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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페티 Mar 18. 2024

두 번째 주짓수 대회를 마치고 난 후기

Surprise, surprise!

경기가 끝난 후에 승리의 기쁨보다는 그저 남의 자리를 빼앗은 기분이 들었다. 그동안 크고 작은 부상과 운동했던 모습들이 찰나로 스쳐갔다. 그리고 시합장에 들어가는 것은 정말 무섭고 두려웠다. 특히 인상이 센 친구들을 보면 기세가 많이 눌렸다.


 이번 대회에 나 홀로 10시간 야간 버스를 타고,  코치를 해줄 사람도 없었다. 그리고 아픈 몸을 끌고 경기를 다행히 아무 일 없이 치렀다는 것이 감사했다.




 한국에서 운동을 하면서도 대회에 참가할 기회는 굉장히 많았다. 주변 친구들이 시합을 같이 나가자고 권유할 때에는 항상 이렇게 대답했다.

"나 같은 놈이 무슨 대회야.
그런 건 체육관에서 잘하는 사람들이나 나가는 거지."


 하지만 주짓수 도복 한 벌을 챙겨 남미 여행을 하면서 스스로 많이 변해있었다. 아마 남미 여행 없이 한국에서만 운동을 했다면 지금까지 이 운동을 했을까, 또 내 한계를 스스로 정해두고 시합을 한 번이라도 나갈 생각을 했을까.


콜롬비아에 있었기 때문에, 남미 여행을 시작한 덕분에 할 수 있었던 도전이라고 생각한다.


우연히 콜롬비아에 6개월을 지내게 되어

좋은 체육관에 관장님과 팀원들을 만나게 되어

열심히 매일같이 체육관에서 운동하고 다치는 게 일이었던

나에게도 그동안의 땀방울이 헛되지 않았구나 느꼈다.




이 결과를 어떻게 말해야 할까 고민을 하던 중 항상 어울려 놀던 미국인 친구들이 있는 단톡방에 먼저 메시지를 보냈다.


Surprise, surprise motherf*ck*r
The king is back!

 

맥그리거 vs 디아즈와의 2차전 경기가 끝나고 코너가 한 말을 따라 했다. 그리곤 경기 결과를 사진을 보냈다.


 시합장에서 친해진 Omar와 떠나기 전에 사진 한 방을 찍었다. 서로 연락처를 주고받고, 손가락이 안 좋은 나에게 어떤 약을 구입해야 되는지, 하루 몇 번을 복용해야 하는지 친절히 설명해 주었다.


 Omar는 에콰도르 국경과 인접한 이피알레스(ipiales) 지역에서 본인 체육관 관장님과 같이 왔다고 했다. 그 관장님은 이피알레스 지역에서 다음 달에 시합이 있다며 정보를 전달해 주었다. 작은 대회 같았는데 너무 멀리 떨어져 있어서 갈 엄두가 나질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서로 "Hasta luego."(다음에 봐.)라며 인사했다.


 병원에 방문하지는 않았지만, 간호사 친구가 점심시간에 휴대용 치료기기를 가지고 나와 종종 전기 자극을 주는 치료를 받기도 했다. 통증은 점점 줄어들고 나아지고 있었다.




 시합이 모두 끝나고 가장 먼저 생각나던 것은 그동안 가르쳐주었던 관장님들이었다. 한국에서 운동했을 때부터 남미 총 11곳의 체육관을 돌아다니며 운동했던 관장님들이 생각났다. 그래서 그중 sns에 팔로우되어 있는 몇몇 관장님께 '가르쳐주셔서 감사하다'는 말을 전했다. 그리고 아래와 같은 대답을 받기도 했다.


축하해!
우리를 방문해 줘서 고마워,
리마에 금방 다시 오기를 기다릴게!


시간이 한국시간으로 바뀌었지만, 콜롬비아 시차 +14시간을 하면 저녁이었다.

 정말 감사하게도 많은 친구들의 축하를 받았다. 이겼을 때보다 경기가 모두 끝난 저녁, 축하받았을 때가 더 기뻤던 것 같다. '내게도 이런 날이 있구나' 싶으면서도 뭔가 어색했다. 축하주라도 한 잔 마셔야 하는데 속이 좋지 않아서 그러진 못했다.


 사실 이번 대회가 끝나고, 다음 주에 있는 세비야 지역에서 열리는 Sevilla open bjj 대회에 일주일 간격으로 참가하는 것이 원래 계획이었다. 이번 대회 시합 당일이 다음 주 세비야 대회의 참가 신청 마지막 날이었다. 하지만 이미 손가락은 쓰지 못할 것 같았고, 1등을 하고 나니 쉬어도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고심 끝에 세비야 참가신청은 하지 않았다. 아마 만족스러운 성적을 거두지 못했다면, 이를 악물고 다시 도전했을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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