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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성혁 Jul 08. 2022

어느 과학자의 화형과 아주 살짝 관련 있는 커피 이야기

잔인한 판결에 사인한 이가 커피에 내린 축복에 관한 고찰

처음 로마에 발을 딛고 숙소에 짐을 풀었다. 처음 만난 로마의 감동을 느끼기가 무섭게 시작된 생존게임을 위해 물과 식량을 준비해야만 했다. 급하게 일어나 숙소 호스트가 알려준 마트에 가서 물과 먹을거리 몇 가지를 사서 냉장고에 안전하게(?) 쌓아두고 나서야 마음 한 구석에 안도감이 몰려왔다. 이제, '당장 굶어 죽을 걱정은 없으니 로마를 느껴보자!'는 마음으로 숙소를 나셨다.

숙소를 나서 로마를 걷기 시작했다. (출처: 필자)

숙소를 나와서 두리번두리번 로마의 거리를 걷고자 고개를 쑥 들이밀어봤다. 골목 한 구석에 있던 숙소를 나와 로마의 골목을 걷기 시작했다. 골목에는 이곳에 오기 전까지는 몰랐던 스파다 궁전(Palazzo Spada)이 보였다. 소설 몽테크리스토 백작에서 나오는 '스파다 가문의 보물'이 문뜩 떠오르는 이름이라 무작정 건물 안으로 발을 들여놓았다. 소설에서 괜히 스파다 가문의 이름을 가져다 썼던 게 아니었던 게 분명했던 것이 궁전 안에 갤러리에는 대단한 작품들이 모여있었다. 그렇게 '나는 언제 스파다 가문의 보물을 찾지'라는 농담을 읊조리며 다시 골목을 걷기 시작했다.

스파다 궁전에 있는 갤러리, 가운데 초상화는 스파다 궁전의 원래 소유주 베르나르디노 스파다(Bernardino Spada, 1594 - 1661)추기경 (출처: 필자)

그리고 좀 커다란 광장이 나왔는데, 무장경찰이 상당하다. 여긴 왜 이러나 싶어 주위를 둘러보니, 한 궁전 같은 건물에 프랑스 국기가 걸려있었다. 급히 인터넷을 뒤져보니 프랑스 대사관으로 사용되는 파르네세 궁전(Palazzo Farnese)이었다. 아마 프랑스 대사관으로 사용되다 보니 테러 등의 위험이 아무래도 존재하는 것 같았다. 덕분에 이곳에는 들어가지도 못하고 밖에서 급하게 인터넷을 보고 찾은 정보를 읽으며 구경하는 수밖에 없었다. '저 동양인은 무슨 불순분자이지?'라는 생각을 하는 것 같은 경찰들의 눈총을 받으며 건물을 한 잠 동안 바라보며 구경했다.

경비가 지키고 있던 파르네세 궁전(출처: 필자) 좌측, 18세기의 파르네세 궁전(출처 영문 위키백과 파르네세 궁전)

훗날 교황 바오로 3세가 되는 알레산드로 파르네세 추기경이 1517년 자신의 가문을 위해서 이 궁전을 지었다. 초기의 디자인은 피렌체 출신으로 성 베드로 대성당 공사를 맡은 브라만테 밑에서 일하며 경력을 쌓던 젊은 건축가 안토니오 상갈로(Antonio da Sangallo, 1483-1546)가 담당했다. 1534년 파르네세 추기경이 교황에 즉위하여 바오로 3세가 되자, 유난한 가족사랑이 지극하셨던지 파르네세 궁전의 개축 및 확장 공사가 시작되었다. 이 작업에는 그 유명한 미켈란젤로(Michelangelo di Lodovico Buonarroti Simoni, 1475-1564)가 투입되었다.

파르네세 궁전 건축을 의뢰한 알레산드로 파르네세,  교황 바오로 3세 (좌측, 젊은 추기경 시절, 우측 교황 즉위 후, 출처: 위키백과)

파르네세 궁전에 들어가 보지 못하는 아쉬움을 뒤로하고 한 골목을 지났더니, 웬 동상이 서 있다. 가게의 테라스 석이나 노점들이 어지러히 뒤 엉켜 있는 가운데 우뚝 서 있는 동상을 보자 하니, 저게 누구인가 싶어 가까이 다가갔다. "조르다노 브루노" 모자를 깊게 덮어쓴 수도사 같은 느낌의 남자. 조르다노 브루노 (Giordano Bruno, 1548~1600)는 철학자이자 수학자, 시인, 그리고 신비주의자였다. 1548년 나폴리 왕국의 수도 나폴리의 교외 놀라(Nola)에서 직업군인의 아들로 태어났다. 10대에는 나폴리에서 고전문학과 논리학을 배웠고 1565년 도미니크 수도회에 입회했다. 1572년에는 사제서품까지 받았건만 그는 가톨릭 신앙에서 칼뱅파 개신교로 개종했다가 곧이어 개신교에도 회의감을 가지게 되고 무신론에 가깝게 되었다.

