았다.


그 친구와 스파링을 하고 나니 엄지 손가락과 발목 근육 테이프(키네시올로지)를 붙여 놓은 것이 모두 뜯어졌다. 시합 도중 떨어지지 않도록 검은색 근육 테이프에 미리 챙겨간 하얀색 테이프를 덧대었다. 손가락을 움직이기만 해도 아팠기 때문에 일단 무조건 고정을 시키는 것이 중요했다.


나는 오늘 시합에서 왼쪽 엄지 손가락과
왼쪽 발목을 쓰지 않고 경기를 풀어나가야 했다.


 대회가 중간중간 어떤 사정이 있는지 멈추었다가 진행하기를 반복하니 원래 예정되어 있던 시합보다 약 20분이 늦어졌다. 떨리는 마음으로 오늘의 게임 플랜에 대해 다시 한번 머릿속으로 되새겼다. 블랙벨트 친구인 Jhonny가 알려준 스탠딩 상황에서의 상대를 끌어오면서 더렉 테이크 다운으로 넘어트리는 것이 목표였다.


 계속 머릿속으로 그 상황을 그렸다. 테이크 다운을 성공하면 일단 50%는 계획대로 되는 것이고, 테이크 다운과 동시에 상대 가드 안에 들어가지 않고, 패스하면 100점짜리 상황인 것이다. 무조건 성공한다는 생각으로 넘어뜨린 이후 패스하는 상황을 그렸다.


 그렇게 많이 익히지 않은 기술이고, 대회를 위해 급하게 준비하다 보니 디테일이 많이 부족했다.


 하지만 그때만큼은 나를 100% 믿었다.

'나는 첫 경기에 분명히 스탠딩 상황에서 서로 힘싸움을 하는 과정에서 내 쪽으로 끌어오며 상대를 더블렉 테이크 다운을 성공시킨다.'

'그러려면 내 오른쪽 무릎은 상대 다리 사이에 위치하며, 왼쪽 무릎은 매트를 쓸면서 올라와 순식간에  상대의 중심을 무너뜨린다.'


  이런 식으로 계속해서 마인드 컨트롤을 했다...

(분량조절 실패로 다음화에 이어집니다.)


+추가

 이 장면은 그냥 아가들이 귀여워서 올려봤습니다.


어딜 가든 시선을 한 몸에 받는 동양인.


 다 중국인이라고 생각할 텐데, 다행히도 도복에 붙여둔 태극기와 그 밑에  'Corea del sur' ('대한민국'을 스페인어로)라고도 써놨으니, 누군가 태극기를 모르더라도 덕분에 국적으로 오해 받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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