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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곤두레밥 Nov 27. 2023

[공포] 철책선의 무음, 무향, 실루엣

실화입니다.

내가 근무하던 곳에선 많은 전우들이 가능하지 않은 현상들을 한 번씩 보았다는 이야기가 많았다.


어디까지가 진짜인지는 알 수 없다.


군인들 특유의 허풍과 이 곳의 특성을 고려할 때


그냥 잠결에 무언가를 보았을 수도, 허풍을 떨기 위해 무언가를 봤다고 이야기하고 싶어했을 수도 있으니까.


허나 남들이 무엇을 보았든

난 그날 ‘무언가’를 보았다.

 

어찌되었든


난 이 일을 직접 겪고나서도 귀신을 믿지는 않는다.   


출처: 육군 블로그 아미누리




내가 군시절 근무를 했던곳은 GOP다.

쉽게 말해 북한과 남한 사이의 철책선을 지키는 것. 최전방 중에서도 최전방.

읽는 분들도 아시겠지만 그곳은 정말 많은 분들이 돌아가신 곳이다.


북한과 남한이 땅을 1cm라도 차지하기 위해 수많은 총탄이 쏟아졌던 곳이다보니.


비가 내리는 날이면 한국 전쟁때 쓰였던 총탄이나 탄피가 한 두발씩 드러났고 경계를 서다보면 하루에 한번은 고라니나 멧돼지가 지뢰를 밟아 터지는 소리가 멀리서 들려오는 곳이었다.


GOP는 민간인 통제선 안에 위치한 고지대이다.


민간인이 근처에 거주하기는커녕 들어올수조차 없는 곳이다보니 철책의 밤은 오로지 운좋게 뜨는 달빛과 벌겋게 밝아진 경계등 외에는 보이는 것이 없다.


이런 GOP의 환경은 아이러니하게도 경계병들로 하여금 온 감각을 예민하게 만든다.

 

경계등 아래로 일렁거리며 나는 올빼미의 검정 실루엣

다른 경계조가 걸으면서 밟는 낙엽소리

찰그락거리는 소총의 금속 소리

사람들이 피우는 담배의 매캐한 향까지


우리들에게는 분명하게 알수 있는 정보들이었다.






어느 날 자정을 넘긴 밤이었다.

그날도 어김없이 부사수와 높이 솟은 초소로 들어가 산등성이를 타고 붉게 빛나는 경계등 근처를 살피고 있었다.

으슬으슬 4월이지만 눈이 녹지않은 날씨에 라디에이터근처에 몸을 녹이고 있노라니 눈꺼풀이 무거워지던 와중. 갑자기 저 멀리 경계등 아래로 꿈틀거리는 실루엣이 보였다.


'누구지.'

 

너무 멀어 아직은 나방을 주워먹는 너구리인지, 멧돼지인지, 사람인지 구분이 가지는 않았다.

시간이 조금 지나 다시 보니 여러 사람 실루엣이었다. 네 다섯명? 쯤 되어 보이는.


이상했다.


철책선으로 네다섯명의 인원이 야밤에 줄지어 올 일이 없기 때문이었다.


‘A형근무...?’


그 당시 내가 유추 가능했던것은 비상상황이 되어 전원투입이 되는 ‘A형근무’ 정도.

 

나는 다른 쪽을 보던 부사수에게 물었다.


“XX아. 오늘 A형 근무 이야기 들었니? 훈련같은거.”

“훈련 있었습니까? 저는 못들었습니다.”


바로 인터컴을 들어 상황실로 물어봤고 역시나 돌아오는 대답은 ‘그런거 없다.’


뭐 상관 없었다.

누가 되었든 이쪽을 향해 오고있었고, 이곳에 도착할 때 쯤 내려가서 누군지 수하(손들어! 하는 것)하면 되었으니까. 허나 그들이 가까워질수록 작은 이질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속도'

 

그 실루엣이 가까워지는 속도가, 최소한 걷는 속도는 아니었다.

저기서부터 여기까지 걸어서는 보통 15분정도.


근데 저 정도면 5분이면 도착하겠다 싶더라.

즉 뛰어오는 속도였다.


나름 머리로 이해하려 했다.


열심히 뛰어오는 무슨 이유가 있겠지.

하지만 다음을 깨닫는 순간 나는 그 실루엣을 주목할 수 밖에 없었다.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군홧발이 시멘트를 때리는 소리도,

소총이 몸에 맞아 달그락거리는 소리도.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소리가 안들린다.


