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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찔찔이 Feb 10. 2024

12. 정자가 아니라 남자를 구해야 한다는 점에서

대머리 아저씨와의 소개팅에서 냉동난자까지, 나의 모태솔로 탈출 분투기

 얼마 전 한 유튜브에서 전 농구선수 서장훈 씨(49세)는 정자 냉동을 권하자 ‘아이도 바뀌는데 정자라고 안 바뀔 거란 보장이 없다’며 자신은 3년 안에 낳을 수 있으면 낳고, 굳이 얼리지는 않겠다는 선언(?)을 했다. 모쪼록 사람들의 이런 우려가 많아서 그런지 난임전문병원에서는 기술은 걱정할 필요가 없고, 자신들이 얼마나 정보관리를 잘하는지를 매우 성심껏 홍보하고 있었다.


 병원 로비에서 정보 관리에 대한 홍보 영상을 보며 문득 ‘그렇게까지 내 씨가 중요한가?’ 하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생각은 꼬리를 물고, ‘세상에 얼마나 다양한 형태의 가족이 있는데...... 가슴으로 낳은 자식도 있고’로 이어져 ‘잠깐 내가 원래 아이를 낳고 싶어 했나? 나 여기 왜 와있지?’, ‘하긴, 옛말에 씨도둑은 못 숨긴다는데, 내 자식은 나랑 별게 다 비슷하겠지? 맞아, 사람들도 그게 궁금하겠지......’, ‘난자를 채취한다 하더라도 냉장고에 영원히 얼려만 둘 수는 없는데...... 요즘 세상에 정자만 구해서 낳는 사람도 있다지만, 나는 혼자 키울 자신 없는데...... 결국 시집 못 가면 돈 아까워서 어쩌지?’ 등 별의별 생각을 다 하는 사이 드디어 내 순서가 왔다.


느낌 아니까......


“우리 00 씨 ~ 너무너무 잘 오셨어요.”


 성형외과 상담실장님은 만나봤지만, 난임병원 상담은 처음이었다. 그러나 태어나 처음 보았지만 마치 오래 알고 지낸 사이처럼 다정하게 내 이름을 반복적으로 부르며 다가올 희망을 영업하시는 것이 뭔가 비슷했다. 선생님께서 어찌나 능숙하시던지 나도 모르는 사이 피를 쪽쪽 뽑고 누구와도 나눠보지 못했던 인생의 계획을 선생님께 상담하며 다음 예약까지 잡고 있었다.


 남편과 함께 온 다른 사람들을 스쳐 지나며 홀로 병원을 나서는데 뭔가 울적한 마음이 들었다. 마침 바깥에는 비가 내리고 있었다.


 눈이 오면 눈을 핑계로 비가 오면 비를 핑계로, 산양처럼 산을 타던 그에게 연락하고 싶었지만 참아야 했다. 이미 나는 두 번이나 씹혔으니까...... 공연히 오지 않는 전화를 기다리며 전화기만 들여다보고 있는데 시골에 사는 엄마에게 전화가 왔다.


“뭐 하셔?”

“나 난자동결 상담했어”


 환영할 거란 예상과는 달리 별말이 없던 엄마는 ‘그거 당장 하는 거 아니지? 나중에 자세히 더 얘기하자’며 전화를 서둘러 끊었다. 맨날 시집은 언제 가냐 타박하고, 자식은 꼭 낳아야 한다던 사람이 왜 반기지 않는 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며칠 뒤 엄마에게 전화가 왔다.


“엄마가 용한 무당을 만났는데 그이가 너 38살에 결혼할 수 있대. 너 얼리는 거 그거 안 했으면 좋겠어. 엄마 친구도 마흔에 자연임신으로 낳았어. 너도 할 수 있어”


 최첨단 의료과학기술과 샤머니즘이 나의 전망을 두고 충돌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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