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에게만 살짝 알려주는 베네치아 베이스캠프
베네치아를 여행하다 보면 수많은 인파와 마주칠 수밖에 없다. 때때로 목적지를 향해 가다 보면 좁디좁은 골목길을 만나는데 그때는 관광객들끼리 끼여서 움직이는 상황마저 연출된다(이때 소지품 조심은 필수!). 심지어 유명한 베네치아 카니발 기간이라도 겹치는 때라면 유럽 각지의 관광객들은 물론이고, 이탈리아 각지에서도 관광객들이 몰려 베네치아는 도시 전체가 마치 시장통이라도 되어버린다. 더구나 베네치아 관광의 중심지인 산 마르코 대성당 광장에는 카니발 행사 무대가 마련되다 보니 카니발 참가, 구경꾼부터 당일치기 베네치아 단체 관광객까지 정말 발 디딛일 틈이 없어진다. 베네치아 카니발을 몸소 체험하고 먼 곳에서부터 베네치아에 왔지만, 걷다 보면 '이건 아니야....'를 외치는 나를 발견하곤 한다.
나 같은 소심하고, 소소한 것을 좋아하는 나 홀로 여행자들에게 아런 분위기는 익숙지 않다. 물론 그곳마저도 인파에 점령당하는 경우가 종종 있지만, 많은 사람들은 이곳의 입구조차 잘 모르는 경우가 많기에 인파에서 도망쳐 나만 알고 싶었던 베네치아 아지트로 향한다. 산 마르코 대성당 광장에서 카페 플로리안이 위치한 회랑을 따라 쭉 내려가면 회랑의 끝이 보이고 샤넬과 디오르 매장이 보이는데 그 사잇길을 따라 쭉 걸어간다. 이 주위에 명품 매장이 많기 때문에 광장의 인파는 이곳까지 계속된다. 조금만 더 인내심을 가지고 쭈욱 길을 걸어가다 보면 좌측에 루이뷔통 매장이 보이고 그 앞 빨간색 표지판이 나를 반긴다.
자, 여기까지 왔다면 다 온 것이다. 조금만 더 믿음을 가지고 움직여보자. 막상 빨간색 표지판을 끼고 골목을 걷다 보면 '우중충하고 사람도 많지 않은 이 골목에 무엇이 있을까'하는 의심이 들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를 믿고 조금 더 발걸음을 움직여보자. 그렇게 골목을 들어가다 보면 '여기를 내가 들어가도 될까?' 하는 출입구가 보인다. 그리고 베네치아 비엔날레 사무실이라는 표시가 얼핏 보인다. 그리고 그곳을 향해 과감하게 들어가 보자.
그렇게 도착한 곳은 레스토랑 Ombra del Leone. 잘 모르는 이탈리아어를 번역해보자면 사자의 그림자(?, 전혀 정확하지 않다.) 정도 될 것 같은데, 신기하게도 이곳의 입구는 운하를 바라보는 테라스 쪽 정문과 베네치아 비엔날레 사무실, 전시공간과 공유되는 입구 두 군데가 있다. 테라스 쪽 입구는 골목 끝까지 돌아가야 하기 때문에 잘 보이지도 않을 뿐더러 운하를 지나치다 봐도 입구보단 테라스와 매장을 연결하는 입구로 이해하기 십상이다. 다른 쪽 입구는 베네치아 비엔날레 사무실과 입구를 공유하다 보니 잘 모르는 관광객들에게는 이곳이 익숙지 않을 터이다. 사실 이렇게 미로 속에(?) 숨겨진 입구 덕택에 이곳은 넘처나는 인파를 피해 숨어들어 에스프레소 한 잔을 마시는 나의 베이스캠프가 되곤 한다. 아마 이러한 입구를 만든 것이 이 가게의 영업전략(?) 인지도 모르겠다. 트립어드바이저 사이트에 나오는 이 가게의 소개에는 '우리 가게는 대운하가 보이는 멋진 뷰, 군중들에게서 떨어진 매력적인 오아시스 같은 공간'이라는 표현이 등장하는 것으로 봐서는 확실히 내 짐작이 맞는 것 같다.
이 식당과 베네치아 비엔날레 사무실과 무슨 연관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얼핏 보면 베네치아 비엔날레 관계자들만 드나들 수 있는 공간처럼 보여 발걸음이 멈칫한다. 하지만 걱정은 마시라. 진짜 일반 식당이니까. 나 또한 베네치아를 떠도는 관광객임에도 그 어마어마한 인파에 지쳐 휴식이 필요할 때 이곳으로 도망치고는 한다. 이곳에서의 에스프레소 한 잔과 대운하를 가로질러 보이는 살루테 성당의 뷰가 너무나도 매력적이니까. 구글 리뷰에서 한국인 리뷰는 2개 정도, 트립어드바이저에서는 한국어 리뷰가 없고, 대충 보기에도 영문으로 작성한 한국인 리뷰는 거의 없는듯하다. 음, 이 정도면 나만 알고 싶었던 베네치아의 아지트로 충분하겠지. 해가 넘어갈 무렵 하루 동안 인파를 헤치며 베네치아를 뽈뽈거리고 돌아다녔던 여독은 이곳에서의 뷰와 함께 풀리곤 한다. 베네치아에 넉넉히 머무시는 동안 인파를 피해 조용히 여행 계획을 세우고 싶으시다면 한 번쯤 찾아보는 것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