들려야할 것이 안들린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수십킬로미터로 뻗어지는 백두대간의 풍경보다 그 조그만 실루엣에 집중되었다.


내가 뭔가 잘못 생각하고있겠지, 다른 소리에 묻혀서 안들리기도 하겠지


지금 생각해보면 그런 것이길 바라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그 실루엣들이 우리에게 가까이 오기까지 기다렸다. 내가 예상한 범위의 무언가이기를 바라면서.

 

1,2분이 지났을까.

실루엣의 정체가 어떤 것인지 내가 얼추 식별가능해질 때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나는 급하게 옆에서 꾸벅거리던 부사수를 우악스럽게 채근하여 함께 고가초소에서 튀어내려가 그들이 오고 있는 언덕으로 총을 겨누었다.


“야투경 켜줘. 총 안전목빼고 단발로 두자.”


내 말에 부사수는 적잖이 당황했다.

실탄이 장전된 총의 조정간을 단발로 두자고 말하는 건여차하면 총을 쏘자는 뜻이었으니까.


“왜그러십니까...?”


그 친구 입장에서는 너무나 당황했겠지.


꾸벅꾸벅 졸고있는데 평소엔 안그러던 사수가 갑자기 벌컥 소리를 지르더니 총까지 쏠 준비를 하라니까 얼마나 무서웠겠는가. 허나 내 입장에선 그들이 금방이라도 올 것 같은 마음이 들어 자세히 이야기는 못하고 철책에 시선을 떼지못한채 갈라터진 목소리를 겨우 ‘누가와.’라고밖에 받아칠밖에.

 

그렇게 총을 겨눈채 5분쯤 지났을까?

그곳으로는 아무도 오지 않았다.

부사수에게 자리를 지키도록 하고 고가초소로 올라갔다.

 

시원하게 뻗어나가는 산등성이의 경계등 밑으로 야속하게 그 어느것도 보이지 않았다.


1분쯤 어안이 벙벙해진채로 생각을 정리했다.


그러다 밑에서 총을 아직 겨누고 있는 부사수 생각이 나 그 친구에게 올라오라고 소리쳤다. 아주 분명히 들렸다. 부사수가 총을 덜그럭거리며 쿵쿵 오는 소리가.


부사수는 들어오자마자 멍해있는 내게 물었습니다.


“대체 누가 왔길래 총까지 쏠 준비하신겁니까?”


부사수입장에서도 당황했는지 꽤나 강하게 물었다.

총까지 쏠준비를 시켰으니 말해주는게 맞겠다 싶어 말했습니다.

 

"누가 여러명이 오는 걸 봤는데, 아주 옛날 군인같았어"


그랬다.

최전방은 장비가 많다.

야간투시경이 달린 헬멧에 실탄을 100발넘게 가지고 있고 가슴한켠엔 수류탄까지 달고있다.

그에 반해 내가 식별했던 그 4명과 5명의 실루엣에 있던 장비는 절대 요즘 군인의 장비가 아니었던 것.


단출한 장비에 총도 뭔가 이상하게 생겼고,

방탄헬멧도 GOP에 쓰는것과 달리 챙이 길쭉한 헬멧이었다.

 

마치, 영화에서나 보던 한국전쟁의 군인들처럼 말이다.


그 실루엣을 보고 군생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훈련이 아닌 상황에서 총을 쏠 준비를 했던 것이다.

 

내가 부사수에게 본 것을 설명한 뒤, 부사수는 조용히하기 어려웠는지

우리 소초에 금방 소문이 퍼졌고


한동안 소초에서는 한 일주일간은 내게 어떤 것을 보았냐는 선임들과 간부의 질문이 쏟아졌지만 역시나 시간이 지나니 반응은 옅어졌다.


그러나 내게는 10년이 지난 오늘까지도 옅어지지않는 기억이다.

 

오늘처럼 으슥하게 가로등이 켜질 밤이면 경계등 아래로 보이던 실루엣이 가끔 생각난다.


출처: 육군 블로그 아미누리







마지막으로 말씀드리지만.


내가 근무하던 곳에선

많은 전우들이 가능하지 않은 현상들을 한 번씩 보았다는 이야기가 많다.

어디까지가 진짜인지 모르겠다.

 

군인들 특유의 허풍과 이 곳의 특성을 고려할 때

그냥 잠결에 무언가를 보았을 수도,

허풍을 떨기 위해 무언가를 봤다고 이야기하고 싶어했을 수도 있으니까.

허나 남들이 무엇을 보았든


나는 그날 ‘무언가’를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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