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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말랑한 마시멜로우 Mar 20. 2024

엄마, 근데 왜 내 태명이 '여수'지?

얼마 전 아들 녀석이 묻는다.


"엄마, 근데 왜 내 태명이 여수지?"

 "잉? 그거? 19금인데?"

"아이~ 이제 나도 성인인데 뭐~"


그렇다. 그 녀석 태명은 여수다.     

첫째가 태어나고 우린 잠깐 주말부부를 했었다.

신랑은 광주에서 근무하고, 내가 한동안 여수에서 기간제 교사로 일했다.

사실 우린, 너무 어렵게 첫아이(떡례)를 얻었기 때문에 둘째는 생각도 않고 조심성이라곤 1도 없이 막(?) 살았다.

어느 날, 그것도 주중에, 기별도 없이, 그가 불쑥 여수에 찾아왔고 그날 그 녀석이 극적으로 잉태되었다.

‘애기가 생길라믄 한양 간 님이 갑자기 찾아온다고 안 하냐? 엄마 말씀이었다.

아무튼 그 기념으로 그 녀석 태명은 ‘여수’가 되었다.


그 녀석은 시골동네 산부인과에서 아주 normal한 사이즈로 태어났다.

그러나 태어나는 과정은 normal과는 좀 거리가 있다.

그 녀석 탄생 비화 좀 들어보시라.


나는 첫째 때와 달리 특별한 이상 증상이 없어 시골 산부인과에서 정기검진을 받았.

40대 후반정도로 보이는 남자 원장은 주책맞아도 너무 주책맞았다.(지금 같아선 약간 고소감?)

산모를 뉘어 다리까지 벌리게 해 놓고선 진료는 딴전이고 쓸데없는 말을 조잘조잘, 심지어 사적인 얘기까지 일장연설 늘어놓기 바뻤다.

딱히 믿음이 가진 않았지만 다른 병원으로 옮기기도 좀 뭐해서 그냥 그곳에서 출산하기로 맘먹었다.

나는 첫째를 제왕절개로 낳았기 때문에 둘째도 당연히 수술날짜를 잡아 출산해야 했다.


제왕절개의 좋은 점은 태어날 일시를 산모가 정할 수 있다는 점이다.

나는 친정엄마에게 부탁해 거액의 돈을 들여가며 좋은 사주를 받아 의사선생에게 전달했다.


"꼭 이날, 이 시간에 수술해 주세요"


의사는 그날도 내 말에 토를 달며 주절주절 여러 사설을 늘여놓더니 분명히 o. k라고 대답했다.

그리고 수술 당일, 나는 모든 출산준비를 마치고 병원에 도착했는데, 간호사가 내 수술일정이 잡혀있지 않다며 고개를 몇 번이나 갸우뚱하는 것이다.

나는 의사선생에게 '도대체 어찌 된 일이냐, 오늘 수술하기로 하지 않았느냐' 볼멘소리로 따져 물었다.


“어? 내가 체크를 안 했나 보네? 다른 환자 사이에 껴서 걍 합시다" 별스럽지 않는 듯  대꾸했다.

   

'이 무슨 황당한 시추에이션인가?' 당황도 되고 화도 났지만 어쩌겠는가?

별 수 없이 내가 원하는 시간대에 맟추어 수술해 줄 수 있다는 의사말만 믿고 내 차례를 기다렸다.


낮 12시부터 1시 사이에 이 아이가 태어나야 재물운, 명예운, 결혼운, 건강운, 운이란 운은 다 갖고 팔자 좋게 살 수 있는데 어찌 된 일인지 1시가 다 되어가도 그 의사선생은 좀처럼 수술실에서 나오질 않았다.

'앞 환자의 상태가 생각보다 심각해서 시간이 많이 지체되는 것 같다'는 간호사의 중계방송이 이어지는 가운데,  정확히 12시 30분, 그러니까 딱 30분 남겨놓고 그 의사 놈이 밖으로 주섬주섬 나왔다.

나는 환자용 이동 침대도 내팽개친 채 미처 정리도 안 된 수술실로 뛰쳐 들어가 수술대 위에 벌러덩 누워버렸다.      


“빨리 수술해 주세요~ 어떻게든 1시까지 애기가 나와야 해요~“     

  

그렇게 해서 그 녀석은 30분 만에 정신없이 이 세상에 나왔고 정확히 12시 58분에 ‘응애~’ 하고 첫울음을 울 수 있었다.

다행히 별 탈이 없었으니 망정이니 성질 같아서는 그 개념 없는 의사 놈을 당장이라도 고소하고 싶은 마음 굴뚝같았다.  (지금으로선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런 어처구니없는 출생 비화를 가지고 태어난 그 녀석은 우리 집 둘째이자 막내로 뒤늦게 터를 잡았고, 2년 먼저 안착한 누나의 사랑과 견제를 받으며 무럭무럭 잘 자라 주었다.      


그 녀석은 우리에게 뜻밖의 선물 같은 존재다.

항상 덤으로 얻은 듯 과분하고 뿌듯해 넘치는 사랑을 아낌없이 주었다.

그래서인지 자존감도 높고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긍정적이고 매사 자신만만하다.

지금은 대학생이 되어 기계공학도의 길을 가고 있는 녀석, 부모로서 바람이 있다면 자신의 전공을 잘 살려 안정된 미래를 살아가길 희망하지만, 고것은 ‘탱이’ 이름만큼이나 어디로 탱탱 튈지 모르는 녀석이다.

그러나 나는 그 녀석이 어디로 튀어 어떤 삶을 어떻게 살아가든 항상 응원하고 지지할 것이다(리얼리?)  


여수 밤바다의 낭만을 가득 품고 태어난 울 아들 여수탱이!

네가 재수 없는 관종이면 어떻고 키 작은 바람둥이면 어떠냐?

이 엄마 눈에는 너만큼 멋지고 간지 나는 남자를 지금껏 본 적이 없다.

어깨 쭈욱 펴고 엄마가 너에게 선물해 준 액자 속 글귀처럼   

   

"탱이! 내일을 향해 달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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