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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페티 Mar 11. 2024

칼리 주짓수 대회 출전 D-day (2/3)

두려움을 가득 안고

내 체급의 상대 선수들이 먼저 경기가 있었고, 제발 서브미션으로 끝나지 않고 누가 이기든 5분 내내 힘겨루기를 통해 힘이 빠지길 기도했다. 하지만 늘 그렇듯, 원하는 대로 흘러갈 리가 만무하다. 경기는 고작 3분도 채 되지 않아 서브미션으로 끝이 났다. 경기가 빨리 끝나면 내 순서도 당겨지기 때문에 긴장되었지만 겉으론 최대한 여유로운 '척'을 했다.


 지난 첫 대회에서의 뼈아픈 기억


  경기가 시작하자마자 머리가 뿌옇게 되면서 아무 생각도 없었고, 힘이 들어가질 않았던 경험이 있다. 시합 중에도 긴장이 심해 몸은 얼어있고, 머릿속은 복잡해서 마치 뇌에서 어떤 회로를 끊어버린 것만 같았다.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무기력하게 졌던 경험을, 번 다시는 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또 마인드 컨트롤을 시작했다. 평소에 주짓수를 운동하면서 느꼈던 것들 중 '항상 나와 상대 모두 다치지 않는 것이 최우선이다.' 시합에서 이기려고 상대의 관절을 부러트린다거나 기절시킨다는 생각으로 임하고 싶지 않았다.


 비록 여기저기 다쳐서 내 기량을 100% 발휘할 수 없지만


'나도 안 다치고,
상대방도 다치지 않도록,

체육관에서 스파링 하듯이,
평소처럼 준비한 만큼만 하자.'
라고 생각했다.


 체육관에서 스파링 하듯이만 할 수 있다면, 그 누구와 겨루어도 다 이긴다고 생각했다. 그동안 콜롬비아에서 지내면서 누구보다 열심히 체육관에 나와 아침저녁으로 운동선수처럼 몇 달 생활했던 것을 생각하면, '내 체급에서 나만큼 운동하고, 진심이었던 사람은 없다'라고 어쩌면 스스로 과한 자신감이었을지 모르지만 이렇게 생각하니 멘탈은 회복되었다.


 이 날만큼은 내가 준비했던 모든 것을 쏟아내는 자리다. 그동안 연습했던 대로만 하면 이길 수 있을 것이라 믿었다.

연습은 실전처럼
실전은 연습처럼

 가장 좋아하는 문장이다.


 연습을 실전처럼 했다면, 실전은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그저 연습한 대로 보여주면 되니까.




 그런 마음으로 마우스 피스를 입에 물고, 경기를 준비했다. 이 시합이 있기 한 달 전, 정찬성 선수가 UFC에서 보여준 모습이 정말 인상적이어서 기억에 많이 남는다. 맥스 할로웨이와의 3라운드는 마치 방패를 집어던지고 검 한 자루를 쥐고 싸우는 검투사의 모습이 보였다. 그런 정찬성 선수를 떠올리며, 나도 한 번 최선을 다해 보여줘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리고 첫 경기를 시작했다!


 계속 이미지 트레이닝을 했던 대로 처음 시작하고 더블렉 테이크 다운을 성공했다. 그 과정에서 상대방의 예상치 못한 공격이 있었으나, 어찌어찌 이겨냈다. 테이크 다운을 하고 나니 충돌하면서 오른쪽 눈에 렌즈가 빠졌다. 이것도 이미 첫 대회에서 다 경험해 본 일이었기에 당황하지 않았다. 그저 한쪽 눈을 감고 하면 되니까.


 테이크 다운을 성공하고 상대의 가드를 패스해야 하는데 깃을 잡으려고 하면, 상대가 뜯어내는 바람에 손가락이 너무 아파 그립을 쥘 수조차 없었다. 이 사실을 경기가 시작하고 20초 정도 지난 후 알게 되었다. '왼손을 못 쓰면 서브미션으로 이길 수 없다'라고 판단했다. 그러면 점수로 이겨야 했는데, 이런 손으로 5분은 너무 길었다. 그래서 움직이는 척, 패스를 하려는 척, 시간을 끌다가 얼마 안 남았을 때 패스(점수를 획득하는 행동)를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아드레날린이 부족해 통증은 계속 느껴졌고, 상대방이 밀면 밀리고, 당기면 당겨왔다. 아무것도 할 수 없어 방어를 하는 와중에 움직임이 없다고 느꼈는지 경기 중 심판이 나에게 디스어드벤티지 (Disadventage)를 주었다. 이를 4번 받으면 '실격패' 처리된다.


 일반적인 경기에서 4번까지는 나올 수 없다고 판단했고, 시간을 일부러 지체했다. 그러다가 한쪽 눈으로 빠르게 시계를 보았는데, 1분 30초 정도 남아있었다. 그래서 '지금' 모든 걸 쏟아부어야 할 때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한 순간 상대의 가드가 리며, 공격하는 타이밍에 맞추어 패스에 성공했고, 1분 동안 9점을 추가하여, 처음 테이크 다운 2점을 포함해 11-1로 이겼다. (1점을 빼앗긴 건 디스어드밴티지로 인한 건이었다.)


 상대방의 입장에서는 얄미워 보일 수도 있을 것 같다. 테이크 다운 이후 시간을 끌다가 한 번에 패스를 하고 이겼으니 말이다. 미안했지만 그 자리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그것뿐이었다.


 시합 3일 전 손가락을 다치고, 그동안 운동은커녕 움직이지도 않았으니, 이렇게 움직이면 얼마나 더 아플지 상상도 못 했는데 막상 시합에 들어가니 첫 경기는 고통에 거의 왼손을 못 쓰고 이겼다.


 위 사진만 보아도, 왼손으로 보통 상대 목 주변 깃을 잡거나 공격할 부분을 찾느라 분주해야 하지만, 손가락이 아파서 그저 바닥에 깔리지 않도록 어깨를 감싸고만 있었다.


 그렇게 첫 경기를 나도 모르게 이겨버렸다..


(+ 추가적으로 이 친구와 경기를 끝난 후, sns를 주고받았는데, 지난달 2월 보고타에서 열린 주짓수 시합에서 우승을 했다는 소식이 올라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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