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레오 Dec 08. 2023

7. 버찌일기

내가 사랑하는 버찌

2023년 9월 17일

디데이를 세지 않겠다고 했지만, 굳이 계산해 보니 버찌가 암을 판정받은지 25일이 지났다. 얼추 한 달 가까이 되는 시간이 흘렀다.

토요일과 일요일, 단 하루가 지났지만 그 하루 차이로 버찌의 상태는 급속도로 쇠약해져 갔다. 이제 진통제는 버찌에게 아무런 효과를 주지 못한다. 그래서 병원에 연락하여 상태를 이야기하고 진통제 용량을 늘려서 투약할 수 없겠냐고 물었는데, 버찌 상태가 너무 약해졌기 때문에 맥박이 느려져서 위험할 수 있으니 기존에 처방받은 약을 먹이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위에서 내려다보면 버찌의 오른쪽 배가 눈에 띄게 튀어나왔다. 그게 지금 버찌를 고통스럽게 하는 암이다. 암의 성장속도는 우리의 예상을 뛰어넘었다. 단 2주 차이로 찍은 엑스레이 결과지에서 암의 크기는 놀랍도록 커져있었다.

버찌는 현재 곡기를 끊고, 물도 제대로 마시질 못한다. 그래서 배는 나왔는데 척추뼈 전체가 다 만져진다. (가장 마지막으로 잰 몸무게는 2.95kg였다. 건강하던 시절 버찌는 3.8kg를 유지했다.) 음식을 주면 속이 뒤집어진다는 듯 자리를 박차고 일어난다. 그나마 잘 먹던 습식마저도 어제 저녁이 마지막이었고 오늘은 쌩으로 굶다 저녁 7시쯤 조공 츄르를 주니 1/5 정도 먹었다. 입 주변은 침 범벅이 되어 주기적으로 따뜻한 물에 적신 가재수건으로 닦아줬다. 깔끔 대마왕이었던 버찌에게 이런 본인의 모습 자체가 스트레스일 것 같다.




어제는 하루종일 비가 내리고, 해가 내리쬐지 않아 버찌가 베란다에 나가고 싶어도 내보내 줄 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우리 집 베란다는 비가 오면 누수가 생겨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이런 우리의 상황이 너무나도 화가 났고, 개인적으로 버찌를 본가로부터 데리고 나온 순간이 후회스러웠다. 아무튼 오늘은 날이 좀 개고, 햇빛이 들어 버찌를 베란다로 내보내주었더니 옆으로 눕지 못했던 애가 갑자기 옆으로 누워 자는 모습을 보였다. 그 순간 하늘에게 해를 내어주어 감사하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잘 자던 버찌가 갑자기 세탁기 옆 깊은 모서리 쪽으로 자꾸만 들어가려고 했다. 나랑 동생은 놀라서 버찌를 구석으로부터 꺼내며 기분이 너무 슬퍼졌다. 고양이는 죽기 전 어둡고 차가운 곳으로 숨는 습성이 있다고 하는데 그 행동이 주말 동안 심해졌기 때문이다. 솔직히 우리도 안다. 우리 버찌에게 진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옆으로 누워자는 버찌




점심을 먹고 버찌를 조심스럽게 안아 베란다 밖을 구경시켜 주었다. 항상 베란다에서 일광욕을 하던 버찌였지만 이제는 좋아하던 초록의자 위로 점프도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버찌에게 바깥 구경을 시켜주고 동생과 잠깐 한강으로 걷기를 다녀왔다. 집안에 하루종일 있으니 기분이 말도 안 되게 우울해졌기 때문이다. 웃긴건 걸으며 자연의 냄새를 맡으니 그 기분이 잠시나마 사라졌었다. 동시에 우리 버찌는 그 누구보다 베란다를 사랑하던 아이인데 지금 얼마나 괴롭고 우울할까 싶었다. (버찌는 폭염에도 베란다에서 일광욕을 했다.)

집에 돌아와 버찌를 만져주니 골골송을 불렀다. 우리 중에서 버찌는 제일 강했다. 암이 장기 전체를 짓누르는 와중에도 골골송을 부르다니... 정신력이 대단하다 못해 경이로울 지경이었다. 옛날처럼 모터보트급 골골송은 아니지만 조용하고 잔잔한 버찌의 노래를 들으니 황당하게도 약간 마음이 안심됐다. 옛날에 책에서 고양이의 골골송이 혈압을 낮춰주고, 심박수를 안정시켜 노인들에게 고양이 키우는 것이 좋다는 내용을 본 적이 있는데 누가 누구를 위로해 주는 건지... 그 상황이 웃음이 나는 동시에 눈물이 났다. 이별이란 참으로 힘들다. 눈이 짓무르도록 울어도 슬픔에 끝이 없다. 오늘도 자기 전 버찌에게 이렇게 얘기한다."버찌야 사랑해. 내일 아침에 만나!"

작가의 이전글 6. 마음의 준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