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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수 할배 Aug 03. 2024

결국은 미국 박사학위를 땄네요!

(20화) 예~

"사람은 재능만으론 성공할 수 없다. 

재능은 있지만 성공하지 못한 사람들이 수두룩하다. 

천재성만으로도 안 된다.

 천재이면서도 평범한 삶을 사는 사람은 어디에나 있다. 

교육도 아니다. 세상은 교육받은 노숙자로 가득 찼다.

끈기 있는 노력과 강한 의지력만이 전능한 힘을 갖고 있다." 

캘빈 쿨릿지


유학 기간 동안 내내 영어가 어려웠고, 체류 기간 내내 재정 상황은 개선되지 않았다. 이러한 어려움을 어떻게 견뎌 낼 수 있었는지는 앞에서 설명하였다. 경험과 상황을 종합해 볼 때, 박사과정을 마치기까지, 열정적 끈기(Grit)가 있었다.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버티며 목표를 향해 나아갔다. 


돌이켜 보면, 진도에서 살 때보다 육체적으로 더 어려운 일은 거의 없었다. 태풍, 홍수, 눈보라 등의 자연재해가 많았는데, 이로 인하여 죽을뻔한 경우가 몇번 있었다. 우리 마을은 중학교 때 전기가 들어왔다. 여름에는 햇볕에 그을러서 얼굴이 까맣게 되었다. 비가 많이 내린 날에는 학교까지 우산도 없이 비를 맞고 걸어 다닌 적도 많다. 겨울에는 더 힘들었다. 눈이 많이 내리고 찬 바람이 불어 손과 발이 터서 아프고 가려웠다. 보리 고개라고 들어보았는가? 고구마가 겨울 주식이었다. 


나는 멀미를 심하게 하여, 교통편을 이용하여 이동하면 차와 배에 타고 있을 때는 물론 내린 후에도 1시간 정도는 정신이 없었다. 그나마 버스 편도 많지 않아서 마을(인지리)에서 고등학교가 있는 진도읍내까지 40리(16km)의 길은 그냥 걸어서 다녔다. 고등학교 때는 자취를 하였는데, 여름에는 반찬이 별로 없었다. 일요일에 집에서 김치를 가져오면 목요일쯤에는 쉬어서 먹지 못했다. 집에 다시 갈 때까지는, 다른 반찬 없이 단맛이 있는 왜간장에 밥을 비벼먹었다. 


고등학교 졸업 후에 부산에서 직장생활을 4년 정도 하였는데, 점심은 대부분 면 종류만 먹었다. 가격이 저렴하였기 때문이었다. 처음 다닌 직장에서는 가락국수 같은 걸 30원에 팔았는데, 국물에 표백한 국수와 양념간장을 넣어 단무지와 함께 먹었다. 다음 직장에서는 회사 인근의 시장에서 짜장면과 튀김을 자주 먹은 기억이 난다. 육체적인 빈곤함에 익숙하게 된 시절이었다. 


힘든 상황에 대처하는 정신도 단련하였다. 내가 중고등학교를 다니던 1970년대에는 표어와 구호가 많았다. ‘하면 된다’, ‘정신일도 하사불성’, '불가능은 없다', ‘중단 없는 전진’, '잘 살아보세', ‘짧은 일생을 영원한 조국에’ 등. 이러한 표어는 꾸준함을 기르고 목표를 향하여 전진해 가는데 도움이 되었다. 


이러한 어린 시절의 경험으로 인하여 육체적 어려움을 견디는데 큰 어려움이 없었다. 정신적으로도 쉽게 지치거나 포기하지 않았다. 대학에 입학한 후에 도시에서 자란 친구들은 이렇게 말하곤 했다.


“너에게는 힘든 일이 별로 없어 보인다.” 

“다른 사람은 힘들게 생각하는 데 너는 쉽게 생각한다.” 


그리고 나는 경제적으로나 영어 실력이 미약한 상황에서 유학을 가기로 결정하였다. 교원대학교에서 함께 공부했던 급우의 말대로, 왜 그렇게 무모한 결정을 했던가? 부산교대에 다닐 때, 한 친구는 나에게 '가능성이 2% 밖에 없어 보이는 일에도 도전한다'라고 말했다. 친구들의 말이 귀에 맴도는데도 유학을 결정한 데는 두 가지가 영향을 주었다. 


첫째, 나는 공부의 끝까지 가보고 싶었다. 즉 박사까지 해 보고 싶었다. 내가 국민학교에 다닐 때에는 학기 초마다 담임선생님이 가정환경조사서를 나누어주었다. 거기에 아버지 어머니의 학력을 쓰는 칸이 있었다. 아버지는 중학교, 어머니는 국민학교로 표시하였다. 도저히 사실대로 쓸 용기가 없었다. 학력 칸에는 고등학교, 대학교, 대학원 박사까지 쓰여 있었다. 학력의 마지막까지 도달하고 싶었다. 해마다 새 학기가 되면, 용기가 부족한 데서 오는 찝찝한 기분을 아들들이 가지지 않기를 바랐다. 


둘째, 시작이 반이란 말이 있듯이 일단 시작하면 끝낼 수 있으리라 믿었다. 우리나라에서는 남자들이 군대를 가는데, 군대에 가면 대부분 제대하여 돌아온다. 유학이 어려운 건 사실이지만, 유학을 포기하고 돌아온 사람의 비율은 낮았다. 교원대 교수 중에 미국 박사 출신들은 거의 모두 어려운 경제사정 속에서도 졸업했다고 들었다. 그래서 나도 해 낼 수 있을 거라 믿었다. 무식해야 용감하다는 말은 그냥 있는 게 아니었다. 


여러 가지로 힘든 유학 시절에 나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하여 열정적으로 끈기 있게 나아갔다. 사람들은 가능하다면 젊은 시절로 돌아가고 싶다고 말한다. 나는 다르게 느낀다. 젊은 시절로 다시 돌아가서 그 어렵고 힘든 삶, 아내와 자식들을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고생시킨 그 길을 다시 걷고 싶지는 않다. 아내와 아들들도 힘든 시간이었기에~


Talent will not: 

nothing is more common than unsuccessful men with talent. 

Genius will not; 

unrewarded genius is almost a proverb. 

Education will not: 

the world is full of educated derelicts. 

Persistence and determination alone are omnipotent.

Calvin Coolid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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