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석기 옥중수상록, 새로운 백년의 문턱에 서서》을 읽고 3
■ 양심적 음주거부권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창궐하는 바람에 술자리 같은 모임이 드물다. 이전만 해도 정기인사 이동 후에는 으레 회식일정이 잡혔고 초면이거나 잘 모르던 사람들과 대화하는 기회가 많았다. 그러다보면 주제가 술로 자연스레 넘어가는 경우가 있다.
‘술 좋아하세요? 주량이 어떻게 되세요?’ 대답은 제각각이다.
1. 술은 잘 못하는데, 술자리 분위기는 좋아해요.
2. 그냥 소주 1병정도. 분위기 맞추는 정도에요.
3. 저는 술 먹으면 얼굴이 빨개지고 졸려요.
나는 술을 거의 못 마신다. 유전적으로 알코올에서 나오는 아세트알데히드를 분해하는 효소가 거의 없다. 음주량을 조절해가며 술자리에 끝까지 남아 사람들과 어울리고 싶을 때도 있는데 한 잔만 마셔도 얼굴이 새빨개지고 졸음이 몰려온다. 술자리 다음날 “어제 잘 들어가셨죠? 점심때 해장 하셔야죠!” 이런 대화는 나와 거리가 멀다. 나를 처음 보거나 잘 모르는 사람들은 열에 아홉은 제가 술 잘 먹게 생겼다고 말한다.
“술 잘 먹게 생긴 게 어떻게 생긴 거죠?” “너처럼 생긴 거!”
잘 모르는 사람과 술자리를 하거나 한참 연배가 높은 분들이 주시는 술을 거절하기가 쉽지 않다. 어느 순간 ‘저는 술 못하는 사람입니다’라는 사실을 입증해야 하는 순간이 온다.
발령받은 지 얼마 안 되서 과장님이 주시는 술을 받아 마셨다. 얼굴이 시뻘게져서 과장님 앞에서 잠이 들었다. 부원들이 다음부터 술을 억지로 권하지는 않았다. 요즘은 술자리에서 술을 억지로 권하는 장면은 거의 찾아볼 수 없고 ‘양심적 음주거부자’에게도 물과 사이다 같은 대체복무제도가 마련되어 있기 때문에 그나마 다행이다.
► 사람의 행동반경을 규정하고 동력을 제공하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요? 고난과 시련을 겪을 때 이를 뚫고 나갈 수 있는 힘은 어디에서 나오는가? 나는 그것을 양심이라고 부릅니다. 민중과 함께 하겠다는 마음, 그것이 양심입니다. 이런 양심이 사상이나 이론이라는 무기를 활용하는 것이지 그 반대는 아닐 것입니다. 34쪽
‘양심적 음주거부자’라고 주장할 때 나의 양심은 물론 ‘양심적 병역거부자’의 양심이나 ‘민중과 함께 하겠다는 마음’과 다르다. 술을 마시고 싶지 않을 때 마시지 않겠다고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은 행복추구권에서 파생된 일반적 행동의 자유 중, 의사에 반해 행동을 하지 않을 ‘부작위의 자유’ 문제일 것이다. 주3)
주3) 참고로 헌법재판소는 병역의 종류에 양심적 병역거부자의 대체복무제를 규정하지 않은 병역법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2018. 6. 28. 2011헌바379)을 했다. 다만 정당한 사유 없이 병역을 거부한 자를 처벌하는 병역법 규정은 헌법에 위반되지 않는다고 기존의 입장을 유지했다. 2019년 12월 국회는 대체복무제 도입하는 내용으로 병역법을 개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