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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LIE K Nov 01. 2024

언젠가는 세상에 나올 이야기

Unighted Kindom

삶에 지쳐 벼랑 끝에 서있다 보면 두 가지 선택지가 주어진다. 모든 것을 포기하고 그대로 떨어지거나 새로운 돌파구를 찾아서 다시 떠나거나...


내가 찾은 돌파구는 바로 '여행'이었다. 하지만 어린아이를 키우는 가정주부가 홀로 자유롭게 떠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가족들의 도움과 이해가 필요했다. 나를 믿어주고 도와주는 가족들 덕분에 젊은 시절의 나는 반짝일 수 있었다. 한순간에 바뀐 생활 패턴으로 잃어버렸던 생명의 빛이 다시 살아나기 시작했다.


세상밖을 돌아다니면서 공기처럼 가벼운 자유를 즐기 희미해져 가던 자아를 다시 찾아왔다.


누구보다 주도적으로 자유롭게 살았던 인생이었다. 삶을 계획하고 실천하는 모든 주도권이 내게 있었다. 결혼과 육아는 내가 누려왔던 삶을 포기하게 만들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모든 것이 어리석고 부질없는 생각이었다는 것을 이번 여행을 통해 깨달았다.


여행을 하고 다양한 순간들을 경험하면서 닫혀있던 사고들이 조금씩 열리기 시작했다. 새로운 가족의 존재를 받아들이며 차츰 곁을 내어줬다. 때론 상황에 따라 포기하는 것들에 대한 미련이 사라졌다. 나만을 위했던 인생을 내려놓으면서 '왜 나만 손해 봐야 해?'라는 피해의식도 사라졌다.


마음의 여유가 생기니 모든 것이 자연의 순리대로 흘러가며 평화가 찾아왔다. 남편과 지지고 볶던 싸움도 점차 줄어들었다. 새로 생긴 마음의 방에 아이가 자리 잡으며 모든 것이 처음이라 삐그덕 댔던 육아의 세계도 안정권으로 접어들었다.


나의 삶의 무게를 모르면서 감히 다른 사람의 삶의 무게를 함부로 측정할 수는 없다.


누구나 똑같은 과정을 겪고 지나가는데 왜 혼자 유난이냐.. 스트레스 풀 것이 여행밖에 없나.. 애엄마가 애는 안 보고 어딜 그렇게 돌아다니냐며 곱지 않은 시선 혹은 부러운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겠다.


행복은 사사로운 것에서부터 방대한 것까지 기준이 저마다 다르다. 나의 행복의 가치가 다른 이의 것과 비교되는 순간부터 그것은 진정성을 잃어버린다. 그렇기에 주변의 시선에 흔들리지 않고 진정한 행복을 누릴 수 있었다.

먹구름 너머 맑음


내가 행복하니 가족들이 웃었다.



여행작가가 되고 싶다는 핑계로 난생처음 혼자서 겁도 없이 세상의 문을 두드렸다. 약 3주간의 긴 여정을 캐리어 하나만 들고 돌아다녔다. 젊은 시절의 나는 무모했으며 용감했다.


여행을 마치고 일상으로 돌아가서 충실하게 살아왔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13년이란 시간이 훌쩍 지나있었다. 아이들이 급속도로 성장한 만큼 삶에 여유가 다시 생기기 시작했다.


우연한 기회에 브런치 작가가 되면서 가슴속 깊이 묻어뒀던 옛이야기가 떠올랐다. 핑계였던 여행책을 핑계가 아닌 것으로 만들어 보자는 생각이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중년이 된 나는 또다시 터무니없는 용기를 냈다. 하지만 모든 것이 처음부터 잘 풀리지 않았다.


기억은 편집된다.


강산이 변한 만큼 내 기억의 회로도 얽히고설키며 낡아빠져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원하는 쪽이든 그렇지 않든 왜곡되는 건 사실이다. 나중에 대화하다가 "내가? 내가 그랬다고?"되묻는 경우가 간혹 있다.


믿을만한 건 스스로 남긴 자료뿐이다. 


슬프게도 갖고 있던 외장하드 고장 나버렸다. 길 가다 만난 이름 모를 잡초조차 예쁘다며 카메라에 정성껏 담았던 사진들이 전부 소실됐다. 거금을 들여 복구센터에 맡겼으나 소용없었다. 나의 청춘과 아이들의 어린 시절이 모두 사라졌다. 그 시절을 추억할 수 있는 건 당시 써 놓은 한 권의 수첩과 희미하게 떠오르는 기억조각들 뿐이었다.


수첩을 읽어가면서 과거를 떠올리기 시작했고 갖고 있던 기억들과 퍼즐 맞추기를 했다. 여행에서 돌아오자마자 반짝했던 블로그와 SNS에 올렸던 사진들에 의지한 채 여행기를 써 내려가기 시작했다.


기억이 나지 않는 장소는 구글에서 다시 찾아봤다. 내가 갔던 길을 고스란히 따라가 보니 기억이 새록새록 다시 찾아왔다. 13년 만에 다시 여행을 떠난 기분은 하늘 위를 둥둥 떠오르게 했다. 아련한 추억이 깃든 곳을 다시 볼 때면 감정이 복받쳐오기도 했다. 당차게 보냈던 과거 속 여행은 현실을 살아가는 데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끼쳤다. 잊고 살았던 젊은 날이 다시 투영된 느낌이 삶에 활력을 주었다.


언젠가는 세상에 나올 이야기였다.


여행기를 무사히 마치고 난 지금 나는 굉장히 후련하다. 보잘것없는 아줌마의 이야기에 관심 가져 주신 모든 분들께 진심을 담아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싶다.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후속 편으로 나올 여행기도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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