광장 한 가운데 서 있는 조르다노 브루노의 동상,(출처: 필자) 동상 정면(우측, 출처 위키백과)

그 이후 프랑스와 영국을 돌며 자신의 사상을 강의하고 (영국에서는 옥스퍼드에서도 강의한 적이 있다고 한다.) 자신의 신념을 주장했다. 그러다가 종교재판에 회부되어 재판을 받게 되는데 그는 8년간의 재판기간 동안 자신의 주요 사상에 대해서 끝까지 뜻을 굽히지 않았다고 한다. 훗날 성인으로 시성 된 로베르토 벨라르미노 (Roberto Francesco Romolo Bellarmino, 1542-1621)의 주재로 수행된 재판에서 결국 사형 판결을 받았다. 교황 클레멘스 8세의 엄격한 교회법 적용 정책의 결과 (교황은 브루노의 화형 판결 과정에 관여했다고 한다.) 그는 결국 화형대 위에 섰다. 그리고 약 300여 년 뒤 빅토르 위고, 헨리크 입센, 바쿠닌 등은 그가 타올랐던 그 자리에 사상의 자유를 위해 순교한 그를 기리며 화형대 대신 그의 동상을 세워 올렸다. 당시 교황이었던 레오 13세는 고령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이단재판을 받은 이단자의 동상을 로마 한 복판에 세운다는 것에 항의의 금식기도를 진행했다고 한다.

좌측부터 브루노의 이단재판을 주재한 로레브로 벨라르미노 추기경, 빅토르 위고, 헨리크 입센(출처: 위키백과)

브루노의 사상은 고대의 다양한 명제, 스콜라철학의 제반 이론, 신플라톤주의의 틀 안에서 기독교 사상의 해명을 추구한 쿠사누스와 피치노의 르네상스 플라톤 사상의 혼재되어 있었고, 덕분에 그의 사상을 하나로 종합하여 형이상학적 해석을 하기에는 어려움이 따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제시한 개념들은 르네상스와 근세 철학을 잇는 중요한 다리가 된다. 그가 제시한 신 또는 자연(Deus sive Natura) 개념을 배제하고는 스피노자와 라이프니츠의 형이상학을 이해하기는 어렵다고 한다. (어려운 철학적 개념은 김영선, 조르다노 브루노의 형이상학, 중세철학,  2001, pp.67-93을 참고하시길) 더불어 코페르니쿠스의 태양중심설, 무한 우주의 개념 역시 조르다노 브루노를 거쳐 근대로 흘러간다.


그런데,  이 사상의 과학과 사상의 자유를 위해 순교한 브루노의 사형에 과감하게 사인하신 분께서 축복한 '사탄의 음료'가 있다. 브루노가 사형당하던 1600년 그리고 1500년대 후반은 동방에서 검은 사탄의 음료가 유럽으로 들어오던 시기이다. 유럽에 커피가 들어오자 엄격한 교회법주의자였던 클레멘스 8세의 보좌관들은 커피를 '사탄의 음료'로 지정하기를 바라고 교황에게 커피를 올렸다고 한다. 그런데 왠일!? 교황께서는 커피를 한 입 하시는고는 “어째서 이렇게 사탄의 음료가 맛있을 수 있단 말이냐?! 이교도들만이 이를 즐긴다는 것이 아까울 정도다! 당장 커피에 세례를 내려 사탄을 쫓아내고 이를 진정한 기독교의 음료로 명할 지어다!”라고 말씀하셨단다.

교황 클레멘스 8세 (출처: 위키백과)

물론 사실보다는 전설에 가까운 이야기이기는 하다. 그런데 조르다노 브루노의 동상 앞에 서니 왠지 새삼스럽게 떠오르는 이 커피에 대한 클리셰에 가까운 에피소드. 로마를 걷다 보니 이런 묘한 공간을 만나게 되는구나... 르네상스 교황의 대표 격인 파르네세 교황, 바오로 3세가 웅장하게 지은 궁전에서 내려다 보이는 전통적인 종교 가치에 저항한 과학과 사상의 자유를 대표하는 순교자 브루노의 동상. 그리고 '사탄의 음료' 커피에 내리셨던 축복과 관용을 사상의 자유를 외치던 이에게는 허하지 않으셨던 클레멘스 8세까지.

조르다노 브루노의 동상 아래서 파헬벨 캐논을 연주하는 버스커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보니 어느덧 해가지고 밤이 되었다. 버스커들이 그의 동상 아래 하나둘 자리를 잡더니 연주를 시작했다. 따사로운 캐논을 연주하는 연주자의 선율이 외로운 사상의 자유를 향한 순교자를 향한 위로랄까.


어느 과학자의 죽음과 조금 관련 있는 커피이야기


*참고문헌

1. Statue of Giordano Bruno (영문위키백과) Statue of Giordano Bruno - Wikipedia

2.  Giordano Bruno (영문위키백과)Giordano Bruno - Wikipedia

3. Pope Clement VIII (영문위키백과)  Pope Clement VIII - Wikipedia

4. Antonio da Sangallo the Younger(영문위키백과)  Antonio da Sangallo the Younger - Wikipedia

5. Palazzo Farnese(영문위키백과) Palazzo Farnese - Wikipedia

6. 김영선, 조르다노 브루노의 형이상학, 중세철학,  2001, pp.67-93

7. 하인리히 에두아르트 야콥, 남덕현 역, 『커피의 역사』, 자연과생태, 2013

8. 윌리엄 H. 우커스, 박보경 역, 『올 어바웃 커피』, 세상의아침,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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