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경기를 어렵사리 이기고 왔는데 끝나자마자 손가락에 통증이 심했다. 아무렇지 않은 척, 덤덤하게 호흡을 가다듬었는데, 손은 떨고 있었다. 이틀간 밥도 제대로 못 먹어서 힘은 없지만 오히려 몸은 가벼웠다.
예상치 못한 승리에 어안이 벙벙했지만, 약 20분 뒤에 또 시합이 있어 테이핑이 잘 붙어있는지 점검하고, 다음 경기도 천천히 스파링 하듯이만 하면 된다고 속으로 읊조렸다.
이 사진을 보면 스스로 조금 안쓰럽다는 생각이 든다. 왼 손과 왼 발을 쓰지 못해서 본래 오른손잡이임에도 불구하고 사우스포(Southpaw) 자세로 있을 수밖에 없었다.
첫 경기와 마찬가지로 더블렉 테이크다운을 해보려고 했는데 이 친구도 이미 내 경기를 봤을 터, 알고 있는 걸 당해줄 리가 없다. 그래서 시도했다가 실패해서 가드로 포지션을 바꿨다.
손가락 때문에 포지션 싸움으로 점수를 얻으려고 계획을 세웠으나, 가드에서는 공격 옵션이 많아지기 때문에 최대한 할 수 있는 기술을 써서 잡아두고, 공격을 하려고 애썼다. 한 번의 경기를 마쳐서 그런지 아드레날린 덕분에 결승전에서는 손가락이 아픈데도 참을만했다. 그래서 이번엔 서브미션을 노리기도 했다.
*사우스포 : 야구에서 기원된 단어로, 조명이 없던 예전 구장들은 오후 태양의 눈부심을 피하기 위해 홈플레이트가 서향으로 배치되었다. 그 결과, 왼손 투수의 팔(paw)이 남쪽(south)에 있게 되어 사우스포라고 불리게 되었다. -[간단히] 야구나 권투에서 왼손잡이 선수를 칭함.
첫 번째 시도했던 서브미션은 트라이앵글 초크였다. 이미 상대방의 머리 위치가 많이 빠져있는 상태라서 제대로 걸리지는 않았다. 손가락이 정말 아팠는데도 한 번의 탭만 받으면 빨리 끝낼 수 있다는 생각에 억지로 시도했었다.
앞서 말했듯이, 가드에서 공격할 옵션이 더 많기 때문에 여러 기술을 시도했는데 그 과정에서 심판은 상대방에게 움직임이 없다고 디스어드밴티지(disadvantage)를 주어 1점을 먼저 얻었다. 전판은 내가 받고, 이번 판은 상대방이 받았다. 그렇게 엎치락 뒤치락을 반복하던 중 상대의 백 포지션을 잡기도 했다.
약 1분 20초가 남은 상황에서 점수차는 이미 9-0이었다. 사실 이 상태에서 마운트 포지션으로 올라가기 위해 움직이는데 갑자기 심판이 정지시켰다. 매트 가장자리여서자세 그대로 매트 중앙으로 이동하라는 지시였다.
이런 상황에서 당연히 시간이 멈추는 줄 알았는데 시간은 계속 흐르고 있었다. 중앙으로 옮겨 다시 시작했을 때는 이미 40초밖에 남지 않은 상황이라 그대로 버티기만 하면 이기는 것이었다. 힘은 다 빠졌고, 시간이 줄어들수록 상대방의 저항을 거세졌다. 이때 기술에 걸려 탭을 치기라도 한다면 그대로 경기가 지는 것이어서 그 짧은 시간 동안 방어하려고 애를 썼다.
다행히 방어는 성공했고, 경기는 그대로 종료되어 최종 9-0으로 끝이 났다. 9점은 상대방 디스어드밴티지로 +1점, 2번의 서브미션 시도로 인한 어드밴티지 +2점, 가드패스 +2점, 백 포지션 +4점이었다.
경기가 다 끝나고 매트에서 내려오자마자 손에서 통증이 어마어마했다. 시합장 매트에서 내려와 바닥에 주저앉아버렸다. 시합 중에 느끼지 못한 고통을 미뤄두었다가 한 번에 다 느껴지는 듯했다. 왼손을 부여잡고 쓰러져있으니 다른 사람들이 신기하게 쳐다봤다. 그렇게 몇 분을 땅바닥에 앉아 있다가 조금 진정이 되니 정신이 들었다.
이제 경기는 더 없고, 끝이 났구나.
여러 감정이 교차했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결과라 마치 다른 사람의 메달을 빼앗아 온 느낌까지 들었다.
늘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있다. '1등은 정말 하기 어려운 것이라고, 압도적인 실력 차이가 있어야 1등을 하는 것이고 2, 3등만 해도 잘한 거야.'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오늘은 내가 그 자리에 서있었다.
꿈에서만 서볼 수 있었던 금메달 자리에 있으니 꽤나 어색해서 메달만 만지작 거렸다. '시합 당일 오전까지만 해도 혹여나 손가락이나 발목이 꺾여 상태가 더 심해지진 않을까. 속은 괜찮을까. 아무것도 먹지 못했는데 시합은 과연 할 수 있을까.' 걱정하고, 고민 속에 자책하던 순간이 떠오르고, 그동안의 크고 작은 부상과 운동했던 모습이 잠시 스쳐 지나갔다.
택시를 타고 숙소로 돌아가던 중, 가방에 챙겨놓았던 금메달을 다시 꺼내보았다. 그저 신기할 따름이었다.
'나에게도 이런 금색 메달이 오는 날이 있구나.'
경기가 있던 날이 한국은 추석 연휴였다. 콜롬비아와 한국의 시차로 한국은 이른 새벽이었으나, 기쁜 소식을 가족들에게 알렸다.
"다 이기고 왔어."
그리고 찍어둔 금메달 사진을 보여주었다.
시합이 끝나도 테이프 접착력 때문에 아파서 못 떼고 있다가 숙소로 돌아가기 전에 떼어냈다. 이 멍든 손을 보니, 마치 금메달과 내 손을 교환한 것만 같았다. 지금이야 웃으면서 추억하지만, 시합이 끝나고 한동안 리모컨 버튼조차 누를 수 없는 엄지손가락이었다.
그리고 이때는 몰랐지만 한국에 돌아와 X-ray와 mri 검사를 해보니, 엄지 손가락 골절과 부분 인대 파열이라고 했다.
'골절이라서 그렇게 아팠던 거구나.. 나름 참을만했던 것 같기도 한데...'
골절이면 이만큼 아픈 것이구나 알게 되었고, 그래서 그때 간호사 친구가 절대 시합에 나가면 안 되고, 최소 열흘은 고정시켜놔야 한다고 했구나.. 그때는 몰랐다.
한국에 와서야 깁스를 하고, 인대 파열이 심하면 수술도 해야 한다고 했는데 다행히 수술까지 가지는 않았다. 그렇게 나의 두 번째 시합은 잘 마무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