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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말랑한 마시멜로우 Jul 15. 2024

소확행 배틀

사진: 우리 아파트 앞 천변 


우리 아파트 앞에는 천이 흐르는 산책길이 길고 예쁘게 나 있다.

이사 올 때만 해도 이곳은 구불구불 다듬어지지 않고 가끔 냄새까지 올라와 별 볼 일 없는 천변이었다.  

하지만 동네 주민들의 지속적인 요구와 구청의 노력으로 지금우리 아파트 자랑거리 중 하나가 되었다.

자전거길과 트레킹길이 만들어졌고, 전문가의 손을 빌렸는지 푸른 잔디와 어여쁜 꽃들이 옹기종기 모여 살며 마실 나온 동네 사람들을 반긴다.

특히, 천변과 도로 사이에 심어져 있는 작은 벚꽃나무가 10년이 넘는 세월을 거쳐내며 튼실하고 풍성한 벚꽃군락을 만들어 제법 장관이다.

봄이 되면 택시기사님들이 우리 지역 제일 손꼽히는 벚꽃길로 이곳을 안내한다는 소문과 함께, 실제로 벚꽃철이 되면 관광객이 넘쳐나 주민으로서 흐뭇하기 그지없다. (아파트 가격도 좀 오르려나?ㅎ)

 

오랜만에 집에 내려온 딸내미와 든든한 저녁식사 후 천변 산책길에 나섰다.

꽃구경, 사람구경, 강아지 구경, 구경이란 구경은 뭐든 다 좋아하는 우리 모녀는 신이 났다.

그간의 일상을 얘기하고, 엄마 겸 선배교사로서 상담도 해주고, 남자 없는 딸내미에게 남자 꼬시는 노하우(?)를 전수해 가며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걸었다.


그러다 딸내미가 제안 하나를 한다.     


“엄마~ 우리 소확행 배틀 한번 하까?”     

소확행 배틀? 좋아~ 그럼 먼저 규칙부터 정하자 “  

   

첫째. 대확행은 절대 안 됨. 반드시 소확행이어야 함.

둘째. 디테일이 살아 있어야 함

셋째. 참신하고 웃기면 더 좋음.     


나는 바로 핸드폰 녹음버튼을 눌렀다. (혹, 잊어버릴까 봐~ 브런치에 써먹을 수도 있으니까.)    

 

자, 그럼.... 시~이~자~악~


엄마: 내 브런치 글에 조회수, 라이킷이 점점 더 올라가고 응원 댓글이 많이 달렸을 때. 특히, 글을 참 잘 쓴다는 칭찬이 있을 때.

: 자다가 눈을 떴는데, 다시 자도 되는 날이라는 것을 알았을 때. (출근 안 하는 날, '아~ 더 자도 되겠다~')


엄마: 넷**스에 보고 싶은 영화나 드라마가 업데이트되거나 볼 만한 것이 한참 남아있을 때.

: 꼭 보고 싶었던 영화를 누군가와 함께 보고 그 영화에 대한 감상을 나눌 때.


엄마: 말재간에 주변사람들이 빵~ 터질  때. '하여간 너는 웃기고 재밌어~' 때.

: 친구들이 내가 말만 하면 ’ 넌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해? 왜 그렇게 말을 재밌게 해?‘ 감탄할  때. (그 엄마에 그 딸)


엄마: 학부모가 문자로 '선생님, 연락 좀 주세요' 해서, 너~무 긴장하고 전화했는데 '선생님 oo이 뭐 좀 챙겨주세요'라는 의외의 쉬운 부탁을 했을 때.

: 학교에서 공문을 올렸는데 교장선생님까지 수정 없이 쭈욱 결재가 완료되었을 때.('결재자에 의해 수정되었습니다' 란 말이 안 뜰 때.)


엄마: 1교시 수업이 없는 날, 달달한 봉다리 커피 한 잔 책상 위에 놓고 컴퓨터 모니터를 보며 한 모금 딱 들이켰을 때.

