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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페티 Feb 29. 2024

남미여행 중 버스 사고

액땜일까, 날벼락일까?

때는 보고타 주짓수 대회 이틀 전


콜롬비아 메데진에서 보고타는 버스로 대략 12시간이 소요된다. 시합 전날 계체도 해야 하기 때문에 미리 버스를 예매하고, 친구 한 명과 같이 가기로 했다. 나 포함 총 일곱 명이 가게 되었는데 4명은 비행기로, 관장님은 오토바이로, 나와 친구는 버스로 이동했다. 버스와 비행기의 가격차이는 대략 3배 정도 된다. 버스비 약 3만 원, 비행기는 8-9만 원 정도 했었다.


 콜롬비아 현지인 친구들도 비행기가 저렴하다고 하지만 그 돈도 조금 아끼고 싶었다. 불편해도 비행기 50분보다 야간 버스 12시간을 택했다. 남미 여행을 하면서 페루, 볼리비아, 아르헨티나, 브라질 등의 국가에서 버스를 애용했는데 장거리를 탈 때엔 세미 까마 (Semi-cama), 까마 (cama) 좌석이 있다. 까마는 스페인어로 '침대'를 뜻하는데, 말 그대로 많이 눕혀지는 좌석이고 공간이 여유로워서 12시간 이상을 타고 이동해도 크게 불편함이 없었다.


 그래서 콜롬비아에 와서도 이런 좌석을 찾는데 유일하게 콜롬비아만 없었다. 콜롬비아에서 보고타-메데진, 메데진-칼리를 왕복했었는데 까마 좌석을 물어봤지만 찾을 수 없었다. 일반 버스를 타고 12시간 가면 꽤나 불편하고 피곤해진다.


 Jose라는 친구가 나름 고급 버스에 속한다며 'Bolivariano' 버스 회사를 추천해 주어 미리 예매했다. 가격은 대부분 비슷했는데 약간 더 비쌌던 걸로 기억한다. 고급 버스라지만 다른 버스들과 비슷해 보였고, 남미에선 늘 그렇듯 정시 출발은 기대도 하지 않는 편이 좋다.


 예상으로는 메데진 북부 터미널에서 밤 10시 출발하여 보고타 터미널에 오전 10시에 도착 예정이었다. 그래서 비행기를 타고 오는 인원들보다 보고타에 먼저 도착하니 미리 체크인을 하겠다고 했는데, 여기서 일이 발생했다.


 서서히 날이 밝아지고 있을 즈음, 버스가 멈췄다. 자다 깨다를 반복하는데, 남미 여행하면서 버스가 여러 이유들로 인해 간혹 멈췄다가 가는 경우가 있다. 그래서 특별한 걱정 없이 잠을 청하고 있었는데, 이번 정차는 꽤나 오래 걸렸다. 정차한 지 1시간이 지나자 사람들이 하나둘 잠에서 깨어 어수선한 분위기가 되었다. 잠도 더 이상 오지 않을 때쯤 밖을 한 번 나가보았다.


  어딘지도 모르는 곳에 차는 멈추었다. 이른 아침이라 주변이 굉장히 고요했지만 뒤에서 사람들 말소리가 들려서 가보았다.


 말소리가 들리는 버스 뒤로 가보니 한눈에 봐도 오일이 새는듯했고, 새는 오일을 다시 채워 넣으려고 했지만 안 되는 듯 바닥이 흥건했다. 궁금하기도 해서 버스 기사님께 부족한 스페인어로 어떤 일이 있는지 물어보니, 대략 알아듣기로는 이 버스는 운행이 불가하기 때문에, 다른 버스가 와서 승객들을 태워서 이동할 것이라고 기다리라고 했다.




 스페인어에 'Ahorita'라고 하는 단어가 있다. 사전적 의미는 '곧, 당장, 즉시'인데, 특히 멕시코에서는 '거절'하거나 '나중에'라는 의미로 쓰인다. 콜롬비아도 비슷한 듯했다. "응, 다음 버스는 금방 와."라고 했지만 본래 그 의미는 "언제 올지는 나도 모르지만, 언젠간 와!"라는 말이다. 본래의 단어 뜻과 다른 의미를 이미 멕시코에서 배웠기 때문에 최소 1~2시간은 걸리겠구나 싶었다.


 보고타 도착하기 약 2시간 전에 이런 일이 있어서 꽤나 막막했다. 언제 다시 버스가 올지도 모르고, 미리 예약했던 체크인 시간은 늦을 것 같고, 게다가 미리 한국 반찬가게에 김치 주문을 해두었던 터라 배송받는 일정도 늦어질 것 같아 마음은 조급해졌다.


 그렇게 한 2시간이 지났을까. 도로에서 흔히 보던 구난 차량이 아닌 정말 큰 차량이 왔다. 버스를 끌어가려면 이 정도는 되어야 하는구나 싶었다. 구난 차량이 와서 천천히 버스와 연결할 때쯤, 총 3시간이 넘어서야 다음 버스는 도착했다.


 이미 사람들이 많이 차있는 버스였는데 그래도 목적지까지 갈 수 있다는 것에 감사했다. 이런 버스 사고가 난 걸 SNS에 실시간으로 올리니 콜롬비아 현지인 친구 두 명이 메시지를 보내왔다. 한 친구는 '평생을 콜롬비아에서 버스를 타고 다녔지만, 그런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며 하필 너한테 그런 일이 났다'며 웃어넘겼다. 또 다른 한 친 구는 'This is Colombia.'라는 짧은 문장을 보냈다.




 한국이 아니기 때문에 이런 불편함은 감수해야 한다. 아마 한국이었으면 승객들이 시간 지연 문제로 보상을 요청하지 않았을까? 물론 승객들 중 일부는 기사님에게 화를 내기도 했지만 대부분은 특별히 문제 삼지 않았다. 물론 흔하게 발생하는 일은 아니지만 남미여행을 하다가 이런 일이 있어도 천천히, 여유로운 마음을 가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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