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슐랭에 가면 생산성이 높아지는 사외이사'님'

1호선 민달팽이 이야기

"캐모마일이 국환데요?! 국화차도 국산차인데요?!"

"저기 나랑 지금 말장난해? 애티튜드가 이게 뭐야?!"

일순간 회의장에는 정적이 흘렀고 공공기관의 조직문화를 운운하며 화를 내는 교수의 목소리와 사람들이 웅성웅성하는 소리가 들렸다. 때마침 팀장님들이 나타나서 죄송하다며, 직원 교육 잘 시키겠다고 애써 교수를 진정시키는 사이 김팀장님이 조용히 이대리를 데리고 나갔다.

"힘들지? 회의는 신경쓰지 말고 나가서 바람쐬고 와~ 팀장님한테는 내가 잘 이야기 해둘게!"

"죄...죄송합니다. 제가 그러려고 그런게 아닌데..."

"응? 아냐~ 이대리는 몰랐겠지만 다들 모두 웃음 참느라 아주 죽는줄 알았다니깐! 맨날 영어 섞어 쓰더니만, 캐모마일이 한국어로 국화인줄 몰랐던거 아냐? 하하하!"

김팀장님의 위로에 그간 쌓여있던 설움이 복받쳐 이대리는 눈물이 나올 것만 같았다. 잠시 옥상으로 올라가 마음을 진정시키고, 자리에 돌아와 밀린 업무를 처리했다. 한참 진행중인 회의실에 문을 열고 들어갈 수는 없는 일이다.

이사회가 끝나고 하나둘 직원들이 자리로 돌아오며 한마디씩 한다.

"이대리 오늘 멋있었어! 잘했어!"

"나 진짜 빵터질뻔했잖아~~사이다야 사이다"

"앞으로 캐모마일티 마실때 마다 이대리 생각날듯!"

반면 팀장님은 굳은 얼굴로 자리에 돌아와 이대리를 회의실로 불렀다.

"이대리, 김팀장이랑 친한건 알겠는데~ 내 허락 없이 자리를 비우는건 좀 그렇지 않아?"

"죄송합니다"

"이미 지난 거 어쩔 수 없고... 다음부터는 좀 주의해줘"

김팀장님처럼 편을 들어주지는 않아 한 켠으로 서운한 마음이 들기도 했지만, 잘한 건 아니기 때문에 수긍할 수 밖에... 이정도 선에서 크게 혼나지 않은 게 다행이라 생각했다. 그런 와중에도 궁금한 건 참을 수가 없었다.

"팀장님, 근데 오늘 이사회는 잘 끝난 건가요?"

"오늘 난리도 아니였어~ 안건마다 전부 반대의견 던지고, 임기 끝나간다고 막 나가기로 작정 한건가? 마지막에는 뭐래는줄 알아? 본인이 대학교재로 쓴 책을 구입해서 전직원들한테 다 읽게 시켜야 한대~ 제목이 생산성과 혁신 어쩌구라고 하던가~"

"아... 팀장님 어떡해요 그럼... 죄송합니다"

"교육비 예산이 남아있나 봐야지, 없으면 다른 비목에서 조금 땡겨와야 할거 같아. 이건 교육부서에서 확인해보기로 했어"

그나마 다행인 점은 직원이 많지 않아 교육비 예산 내에서 충당 가능했다. 그리고 교수를 통해 저자 구매가로 구입하면 할인도 되었기에 큰 탈없이 잘 해결되는 듯했다. 이 일을 계기로 이대리는 이사회 운영 지원 업무는 배제되었다. 김팀장님은 이대리가 사고를 쳐서 그렇다기 보다는 사원때부터 고생했으니 조만간 업무 조정을 하려고 했었는데, 각 팀장들끼리 협의해서 결정된 것이니 죄책감 가질 필요는 없다고 안심시켜 주었다.

어느덧 연말이 되었고 임기 만료를 앞둔 이사들을 대상으로 하는 초청 행사 때문에 회사가 시끌시끌해졌다. 관행적으로 이사들에게 그간 고생하셨다는 의미로 감사패와 꽃다발을 지급하고 식사를 대접하곤 한다. 이대리는 직접 업무를 하지 않았지만 전해듣기로는 식당 때문에 실무자들이 골머리를 썩었다고 한다. 생산성 교수가 1인당 3만원으로 책정된 기준을 초과하는 미슐랭 레스토랑을 고집했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참석 인원을 뻥튀기 하고 예산을 늘려서 뜻대로 해줬다고 한다. 예를 들어, 참석 인원 20명 기준 60만원을 예산으로 잡아놓고, 실제 식당에는 3명이 가서 20만원짜리 고급 코스요리를 즐기는 식이다.

이대리는 이렇게까지 해야 할 일인가 싶었지만, 훗날 알고 보니 생산성 교수의 배우자가 모 부처의 과장이라고 카더라. 심기를 거슬리게 했다간 어떤 후폭풍이 돌아올지 모르기에 다들 그렇게 쩔쩔맬수밖에 없었던 것인가 했다.

캐모마일티 사건 때, 낯빛이 사색이 되었던 몇몇 본부장님들의 얼굴이 이제서야 떠올랐고 본인이 무슨 대형 사고를 친건지 아찔해졌다. 하지만, 생산성 교수님이 그토록 원했던 미슐랭 레스토랑이 무척이나 마음에 들었던 것인지 마지막 이사회 이후로 아무 일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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