: 점심 먹고 졸릴 즈음 시원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쭈욱 들이킬 때.


엄마: 아빠랑 베트남 다낭에서 사 온 예쁜 맥주잔에 맥주를 따르고 오징어땅콩과 함께 술이 술술 잘 넘어갈 때.

: 내가 좋아하는 꼬막을 엄마가 삶아주면 아빠가 하나씩 까주고 나는 날름날름 주어 먹을 때


엄마: 금요일 퇴근하고 외가 식구들 만나러 74번 버스를 탔을 때. (막상 만나면,, 노인네들(ㅎ) 시중들어야 하니 짜증 나지만ㅎ)

: 길에서 뚱땅뚱땅 신나게 산책하는 강아지와 눈이 마주쳤을 때.


엄마: 이모 가게가 있는 매일시장의 상인들이 엄마를 알아보고 '오매~ 선생님 왔소?' 반길 때.

: 문득 하늘을 봤는데 구름이 선명하게 풍선처럼 떠 있을 때.


엄마: 천변 산책하다 에어로빅 시간과 딱 맞아 장윤정의 '사랑아'에 맞춰 신나게 몸을 흔들고 돌아올 때.

: 귀엽고 예쁜 스티커가 생각보다 싸서 득탬하고 내 다이어리에 붙여놓을 때.


엄마: 구제의류에서 구입한 옷을 주변 사람들이 예쁘다며 비싸 보인다 할 때.

: 내가 입은 옷을 ’와~ 이거 어디서 샀어? 세련되 보인다~' 며 따라 살려고 할 때 (그 엄마에 그 딸)


엄마: 아빠가 매일 자동차로 출근시켜 주면서  '오늘도 덜렁대지 말고 잘하고 오소~' 잔소리를 할 때.

: 엄마랑 ’ 나는 솔로‘ 보면서 출연자 뒷담화를 신나게 할 때


엄마: 술모임에서 내가 만 쏘맥을 시원하게 원샷하고 알딸딸하게 취해 적당히 진상 짓 할 때.

: 친구들이랑 여행 가서 몸 사리지 않고 맘껏 술 먹고 완전 취할 때. (그 엄마에 그 딸)


엄마: 가 차려놓은 밥상을 보고 가족들이 “와~맛있겠다 ‘ 눈을 동그랗게 뜨고 리엑션을 크게 해 줄 때.

: 내가 소개한 맛집이 반응이 좋아 지인들이 다시 그 집을 방문했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


엄마: 저녁식사 후 샤워를 하고 안방침대에 대자로 누워 '전원일기' 재방을 보다 스르르 잠이 들 때.

: 엄마랑 목욕탕 가서 뜨뜻하게 몸을 지지고 등에 있는 때를 빡빡 밀어 내 피부가 보드라워졌을 때.


산책길이 끝나가자 난 딸내미에게 배틀휴전을 제안했다.


" 딸아~ 오늘은 무승부로 하고 다음에 2탄으로 붙자~."


딸내미도 좋다며, 앞으론 항상 소확행을 생각해 놔야 겠다고 말한다.

그리고 덧붙여 내게 묻는다.


" 근데 엄마~.엄마는  행복을 뭐라고  생각해?"


" 행복? 글쎄,,, 음,,, 행복은,,, 나 자신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살다 보면 느껴지는 만족감 같은거 아닐까?  내가 키가 작든, 못생겼든, 가난하든, 능력이 부족하든, 이 정도면 'That's OK'라고 말할 수 있는 용기와 자신감. 그 속에서 나오는 흐뭇한 감정? 에이~ 나도 모르겄다. 참 어려운 말이긴 해 ㅎㅎ"


" 그럼 대확행은?"


" 오매~ 어려운 질문만 허네~ 점이 모여 선이 되듯, 소확행이 모여 대확행이 되는 것 아닐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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